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20일 강원지역 시민사회단체가 춘천지검 청사 앞에서 대규모 부정청탁·채용비리 의혹이 일고 있는 강원랜드에 대한 성역 없는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춘천/연합뉴스
▶ 지난해 9월 <한겨레>가 첫 보도를 한 ‘강원랜드 채용비리’ 사건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당시 수사검사가 수사 과정에 외압이 있었다고 폭로하자, 검찰은 지난 6일 ‘강원랜드 채용비리 수사단’을 구성하고 ‘채용비리 및 수사외압’에 대한 전면 재수사를 시작했다. ‘강원랜드 채용비리’ 건을 취재·보도한 당시 취재팀장이 뒤늦은 취재후기를 썼다.
<한겨레>가 ‘강원랜드 채용비리’ 기사를 처음 내보낸 때가 지난해 9월5일이다. 당시 기사의 제목은 ‘권성동 의원 비서관, 강원랜드 부정청탁 입사’. ‘“권성동 쪽 채용청탁 10여명” 강원랜드 문건서 드러나’와 ‘강원랜드 합격자 518명 중 493명 ‘빽’ 있었다’ 등의 기사를 통해 대규모 부정청탁·채용 사실을 본격으로 알린 건 다시 1주일 뒤다.
그리고 반년째가 되는 지난 2월4일 일요일 밤 9시께. 나는 이런 메모를 편집국 취재정보망에 올리고 있었다.
‘강원랜드 채용비리 사건 실제 수사 전담했던 이는 유○○ 검사. 2017년 2월 서울 ○○지검으로 인사남/ 이후 안미현 검사가 4월 기소. MBC는 1명만 불구속 기소라고 리포트했던데, 최흥집 당시 사장과 권아무개 인사팀장 2명
만 업무방해 혐의로 불구속 기소한 이가 안미현 검사임/ 문제는 당시 최종원 춘천지검장이 새 정부 들어 서울남부지검장으로 사실상 영전한 것. 물론 한겨레의 강원랜드 보도 전이지만/ 더 웃긴 건 그 남부지검이 금융감독원 채용비리 사건 수사 중이란 것.’
취재 초반부터 주목한 이름, 안미현 검사
그날 저녁 8시께 강원랜드 채용비리 수사 중 수사방해 외압을 받았다는 주장을 실명으로 밝힌 안미현 검사 인터뷰를 <문화방송>(MBC)이 단독 보도로 예고한 뒤였다. 안 검사가 지목
한 외압의 당사자는 최종원 당시 춘천지검장, 권성동 국회의원(법제사법위원장) 등이다. <한겨레>는 출처를 밝히고, 추가 취재한 내용을 더해 다음날인 5일치 1면 기사를 만들었다. 제목은 ‘강원랜드 수사검사 “채용비리 수사 부당외압” 폭로’.
6개월 시차를 둔 기사들에서 알 수 있
듯이, 강원랜드 채용비리 건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한겨레>는 지난해 7월 취재를 시작해 두 달 만에 첫 기사를 내놓고, 모두 4부에 걸친 탐사보도로 사안의 실체를 톺았지만, 이 사안이 해를 넘기고 급기야 수사 검사의 폭로로까지 이어질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검찰은 급기야 지난 6일 ‘강원랜드 채용비리 수사단’을 구성하고 ‘채용비리 및 수사외압’에 대한 전면 재수사를 시작했다.
안미현 검사는 강원랜드 채용비리 건을 파고든 <한겨레> 디스커버팀이 취재 초반부터 첫손으로 꼽아 주목한 이름이다. 일찌감치 공소장을 입수한 까닭이다.
“불상의 다수인으로부터 청탁”이 이뤄졌고, 실제 “최흥집 외에 위 강원랜드 임직원, 외부인사로부터 청탁을 받아 그 명단을 피고인 최흥집이 청탁한 대상자 명단”까지 “관리”되고 있었으며, 그 결과 “당초 인·적성 평가 결과에 따라 불합격되었어야 할 이** 등 청탁 대상자 138명을 부당하게 면접대상자로 합격시”키고, “자기소개서 점수를 상향조정하는 방법으로 김** 등 139명을 서류전형에 부당 합격시켰”다고 파악(공소장)했으면서도, 최흥집 당시 사장과 권아무개 인사팀장 ‘두 명만 업무방해 혐의로 불구속 기소’한 이유를 선뜻 이해하기 힘들었다.
당시에도 수사 외압이 작동했을 가능성과 정황을 어느 정도 파악은 했었다. 다만 당사자인 안 검사는 그 시점까진 수사 부실을 비판하는 취재진에게 속내를 다 드러내긴 어려웠을 법하다. “공소장이 그렇게 언론에 쉽게 노출되어도 되냐”고 묻는 그에게 기자는 “그거라도 확보 안 되었으면 이 어마어마한 사건이 드러났겠냐”고도 따졌으니, 안 검사 처지에선 지검장도 기자도 불편했겠다는 생각이 든다.
