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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대학원생도 엄연한 노동자” 국내 첫 대학원생노조 인터뷰

등록 2018-01-28 17:53수정 2018-01-28 20:48

구슬아 위원장·강태경 부위원장 인터뷰
조교로, 학회 간사로 각종 업무 떠맡지만
근로계약서 없고 쥐꼬리 만한 장학금만
”잇따른 ‘갑질’ 논란도 노동자성 미비 탓
교수·원생 평등 위해 함께 목소리 내야”

건축공학과 대학원에 진학한 ㄱ씨는 외부 발주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ㄱ씨는 매일 밤을 새우며 학업 대신 일에 치여 살았다. 그러나 첫달 월급으로 통장에 찍힌 돈은 고작 50만원뿐. 연구에 참여한 석사생에게 140만원을 지급하겠다는 약속은 ‘없던 일’이 돼버렸다. ㄱ씨의 문제 제기에 연구실 선배가 말했다. “우리가 월급쟁이도 아니고…. 주는대로 받아.” (웹툰 <슬픈 대학원생의 초상> 11화)

만화의 한 장면처럼 대학원생들은 일하고 있지만 일한 대가는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허울 좋은 ‘대학원생’이기 때문이다. 대학원생들은 ‘조교’로서 학과 행정을 담당하고, ‘간사’를 맡아 학회를 운영하며, ‘연구원’으로 각종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그러나 임금은 장학금 형태로 지급된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는 경우도 드물다. 인건비는 각종 명목으로 빼돌려지기 일쑤고, 4대보험·퇴직금 등도 보장받지 못한다.

이런 불안정한 삶을 바꿔내기 위해 대학원생들이 직접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설립 절차를 밟고 있는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대학원생노조)이다. <한겨레>는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대학원생노조 구슬아 위원장(32·성균관대 대학원)과 강태경 부위원장(30·고려대 대학원)을 만났다.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한 커피숍에서 만난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 구슬아 위원장(오른쪽)과 강태경 부위원장.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한 커피숍에서 만난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 구슬아 위원장(오른쪽)과 강태경 부위원장.
흩어져 싸우던 대학원생들…머리 맞대 ‘노조’ 결성 대학원생노조는 각 대학에 흩어져 싸우던 대학원생들이 뜻을 모으면서 만들어졌다. 구슬아 위원장은 성균관대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밟으며 대학원생 조교 처우 문제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 지난해 봄 성균관대 문과대학 소속 대학원생 조교들은 장학금이 삭감될 위기에 처했다. 근로시간 대비 임금으로 환산했을 때 조교들은 이미 최저시급(6470원)보다 못한 시급(5060원)을 받고 있었다. 더 이상의 임금 삭감을 두고 볼 수 없었던 구 위원장은 학생들과 함께 문제 제기에 나섰다. 공론화 끝에 장학금은 지켜낼 수 있었지만 구 위원장은 “누구도 대학원생들의 권리를 옹호해주지 않는다는 현실에 답답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강태경 부위원장도 2016년 고려대 대학원 총학생회장을 맡으며 대학원생의 인권이 침해되는 사례를 숱하게 겪었다고 했다. 그는 대학원생 인권침해 사례를 만화로 옮겨 화제를 모은 웹툰 <슬픈 대학원생들의 초상>을 기획하기도 했다. 강 부위원장은 “대학원을 바꾸려면 법률적 교섭권한이 있는 자주적인 조직이 필요하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성균관대·고려대·동국대 등 전국 6개 대학의 학생들이 모여 대학원생노조를 꾸렸다. 지난달 말 설립총회를 거쳐 노조 설립 절차를 밟고 있다. 대학원생노조는 △대학원생들의 노동권 보장 △자유롭고 평등한 학생-교수 관계 확립 △구성원을 존중하는 민주적인 대학 행정시스템 구축 등을 활동 목표로 한다.

사진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 제공
사진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 제공
“대학원생도 엄연한 노동자” 노동권·인권 보호 목표 대학원생노조는 특히 대학원생들의 노동자성을 보장받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노웅래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발표한 자료(34개 국립대 및 서울 소재 대학원생 조교 현황)에 따르면, 조사 대상 중 92%의 대학이 조교 급여를 임금이 아닌 장학금의 형태로 지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원생 조교와 근로계약서를 체결한 학교는 34곳 가운데 단 한 곳에 불과했다.

구 위원장은 “대학원생들은 일을 하는데도 공부의 일환이라는 이유로 값싸게 부려지는 경우가 많다. 노동의 대가가 제대로 지급되지 않다 보니, 다수의 대학원생들은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투잡·스리잡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 부위원장은 “대학이 기업화되면서 필요한 인력의 일부를 대학원생이 대체하고 있다. 대학원생의 노동으로 대학 사회가 유지되고 있음에도 노동의 대가는 물론, 노동자로서의 기본 권리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노조 명칭을 ‘조교노동조합’이 아닌 ‘대학원생노동조합’으로 정한 이유도, ‘간사’, ‘연구원’으로 일하는 대학원생들의 노동 기본권을 폭넓게 보장받기 위해서다. 구 위원장은 “연봉 70만원을 받는 학회 간사도 있다. 불합리한 노동과 임금 지급 체계 안에 있는 대학원생들을 ‘조교’라는 명칭으로 모두 포괄하기 어렵다는 문제 인식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인분교수 사건’, ‘팔만대장경 사건’ 등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한 인권침해 사건도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봤다. 2014년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가 전국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학원생 연구환경 실태조사’에서 응답자(2354명)의 45.5%가 언어·신체·성적 폭력, 차별, 사적 노동 등 ‘부당한 처우’를 한 가지 이상 경험했다고 답했다. 절반에 가까운 대학원생들이 인권침해에 노출되는 현실에 대해 구 위원장은 “대학원생을 값싼 노동력으로 인식하는 지금의 구조에서는 인권침해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는 ‘대학원생 대 교수’라는 단순한 프레임으로 설명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라고 설명했다.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한 커피숍에서 만난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 구슬아 위원장(오른쪽)과 강태경 부위원장.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한 커피숍에서 만난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 구슬아 위원장(오른쪽)과 강태경 부위원장.
졸업생·교수도 응원… 24일 출범식 예정 전망이 어둡지만은 않다. 최근 조교의 노동자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이 점차 마련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은 동국대 총장을 근로기준법 위반 등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 동국대 대학원생들이 “학교가 근로자인 학생 조교들에게 퇴직금과 4대보험, 연차수당 등을 지급하지 않았다”며 고발한 지 1년여 만이다. 지난해 노웅래 의원은 대학원 조교들의 근로 실태를 공개하라는 취지로 ‘교육관련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기도 했다.

노조 설립 소식이 알려진 뒤 이메일, 페이스북 등으로 노조 가입 문의도 잇따르고 있다. 졸업생·교수의 응원 메시지도 이어지고 있다. 성균관대 민주화를위한교수협의회(민교협)는 지난 22일 대학원생노조 결성을 지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성대 민교협은 성명을 통해 “용기와 열정으로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을 결성했을 대학원생들에게 큰 감사와 깊은 부끄러움을 느낀다”며 “대학의 공공성과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연대해 나가기를 희망한다”는 뜻을 밝혔다.

대학원생노조는 조합원을 지속적으로 모집하는 한편, 비수도권 대학으로 활동 범위를 넓힐 계획이다. 강 부위원장은 “대학원생 처우 문제는 당사자가 스스로 목소리를 내야만 바뀐다. 뭉쳐야 달라진다”고 말했다. 대학원생노조는 2월24일 노조 출범식을 연다.

글·사진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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