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오전 북한 응원단 단원들이 경기도 파주시 남북출입사무소를 통해 입경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보시면 압네다. 지금 다 이야기하면 재미없지 않습네까.”
7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를 나서는 북쪽 응원단을 향해 취재진이 “무슨 응원을 준비하셨나요?”라고 묻자, 응원단장으로 보이는 한 여성이 재치있게 답했다. 응원단들은 남쪽 취재진을 향해 “반갑습니다”라고 먼저 인사하는가 하면 모두 평양에서 왔냐는 질문에는 “평양에서 2~3시간 걸려 왔습니다”라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평창겨울올림픽에 참여할 북한 응원단과 태권도시범단, 기자단 등이 7일 경의선 육로를 통해 방남했다. 북쪽 응원단이 남쪽에서 열리는 체육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방남한 것은 2005년 인천 아시아육상경기선수권대회 이후 12년 6개월만의 일이다. 강산이 변하고도 남을 정도로 긴 세월이지만 남쪽 땅을 밟으며 “통일을 이루기 위해 왔다”고 자신있게 말하는 이들의 미소는 10년 전과 다르지 않았다.
7일 오전 북한 응원단 단원들이 경기도 파주시 남북출입사무소를 통해 입경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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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기있고 박력있는 응원을 하겠습니다” 북쪽 방남단은 이날 오전 9시26분께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쪽 지역으로 왔다. 방남단 280명에는 김일국 체육상 등 북한 민족올림픽위원회 관계자 4명과 응원단 229명, 태권도시범단 26명, 기자단 21명 등이 포함됐다. 이들은 9시28분께 경기도 파주시의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CIQ)에 도착했고, 10시6분부터 입경을 시작해 10시9분부터 남쪽 출구로 나오기 시작했다.
김일국 북한 체육상은 방남 소감을 묻는 질문에 “다 같이 이번에 힘을 합쳐 이번 경기대회(평창동계올림픽) 잘 합시다”라고 밝혔다. 김명철 민족올림픽위원회(NOC) 위원도 “북과 남이 힘을 합쳐서 겨울올림픽이 성과적으로 열리게 된 데 기쁘게 생각한다”면서 “이번 경기 대회에서 북과 남의 선수들이 좋은 성과를 이루길 바란다”고 말했다.
10시15분께부터는 북한 응원단 선발대가 속속 등장했다. 한 손에 자주색 캐리어를 들고 이동한 응원단들은 “반갑습네다”고 인사하며 밝게 웃었다. 하루 전 만경봉92호를 타고 묵호항으로 방남한 북한 예술단원과 비슷하게 검은 털모자와 붉은색 코트를 입었지만, 예술단과는 달리 왼쪽 가슴에 인공기가 달려있었다. 현장에서 취재하던 남쪽 기자가 나이를 묻자 이들은 “각양각색입니다”, “스물다섯살입니다”라고 제각각 답변했다. 응원단에 속한 한 여성은 “활기있고 박력있는 응원을 하겠습니다”라며 웃었고, 다른 여성은 방남 소감을 묻자 “통일을 이룩하기 위해 왔다. 우리가 힘을 합쳐 응원하도록 준비했다”고도 했다.
입경 수속을 모두 마친 응원단들은 남쪽에서 준비한 차량을 타고 이날 오후 3시30분께 강원도 인제 스피디움 숙소에 도착했다.