취재기자가 ‘현상’과 ‘사실’의 협곡을 건너 피안의 ‘진실’에 닿을 수 있는 나룻배나 동아줄 하나 있다면, 그건 기자를 신뢰해 말해주는, 양심 하나 때문에 진실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어떤 내부자의 고발이다.
지난해 9월25일 해거름 한 중년의 남성한테서 전화가 왔다. 그는 울먹였다, 고 기자는 느꼈다.
첫마디였다. “아!~, 어제 한 참기름 얘기 사실 다 거짓말이었습니다. 제가 부탁한 거 사실이고, 아~, 오래 알던 사업가 친구한테요, 그 친구가 (강원랜드가 있는 정선군) 고한읍 사는 지역 어르신한테, 유지인가 보던데, 그분한테 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남성은 돈 수천만원씩을 이른바 브로커와 채용청탁자에게 전달하고서 아들과 조카를 강원랜드에 취업시킨 이였다. 전날 전화 취재에선 모든 의혹을 부인하며 (표현은 달랐지만) 브로커와 청탁자에게 8만원짜리 참기름만 한 병씩 줬다고 했었다. 이 말 하다가도 “자녀분 채용청탁 위해 3천만원 주셨다던데 들어보셨느냐” 질문, 저 말 하다가도 “조카 청탁 위해 2천만원 주셨다는데 들어보셨느냐” 질문만 네댓번을 던지고서 겨우 거둔 단어가 ‘참기름’이었다. 애초 관심사는 금품 규모를 재차 확정하고, 그 돈이 강원랜드 내부까지 어떻게 흘러 영향을 미쳤는지였다. 이미 정치인들까지 연루되어 있었으나, 금품청탁이 존재하는가는 또 다른 차원의 사안이고 범죄였다. 채용청탁이 지역구 민원활동이라든가, 환경이 어려운 청년을 돕기 위해서라든가 따위의 만연한 변명과 ‘미담투’를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계좌로 주셨어요?”…“예, 그렇습니다”
―정선 유지가 누구입니까?
“그건 모릅니다.”
―강원랜드 직원은 아니고요?
“아녜요.”
―그 사람이 채용이 필요한 분들한테 계속 돈 받아온 거 아닙니까?
“거기까진 잘 모르죠.”
―아들은 3천만원 아닙니까?
“아~ 그렇겐 안 줬습니다. 거짓말입니다. 아들이 자꾸 돈 줬나 안 줬나 묻더라고요. 얘기 좀 해달래요.”
―아들은 3천만원이고, 조카는 2천만원이잖습니까. 액수를 확인해주세요.
“아 그건, 액수도 안 맞고 하니까 말씀 안 드리겠습니다.”
―조카도 같은 방법으로 돈 주고 부탁하신 거 맞죠?
“예, 제가 했습니다.”
―지인 통해 정선 원로한테요?
“예.”
―그런데도 정선 원로가 누구인지 확인해보려고 안 했다는 건가요?
“안 했습니다.”
―배달사고 날지 걱정되잖아요?
“아!~ 안 해봤습니다.”
―현찰로 주시고요?
“아닙니다.”
―그럼 계좌로요?
“아요~, 그런 말씀 마시고요, 마십시오. 나중에 할게요.”
―우리가 주로 쓰려는 건 아드님 얘기 아닙니다. 이런 메커니즘 일상화된 거예요. 그거 없애지 않으면 나중에 아드님도 더 큰 청탁에 의해 조직에서 피해 볼 수 있습니다. 끝나지 않는 게임이에요.
“저도 각오를 하고 있습니다. 저지른 죄니까….”
―그러니 말씀해주세요. 아들 3천만원, 조카 2천만원인가요?
“아닙니다, 아닙니다.”
―2천만원, 1500만원인가요?
“아닙니다. 그건 말씀 안 드리겠습니다.”
―아뇨, 말씀해주세요, 말씀해주십시오.
“저도 우연찮게 그렇게 했습니다. 아들이 막상 학교 졸업하고 있어서 그렇게 했습니다.”
―누구한테 주셨어요?
“아, 안 하겠습니다.”
―현찰입니까?
“아닙니다.”
―계좌로 주셨어요?
“… 예, 그렇습니다.”
―지인이란 사람한테 전부요?
“예.”
―그럼 배달사고 날 수도 있잖습니까?
“모르겠습니다. 거기까진 생각 안 해봤고, 전 그게 다였습니다.”
―아니, 힘 있는 사람한테 갔는지 확인해야 할 거 아닙니까?
