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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청년층, 생존에 내몰려 공정성에 민감…‘세대 연대’ 절실”

등록 2018-02-12 14:23수정 2018-02-12 17:31

[공정성의 딜레마] ② 연구자 좌담

이민경 대구대 교수
“청년들이 약자 배려 정책에 분노하는 건
노력으로 그 자리에 오른 게 아니라고 보는 탓
공동체적 가치 경험 못해 경쟁 내면화한 결과”

조형근 한림대 교수
“경쟁의 가치 만들어 구조화한 건 86세대
집단적 정체성은 젊은 세대와 다르지 않아
정규직·민주노총이 먼저 연대 나서야”

이재경 민주사회정책연구원 연구원
“지금의 공정성은 틀 인정하는 보수적 공정성
젊은 세대가 가진 유일한 무기 돼
최소한의 정치권력 분배라도 이뤄져야”
조형근 한림대 교수(왼쪽부터)와 이민경 대구대 교수, 이재경 민주사회정책연구원 연구원이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공덕동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에서 만나 ‘공정성의 딜레마’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조형근 한림대 교수(왼쪽부터)와 이민경 대구대 교수, 이재경 민주사회정책연구원 연구원이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공덕동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에서 만나 ‘공정성의 딜레마’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워야 한다는 말씀에 테니스 선수로서 깊이 공감합니다.” 호주오픈 남자단식 4강에 진출해 파란을 일으킨 정현이 문재인 대통령의 축전을 받고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 중 일부다. 이 문구에 공감하는 이는 정현만이 아니다. 특히 ‘공정성’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평창겨울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을 둘러싼 청년 세대의 뜨거운 논란에서 확인됐듯, 현재 한국 사회의 가장 예민한 결절점이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은 실천을 지향하는 연구자들의 모임인 ‘한반도연구회’와 함께 공정성의 의미를 되짚고, 이것이 세대 간, 계층 간 연대의 계기가 될 가능성을 모색하는 좌담회를 마련했다. 지난달 31일 저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에서 열린 좌담회에는 이민경 대구대 교직부 교수, 조형근 한림대 일본학연구소 연구교수, 이재경 민주사회정책연구원 연구원이 참석했다. 이 교수는 시험 등 교육 현장에서 일어나는 절차적 공정성의 문제에 주목해왔다. 조 교수는 사회학자로서 청년 담론 등에 관심을 기울여왔으며, 이 연구원은 청년연구자다. 사회는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의 한귀영 사회정책센터장 겸 여론과데이터센터장이 맡았다.

사회 최근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공정성’을 주제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는 동의하지만 비정규직을 차등 대우해야 한다는 이중적 인식이 나타났다. 평창겨울올림픽 단일팀을 두고도, 한반도 위기 해소라는 대의에 동의하지만 남한 선수들을 차별하는 것이라는 응답이 매우 높았다. 이런 현상은 특히 20~30대에서 두드러졌다.

조형근 짧게 보면 20년 동안, 길게 보면 1960년대 경제 개발이 본격화된 뒤로 우리가 옳다고 믿어온 가치가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전제해온 공정함이 더는 작동하기 힘든 상황이 된 게 아닌가.

이민경 청년 세대는 ‘평등’과 ‘공정함’의 개념을 구별한다. 평등은 구조적이고 결과적인 것과 관련된 반면, 공정함은 경쟁 상태에서 규칙의 공정함을 뜻한다. 단일팀의 대의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동의하는 건, 자기 삶의 구체성과 떨어진 추상적인 동의일 뿐이다. 하지만 자기 삶과 밀접한 연관을 가질 때는 다른 맥락으로 해석한다. 청년들이 비정규직을 차등 대우해야 한다거나, 단일팀 선수가 불이익을 본다고 여기는 건 그런 면에서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다. 이들은 아이엠에프(IMF) 때 태어났거나 성장기를 보낸 사람들로, 경쟁이 내면화돼 있다. 연대나 공동체적 가치를 경험한 적이 없다.

이재경 민주사회정책연구원 연구원이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공덕동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에서 ‘공정성의 딜레마’를 주제로 이야기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이재경 민주사회정책연구원 연구원이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공덕동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에서 ‘공정성의 딜레마’를 주제로 이야기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이재경 이런 이야기는 기성세대가 ‘요즘 젊은 사람들 이렇더라’는 또 하나의 세대 프레임을 짜는 것일 수 있다. 어쨌든 남북 단일팀은 과정이나 결과물이나 젊은 사람들이 보기에 촌스럽다고 생각한다. 가치적으로 옳다 그르다의 문제라기보다, 충분한 고민 없이 관성에 매몰돼 단일팀을 만들었다고 보는 거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문제는 ‘나는 그 게임에 참여조차 못하고 있다’는 불만이 표출되는 것 같다. 취직을 못한 상태에서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걸 보면서, 내 기회가 박탈되는 것 아닌가, 몇 년 뒤엔 공무원을 안 뽑거나 덜 뽑는 것 아닌가 이런 식으로 인식한다.