2002년 9월28일 오전 부산 다대포항에 280여명의 북측응원단을 태우고 도착한 만경봉호-92호 선상에서 한복을 차려입은 북측응원단이 환영나온 남측시민들에게 한반도기를 흔들며 화답하고 있다. 부산/ 김봉규 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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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2003, 2005 그리고 2018 북한 응원단이 한국을 방문한 것은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이 처음이었다. 개막 전인 9월28일 만경봉92호를 타고 바닷길로 방문한 이들은 부산 다대포항에 입항하는 순간부터 화제를 모았다. 남쪽 환영객 2000여명이 항구에 운집해 한반도기를 흔들며 이들을 맞이하자, 색색의 한복을 입은 북한 응원단 280여명은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배가 선착장에 접안되자 북쪽의 취주악단과 고적대가 ‘반갑습니다’를 연주했고, 남쪽 환영객들은 ‘통일조국’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화답하기도 했다. 당시 아시안게임 폐막식에서 <한겨레>와 만난 응원단들은 “미녀라는 찬사는 감사드리지만, 우리를 미녀로 보기보다는 남녘땅에 온 통일의 사절로 보아주셨다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부산 아시안게임 이후 한국을 찾은 응원단은 모두 하늘길을 통해 남쪽으로 왔다. 303명으로 구성된 북한 응원단은 2003년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 개막을 하루 앞둔 8월20일 고려항공 여객기를 타고 김해공항에 도착했다. 왼쪽 가슴에 인공기를 달고 흰 저고리와 검은 치마의 개량한복을 입은 모습이었다. 응원단은 공항을 가득 메운 환영 인파를 향해 밝게 웃으며 인사했다. 이튿날 유니버시아드 개막식 행사에서 남북 선수단이 동시에 입장하자 응원단은 한반도기를 흔들며 “조국통일!”, “우리는 하나다!”라는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2005년 인천 아시아육상경기선수권대회를 찾은 응원단들은 북측청년학생협력단 소속 학생 120여명으로 구성됐다. 개막 하루 전인 8월31일 고려항공 여객기를 타고 인천공항을 통해 방남한 이들은 개량한복 차림에, 왼쪽 가슴에는 김일성 주석의 얼굴이 새겨진 붉은 뱃지를 달았다. 남학생도 10여명 포함된 응원단은 응원뿐만 아니라 인천 시민을 대상으로 3일간 특별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아내 리설주가 당시 북측청년학생협력단 소속으로 한국을 찾은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02년 10월15일자 <한겨레>의 북 응원단 인터뷰 기사. 한겨레 자료사진
2003년 8월20일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김해공항에 도착한 북한 응원단이 환영인파를 향해 손을 흔들며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 부산/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2005년 8월31일 인천 아시아육상경기선수권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인천공항에 도착한 북한 응원단이 취재진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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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단 첫 리허설…전 세계서 응원단 모여 6일 만경봉호를 타고 묵호항으로 방남한 북한 예술단은 강릉 공연을 하루 앞둔 7일 첫 공연 리허설에 나섰다. 이날 오전 8시30분께 대형버스 5대에 나눠 탄 이들은 묵호항을 출발해 9시20분께 강릉 아트센터에 도착했다. 오전 연습을 마친 이들은 묵호항 만경봉호으로 돌아가 점심식사를 해결한 뒤, 다시 강릉으로 돌아와 오후 리허설을 진행했다.
이번 올림픽에는 북한 응원단 뿐 아니라 세계 각 지역에 흩어져 사는 동포들이 모일 예정이어서 ‘민족 화합의 장’이 펼쳐질 전망이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 응원단은 9일 개막식 전 한국에 들어올 예정이다. 8일 오전 일부가 인천공항으로 입국하고, 오후 도쿄, 오사카 등에서 응원단 수십명이 김포공항으로 들어온다. 미국과 유럽 지역에 거주하는 동포들도 8∼9일 한국에 들어올 예정이다.
■ 방남단 환영만찬 “소중한 여정” “화해협력 서곡” 이날 저녁 강원도 인제스피디움에서는 천해성 통일부 차관이 주최하는 북한 방남단 환영 만찬이 열렸다. 천 차관은 환영사에서 “북측에서 온 여러분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이곳 인제까지 온 길은 관계를 복원하는 소중한 여정이었다”면서 “남북이 보여줄 우리 민족의 따듯한 정과 힘찬 기운은 남북 관계의 밝은 미래를 열어가는 소중한 디딤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답사에 나선 오영철 북한 응원단장은 “북과 남이 손을 잡고 함께 하는 이곳 23차 올림픽 경기대회는 민족 위상을 과시하고 동결되었던 북남 관계를 개선해 제2의 6·15시대를 여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며 “그간 두텁게 얼어붙었던 얼음장을 녹이며 북남 사이에 눈석이가 시작되고 평화와 통일의 사절단이 하늘길 바닷길 땅길로 오가게 된 것은 새로운 화해 협력의 시대가 열리는 서곡”이라고 말했다. 이날 만찬에는 북쪽 응원단, 태권도시범단 등 100여명과 천 차관, 전충렬 대한체육회 사무총장 등 30여명의 남쪽 인사가 참석했다.
공동취재단, 강릉/황금비 노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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