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섭 법무·검찰개혁위원회 위원장. <한겨레> 자료사진
법무부의 법무·검찰개혁위원회(위원장 한인섭 서울대 교수)가 8일 검사의 사법경찰관에 대한 수사지휘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내용 등을 담은 ‘검·경 수사권 조정’ 권고안을 내놓았다. 검찰과 경찰을 ‘지휘하고, 지휘받는 관계’에서 ‘상호 협력하는 관계’로 재편해 권한의 남용을 막는데 방점이 찍혀 있다. 법무부도 이 권고안을 “존중하겠다”는 입장이라서, 수사의 주체를 검사로 규정한 형사소송법 조항이 제정(1954년) 64년 만에 바뀌게 될지 주목된다.
개혁위는 이날 공개한 ‘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통해 “사법경찰관이 수사에 관해 검사의 지휘를 받도록 한 형사소송법 규정을 삭제하도록 권고했다”고 밝혔다. 현행 형사소송법 196조는 수사관·경무관·총경·경감·경위는 사법경찰관으로서 검사의 지휘를 받아 수사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앞서 지난달 14일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주요 권력기관 개편안’ 발표 때 “검찰이 지금처럼 (경찰 수사에) 애초부터 개입하는 것은 없어지게 된다”고 말한 것과 같은 취지로 보인다.
다만 개혁위는 △검찰에 접수된 고소·고발 사건 수사 △경찰이 송치한 사건에 대한 보완 수사 △변사 사건에 대한 수사 △경찰의 영장 신청 시 보완 수사에 대해서는 예외적으로 검찰이 경찰에 수사를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또 경찰 수사과정에서 권한남용이나 인권침해를 방지하기 위해 ‘경찰 사건을 모두 검찰에 송치하고, 검사가 사건 종결 및 기소를 결정하는 현행 시스템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권고안에서 ‘요구’가 ‘지휘’와 어떻게 다른지 분명하지 않다”고 지적하면서도 “사실상 경찰의 독자적인 수사를 허용하는 방안”이라고 평가했다.
또 경찰이 ‘부당하게 검사가 영장을 반려했다’고 판단할 때는 외부 위원을 다수로 한 ‘영장심의위원회’에 이의를 제기해 2차 판단을 구할 수 있는 제도도 제안했다. 개혁위는 “체포·구속·압수수색 등 강제수사는 국민 인권과 직결된 문제”라며 “검사의 영장기각에 부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 사법경찰관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해 검사의 권한남용을 견제할 필요가 있다. 사법경찰관이 이의를 제기하면 각 검찰청에 설치되는 영장심의위가 이를 심의하도록 하고 검사는 그 결과를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개혁위는 검찰의 인권옹호 기관 지위를 강화하기 위해 경찰을 거치지 않는 직접수사를 축소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검찰의 직접수사는 부패, 경제·금융, 공직자, 선거범죄 등에 한정되도록 해야 한다는 방안을 제시했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이날 권고안과 관련해 “개혁위의 권고안을 존중해 국민을 위한 수사권 조정이 이뤄지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대검찰청도 이날 입장문을 내고 “경찰의 수사 자율성, 전문성을 최대한 보장하면서도 인권보호와 수사의 적법성을 확보하기 위한 검사의 사법통제도 실질적으로 이루어지도록 제도개혁의 지혜를 모아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향후 법무부 장관, 행정안전부 장관, 검찰총장, 경찰청장 4자가 참여해 본격적인 검경 수사권 조정안 마련에 나설 계획이다.
김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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