조형근 청년 세대가 평등과 공정함의 감각이 다르다는 것에 전폭 공감한다. 대학입학사정관제, 로스쿨, 고위공직 민간 전문가 경력 채용 등에 반발이 아주 심하다. 이 제도들은 기존의 경직되고 획일화된 선발 체계의 잘못을 교정하려는 시도인데, 청년들은 이 선발 과정을 믿을 수 없다고 본다. 과정이 투명하다면 내가 차별받고 결과적으로 좋지 않은 성적표를 받더라도 수긍할 수 있지만, 이런 제도는 과정 자체를 알 수 없으므로 동의할 수 없다는 거다. 실질적 평등을 달성하려고 취하는 조치를 부정적으로 보고 형식적인 투명성을 요구한다.

이민경 사회적 약자 배려 정책에 분노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노력과 능력에 기반해서 그 자리에 오른 게 아니라서 불공정하다고 본다. 신자유주의적 주체로 훈련된 결과로, 이들은 구조에 신경 쓰지 않는다.

학교 수업 때 ‘팀플’(조별 과제)을 의도적으로 많이 시킨다. 첫 수업 오리엔테이션 때 이건 연대의식을 키우는 거고, 같은 조 안에서 서로 독려하면서 해 나가는 게 사회적·교육적으로 중요하므로 훈련하는 거라고 설명한다. 학생들은 내가 교수이기 때문에 동의하는 척하지만, 강의평가 때 가장 큰 불만이 팀플이다. ‘얘는 무임승차했는데’ 이런 불만인데, 학생들이 이기적이어서가 아니라 그들의 개념으로는 (조에서 열심히 안 한 친구가 나와 같은 점수를 받는 것이) 불공정하고 형평성에 어긋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풀려면 청년들의 문화와 감수성 안으로 들어가서 그들의 시선으로 바라봐야 한다.

사회 청년들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내재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얘기인 것 같다.

이재경 부모나 선배 세대는 연줄, 관계망, ‘빽’ 이런 얘기를 했지만, 아이엠에프를 지나면서는 사회적으로 시장을 엄청 강조하면서 청년들도 경쟁과 시장의 합리성이 좋은 거라고 배웠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보니, 세상이 우리가 알고 있는 시장의 논리로 작동하는 게 아닌 거다. 연줄과 지대가 지배하는 사회라는 걸 보면서 믿음이 깨지고 건물주가 꿈이라는 얘기를 하게 된 거다.

조형근 청년 세대는 ‘공산주의가 팀플하다 망했다’고 한다. 집단책임, 연대책임에 굉장히 부정적인 반면, 자기 책임을 강조한다. 과정과 기회의 공정함과 투명함을 중시하면서, 비슷한 조건에 있는 너는 왜 열심히 안 하냐고 분노하는 거다. 아이엠에프의 가장 큰 영향은 이렇게 주체가 생산되는 방식을 바꾼 거다.

사회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때는 기존 정규직이 반발했고, 학교 비정규직 교사의 정규직화 때는 교대 학생들의 반발이 거셌다. 어떻게 보나?

이민경 대구대 교수가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공덕동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에서 ‘공정성의 딜레마’를 주제로 이야기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이민경 대구대 교수가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공덕동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에서 ‘공정성의 딜레마’를 주제로 이야기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이민경 기존 교사들도 정규직화에 찬성하지 않는다. 나보다 노력을 덜 하고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정규직이 되는 것을 불편해하고 불공정하다고 여긴다. 구조적인 문제로 비정규직이 됐다고 보지 않는다.

조형근 이런 반응은 경제적 보상 문제 이전에 영광과 처벌의 분배에 대한 문제라고 본다. 노력한 사람에게는 그에 합당한 영광이 돌아가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처벌이 있는 게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거다. 왜 교사, 정규직이 ‘영광의 자리’가 되었는가 질문할 필요가 있다.

이민경 젊은층이 공무원시험에 매달리고 사범대에 우수 학생이 몰리는 건, 우리 사회에 마지막으로 남은 공정한 무대가 여기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무대에서마저 기회가 없어지는 것 같아 엄청난 박탈감을 느끼는 거다.

이재경 지금의 공정성은 보수적인 공정성이다. 이 틀 자체가 불공정하니 깨자는 게 아니라, 있는 틀은 그대로 다 인정하되 규칙만 공정하면 좋겠다는 거다.