“그건 안 봤죠. 제가 볼 이유도 없죠.”
―그런 게 어딨습니까. 일이백만원도 아니고 기천만원 돈을 그냥 믿고 준단 말입니까?
“아닙니다.”
―제가 놀라운 소식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드님 막상 점수 조작이 되진 않았어요.
“아, 그래요? … 그랬구나….”
―수많은 사람 점수 조작된 거라 구분이 크게 중요하진 않지만, 돈 줬어도 뭘 조작해 합격한 건 아니었습니다.
“그래요? 아들은 전혀… 그랬습니다, ‘내 실력으로 들어갔다’고요.”
사실 여기서 지칭되는 ‘지인’(브로커)도 받은 돈으로, 정선 지역 인사에게 채용청탁을 의뢰하며 차량 구매 등을 해줬다고 이미 밝힌 터였다. ‘그게 뭐가 잘못됐냐’ 식이긴 했지만 말이다.(뒤에 더 취재해보니, 브로커의 아들 또한 강원랜드에 부정입사한 사실을 파악하고 혀를 내두른 적이 있다. 남의 돈으로 제 아들까지 청탁했을 가능성이 보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반년 넘게 이어진 취재와 보도는 가해자든 피해자든 그들의 ‘양심’에 감히 당도해보려는 세 치 혀를 수단의 절반으로 삼았다. 중요한 인사와 겨우 연결될 때마다 던진 말이 “(이번 사건) 정리하고 가셔야 한다”였다. 말의 진폭이 기자의 입안에서만 컸다면, 누군가 결국 “그 한마디 때문에 오늘 밤 만나자 했다”며 기자에게 시간과 기억을 덜어 내주는 따위 경험은 전무했을지도 모른다.
미약한 언어로 들춰낸 불편한 ‘팩트’들
지난해 말 ‘공공기관 채용비리 민낯’ 탐사보도로 팀원들과 큰 언론상을 수상했을 때 한 얘기가 있다.
“스트레이트는 가장 기본적인 글꼴이고 그것으로 담지 못할 지상의 이야기는 없다고 말하곤 하지만, 이 무지막지한 디지털 환경에서 가장 취약해지고 왜곡된 게 스트레이트 꼴이고, 실제 스트레이트 아닌 다양한 양식과 때로의 수작을 요구받고 유혹받는 것 또한 엄연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스트레이트에 실은 ‘팩트’가 진실하고 강력할 경우, 여전히 저널리즘을 오롯이 건사해주는 것은 스트레이트라는 사실을 또 어렵게, 어렵게 확인합니다. (…) 7월 공공기관 채용비위 기획안을 발제할 때 편집국장이 디지털 전략이 뭐냐고 디스커버팀 에디터에게 물었을 때 강력한 팩트 그 자체라고 말씀드렸고, 앞서 제가 정리한 기획안에 담은 문구 중 하나는 ‘무소의 뿔처럼 스트, 스트, 스트로 간다’였습니다.”
세상에 감춰진 막강한 ‘팩트’를 채굴해 발품의 온기를 담은 기사만이 디지털이나 인공지능의 가공할 위력 앞에서, 하물며 ‘기레기 판국’으로부터 자유롭고 고유할 것이다. 그러한 기사 대부분은 필시 누군가의 ‘양심’을 잉크 삼아 활자화된다.
강원랜드 관련 자료만 2.7기가 정도 컴퓨터에 저장됐다. 가해자든 피해자든 장삼이사들의 양심까지 측량된다면 얼마가 되었을까. 아쉽게도 단 한번 들어보지 못한 유력자들의 사과 한마디라도 보태졌다면, 더더욱 저 무게는 영영 가늠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취재진의 언어가 여전히 짧은 탓에, 그 한마디를 듣지 못했다. 숱한 기관의 채용비리와 관련한 제보들이 쏟아졌으나 미처 다 밝히지 못했다. 역량 탓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나마의 미약한 언어로 들춰낸 한국 사회의 불편한 ‘팩트’들이 오는 22일 ‘한국기자상’ 시상식 때 다시 한번 거명될 참이다. 어떤 양심이 얼굴을 드러내기까지 조직이, 사법당국이, 정치권이, 하물며 정부도 다 하지 못한 일이다. 언론이 존재하여 감당해야 할 ‘틈’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보도로 결국 탄핵과 정권교체까지 된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이번 한국기자상 시상식 때 문재인 대통령이 깜짝 방문해 그 ‘양심’들에게 함께 박수쳐주시길, 나는 소망한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권성동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지난 5일 낮 국회 사랑재에서 정세균 의장 주최로 열린 전국상공회의소 회장단 오찬에 참석한 모습. 권 위원장은 강원랜드 채용비리 의혹을 수사하던 춘천지검에 압력을 행사한 의혹을 받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