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초등학교 정문.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한 아이티(IT) 회사에서 일하던 서지혜(가명·36)씨는 이달 중순 사표를 썼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들을 돌보기 위해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은 저녁 7시30분까지 아이를 맡기는 ‘종일반’이 있었지만, 초등학교는 달랐다. 아이가 수업을 마치고 집에 오는 시각은 오후 1시쯤이었다. 경쟁이 치열해 ‘로또’라 불리는 ‘방과후 학교’에 뽑혀도 오후 3~4시면 끝났다. 아이는 맞벌이 부모가 퇴근하기 전 여러 학원을 ‘뺑뺑이’ 돌아야 했다. 서씨는 25일 “아이가 틱장애가 생길 정도로 학교와 학원 등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데 힘들어했다. 학원비도 만만찮아 차라리 내가 직장을 그만두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정부가 초등학교 1학년 자녀를 둔 부모의 돌봄 부담을 덜기 위한 지원대책을 내놨지만, 현장에서는 “미흡하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오전 10시 출근 장려’ 등 노동시간 1시간 단축을 뼈대로 하는 이 대책으로도 ‘돌봄 공백’을 메우기 어렵다는 것이다. 대기업에 다니는 김혜경(39)씨는 “민간기업에서는 육아휴직도 눈치가 보여 쓰기 어려운데 출근 시간을 늦추는 것은 현실적으로 더더욱 어렵다”고 말했다. 서지혜씨는 “출근 시간보다 더 큰 문제는 늦은 퇴근 시간”이라며 “일찍 하교하는 아이를 퇴근 전까지 맡길 곳이 턱없이 부족하다. 수많은 직장여성이 퇴사를 고민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발표한 ‘경력단절 여성 실태조사’를 보면, 초등학교 1~3학년(만 7~9살) 자녀를 둔 직장건강보험 여성 가입자 1만5841명이 지난해 새학기를 전후한 2~3월에 회사를 그만둔 것으로 나타났다. 육아정책연구소가 지난 10일 펴낸 ‘초등학교 입학 자녀를 둔 취업모 지원 방안’ 보고서를 봐도 ‘직장맘’의 임금과 취업률은 자녀 초등학교 입학으로 감소했다. 초등학교 아이를 둔 취업모 813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임금은 자녀 초등학교 입학 전 평균 214만원에서 입학 뒤 156만원으로 줄고, 상용직 취업률도 80%에서 60%로 줄었다.
돌봄 공백을 막기 위해선 육아휴직처럼 일정 기간 자녀 양육에 집중할 ‘돌봄 휴직’ 제도를 신설하고, 돌봄서비스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이재희 육아정책연구소 부연구위원은 “자녀 초등학교 입학 시기에 쓸 수 있는 돌봄 휴직 제도를 만들고, 프랑스와 스웨덴 등처럼 학교가 공간을 제공하고 지방정부는 방과후 돌봄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학교-지방정부 협력 모델을 구축하는 등 돌봄서비스 공급을 확대해야만 직장맘의 부담을 덜 수 있다”고 말했다.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