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딸의 친구를 납치해 추행한 뒤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이영학(36)씨에게 사형을 선고한 1심 재판부는 ‘인면수심’의 흉악범을 영구히 우리 사회와 격리하기 위해 내린 고뇌에 찬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20년 이상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 ‘실질적 사형폐지국’으로 지정된 한국에서 ‘사형 선고’가 던지는 사회적 메시지는 가볍지 않다. 법과 제도가 박탈할 수 있는 인권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법원이 사형을 선고한 것은 강원도 고성군 한 부대 내무실에서 총기를 난사한 ‘임 병장 총기난사 사건’의 2016년 대법원 판결 이후 2년 만이다. 먼저 법 제도의 기본권 제한이 생명권 박탈에까지 이르지는 않아야 한다는 쪽에선 부적절한 판결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서구 선진국에선 사형제 폐지가 확대되는 흐름인 점도 이들의 의견을 뒷받침한다. 한상희 건국대 로스쿨 교수는 “현재 개헌 논의에 가장 첫 번째 의제로 제시되는 게 국민의 생명권 보장을 위해 사형제를 페지하는 것”이라며 “어떠한 훌륭한 법 제도도 개인의 생명 그 자체를 박탈할 순 없다는 근대 인권의 정신에 미치지 못하는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러한 이념적인 이유만으로 사형 선고를 비판하는 것은 법체계와 현실에 눈감는 것이라는 의견도 팽팽하다. 노명선 성균관대 로스쿨 교수는 “법정형에 충실한 형의 선고였고, 집행 여부를 떠나 선고만으로도 국민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효과가 충분히 있을 것이므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밝혔다. 서울지역 법원의 한 판사도 “법원은 형의 선고만 하고 그 집행은 법무부가 하므로 법원은 오로지 기소된 범죄 사실에 대한 양형을 정할 뿐”이라며 “사형을 선고해도 집행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 등을 고려하고도 사형을 선고한 것은 그만큼 죄가 중하며 유사 범죄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의미를 담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를 교화가 불가능한 범죄자로 판단한 재판부의 판단을 두고도 평가가 엇갈렸다. 이씨에게 사형을 선고한 서울북부지법 형사11부(재판장 이성호)는 “이씨는 교화 가능성도 없어 보이고 석방되면 더욱 잔혹하고 변태적인 범행으로 사회적 불안과 공포를 조장할 것”이라며 사실상 이씨에 대한 교화를 포기했다. 이에 대해 정형근 경희대 로스쿨 원장은 “이씨의 죄질이 극악무도해 사형에 처함이 상당하다고 해야지, 장차 교화 가능성이 없다고 단정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이는 범죄자의 건전한 사회 복귀를 목적으로 하는 교정기관의 역할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그러나 노명선 교수는 “교화 가능성은 범행의 동기, 수법, 범행 후의 태도 등 지금의 행태에 미루어 판단하는 것이고 이 판단에 대해 일정한 기준을 제시하고 합리성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대법원의 몫”이라며 “1심 판사로서는 합리적인 기준에 따라 판단했다고 보인다”고 말했다.
가석방이나 사면이 없는 ‘절대적 종신형’을 신설하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행 무기징역은 감형·가석방 등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사회로부터의 완벽한 격리’를 의미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천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특수범죄연구실장은 “국민 여론은 사형제 존치를 원하지만 사형 집행 시 국제여론 등의 후폭풍을 생각해 집행은 하지 않고 있는 어정쩡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며 “사형 대신에 가석방 없는 종신제를 논의하는 등 여론을 수렴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신지민 임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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