조형근 86세대, 현재의 기득권 세대와 지금 젊은 세대의 집단 정체성이 그렇게 다르지 않다. 86세대는 민주화운동을 통해 정치적 가치에도 앞장섰지만, 앞 세대와 다르게 첨단기술을 섭렵해 벤처를 만들고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성공했다는 자부심이 있다.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것과 동시에 시장에 대한 믿음도 있는 거다. 아이엠에프 이후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추진한 것도 민주정부였다. 한편으론 복지로 보완했지만, 우리 사회 원리 자체를 시장화하기 시작한 것도 그때였다. 그런데도 이것이 청년 세대의 문제처럼 보이는 건, 86세대는 경쟁을 통과해 좋은 시절을 살았지만 지금 청년들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시장 중심, 경쟁의) 가치를 만들어 퍼트리고 구조화한 건 86세대다.

사회 공정성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세대에 갇혀선 안 된다는 게 공통된 인식인 것 같다.

이재경 공정성이라는 가치에 좀 더 열광하는 게 젊은 세대인 것 같긴 하다. 이들이 생각하는 공정성은 차가운 거다. 과거엔 이걸 내세우지 않아도 친구, 가족 같은 관계망 속에서 문제가 풀릴 수 있었지만, 지금은 관계의 앙상함 속에 공정성만 남았다. 다른 가치, 관계가 대부분 사라진 상태에서 젊은 세대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무기가 공정성인 것 같다. 이건 불공정해, 불공평해 하는 것만큼은 어른들도 언론들도 동의해주지 않나.

사회 공정성은 연대, 배려 등이 맞물려 작동하는 것인데, 배후의 개념은 사라지고 ‘차가운 공정성’만 남아 젊은 세대가 붙들고 있다는 지적으로 들린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도 연대와 직결된다. 연대가 가능할까?

조형근 연대를 정규직과 비정규직 관계에만 좁혀 보면, 결국 정규직 노동자와 민주노총이 역할을 해야 한다. 정치권력이 나서서 연대를 할 순 없다. 약자가 연대하자고 얘기하는 건 당연하지만, 강자가 거부하면 아무 의미가 없다. 민주노총도 지금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더불어 산별노조,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 등을 관철하려고 노력하는 걸로 안다.

이재경 젊은 사람이 연대를 못한다고 하지만, 따져보면 기성세대가 연대의 씨앗을 안 심어줬다. ‘너 몇 평 사냐’, ‘어느 아파트 사냐’ 이런 질문을 받고 자란 세대가 연대를 말한다? 그들에게 왜 연대 안 하냐고 하는 게 오히려 폭력적이다.

정부가 진보적 정책을 추구한다면, 젊은 세대도 느낄 수 있도록 진짜 보편복지를 해야 한다. 지하철에 65살 이상은 무임승차하는데, 24살 이하는 왜 못할까. 세대 안에서의 선별복지도 안 되지만 세대 간 선별복지도 하면 안 된다.

사회 마무리 말씀 부탁드린다.

조형근 한림대 교수가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공덕동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에서 ‘공정성의 딜레마’를 주제로 이야기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조형근 한림대 교수가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공덕동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에서 ‘공정성의 딜레마’를 주제로 이야기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조형근 자유주의적 기회평등의 아버지인 존 롤스는 <정의론> 개정판을 쓰면서, 자산의 근본적 재분배 없는 기회평등의 원칙은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했다. 세계은행 연구 결과를 봐도, 1960년부터 40년 동안 경제성장률이 가장 높은 나라가 한국, 대만, 일본이었는데 1960년대에 토지분배가 가장 평등하게 이뤄졌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완전불평등 사회에 가까운 지금의 자산 불평등과 양극화를 근본적이고 혁명적인 수준으로 풀지 않으면, 젊은 세대에게 무슨 얘기를 해도 안 먹힌다.

이재경 최소한 정치권력의 분배라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권위주의 독재정부가 가진 권력을 86세대가 뺏었는데, 지금 젊은 세대는 이들의 권력을 뺏을 수 있을지 난망하다. 지방선거에 정당공천을 하면서 올드보이 쫓아내고 86세대가 차지한 자리가 아직도 후배들한테 넘어가지를 않는다. 특히 민주당의 청년 연령이 45살로 제일 높다. 다른 데는 39살인데. 청년 정치인들은 정말 답답하고 막막해한다. 진보적인 정부라면 적어도 정치권력의 분배만이라도 과감하게 해야 된다.

이민경 불공정 논란을 둘러싼 젊은 세대의 분노에 귀 기울이고, 그게 어떤 의미인지 잘 읽어내야 된다. 그동안 우리 사회가 타자화했던 젊은층의 시선으로 다시 한번 한국 사회를 바라봐야 한다. 불공정성에 대한 청년의 감수성이 만들어진 데는 생존의 문제가 깔려 있다. 청년 기본소득은 청년들이 생존 문제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들을 생각하고 실험할 계기가 될 수 있다.

정리 조혜정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 수석연구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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