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세대와 다른 ‘요즘 아빠’들이 있다. 일과 가정의 균형을 추구하면서도 나만의 취향을 공유하길 원하는 3040 남자들. 40대인 김치호 볼드피리어드 대표(오른쪽 셋째)는 2016년 5월부터 요즘 아빠들을 위한 잡지 <볼드저널>을 펴내고 있다. 2015년 회사를 설립하기 전까지 야근이 잦은 직장생활을 했다. 어느 날 6살 아들이 폭탄을 던졌다. “아빠 저리 가!” 나는 왜 회사에 목숨을 걸고 있을까? ‘원래 그렇다’는 조언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 <볼드저널>을 창간했다. 잡지를 만들면서 ‘젠더’(사회문화적으로 만들어지는 성)라는 단어를 알게 됐다. 여성 관련 단어인 줄만 알았는데 남편·아빠가 되면서 생긴 고민과 닿아 있었다. 올해 초 독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젠더’ 이슈를 다뤄보겠다고 했다. ‘피곤한데 그런 것까지 알아야 하느냐’는 반응이 나왔다. 얼마 뒤 ‘미투’가 터져나왔다. 고개를 갸웃하던 아빠들이 ‘그게 뭔지 알아야겠다’고 했다. 최근 출간한 <볼드저널> 8호 주제는 ‘젠더 감수성’. 3월28일 늦은 저녁, 잡지를 만든 사람들과 독자들이 서울 마포구 서교동 북카페 디어라이프에 모였다. 젠더 감수성 강연이 시작됐다. 글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미투 운동’은 역사에서 어떻게 기록될까. 사람마다 시각은 엇갈린다. 그러나 적어도, 다음 세대가 살아갈 미래는 지금과 달라야 한다. 이러한 바람을 몸으로 실천하는 부모와 선생님들을 만났다. 사회가 요구하는 틀에 맞서 ‘나’답게 살 수 있길 소망하는 사람들이다.
30대 강아무개씨는 요즘 네 살배기 아들을 어떻게 키울지 고민이 많다. 남성인 자신이 어떻게 성장했는지를 되짚어보게 된다.
남중→남고를 거쳐 공대에 입학해 군대를 제대했다. 스스로를 ‘아무 문제 없다’ 여기는 남자들도, 자라면서 몸에 밴 문화로 인해 알게 모르게 여성을 비하하거나 성희롱을 하는 경우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 교회 활동을 열심히 하자 한 친구가 말했다. “네가 아무리 열심히 한다고 거기 있는 여자애들 다 따먹을 수 있냐?” 친구들이 웃었다. 그도 따라 웃었다.
“남자들끼리 쓰는 언어에 문제가 많다는 걸 대학생이 돼서야 깨달았어요. 그 이후로도 항상 깨닫는 부분이 있는 걸 보면 교육이 많이 필요해요. 이제 아들과 말이 조금씩 통하거든요. 우리 아이도 그냥 자라다 보면 여성에 대한 편견이나 편파적인 시선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생각을 가지지 않도록 제가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요.”
이런 고민을 하던 와중에 아버지를 위한 잡지 <볼드저널>이 펀딩을 받고 있는 프로젝트를 알게 됐다. ‘아빠의 젠더 감수성’을 주제로 여덟번째 잡지를 만들고 강연회를 한다는 내용이었다. ‘무언가 홀린 듯’ 지갑을 열었다. 지난 28일 저녁 강연을 들으러 서울 마포구 서교동 북카페 ‘디어라이프’로 향했다.
“행복하려면 젠더 알아야겠더라”
<볼드저널>이 주최한 젠더 감수성 강연회에는 주로 30~40대 50여명이 참여했다. 참여자 절반은 남성이었다. 강연장 뒤편 공간엔 스태프들이 ‘남의 아이’를 돌보고 있었다. 아이를 데려온 부모들을 위한 배려였다. <볼드저널> 발행인 김치호 볼드피리어드 대표는 연일 쏟아지는 ‘미투’를 보며 멘탈 붕괴를 겪었다고 털어놨다. “성폭력 사건은 나와는 먼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아는 누군가도 경험할 수 있는 일이구나 느껴지니 마음이 무거워지고 착잡했다.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둔 아빠로서 어떻게 하면 가정을 잘 꾸려갈까 고민을 많이 한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선 가족 구성원이 모두 행복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젠더’를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호를 준비하며 말투 하나, 단어 하나하나 조심하는 습관을 가지게 됐다. 상대방에 대한 공감 능력을 키워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젠더 감수성(Gender Sensitization). 언론 보도에 자주 등장하지만 여전히 낯선 단어다. 감수성이란, 그동안 살아온 방식을 민감하게 바라보고 ‘당연하지 않다’고 느끼는 감각이다. 우리 사회엔 여성 혹은 남성은 ‘~할 것이다’라는 편견이 있다. 이렇게 성별을 특정한 ‘틀’로 규정짓는 것이 젠더이다. 사회가 만들어 놓은 틀은 성장 과정이나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 법과 제도를 만드는 순간 등 곳곳에서 힘을 발휘한다. 그러니까 젠더 감수성은 당연하게 여기는 관계·통념·제도에 의구심을 품는 데서 시작된다.
3월28일 밤, 서울 마포구 서교동 북카페 디어라이프에서 <볼드저널> 주최로 젠더 감수성 강연회가 열렸다. 경제학자 우석훈은 두 살 터울 아들 둘을 낳으면서 ‘당연했던 길’에서 벗어났다. 박현정 기자
높은 자리 포기하니 혀를 차다
“저녁 식사들 하셨어요? 전 햄버거 사 먹었는데…. 애들 먹이려 만든 음식만 먹으니 햄버거가 되게 먹고 싶더라고요.”
강연 첫 순서를 맡은 경제학자 우석훈(50) 박사가 인사를 건넸다. <88만원 세대> 공동 저자인 그는 마흔 줄에 두 살 터울 아들 둘을 낳으면서 ‘당연했던 길’에서 벗어났다.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했던 둘째는 수시로 아팠다. 2년 전 또다시 병원에 입원하면서 하던 일 대부분을 접고 육아에 나섰다. 특별한 젠더 감수성이 있었던 게 아니다. 국가가 육아의 모든 책임을 엄마에게 ‘옴팡지게’ 뒤집어씌우면서 아내는 아픈 아이를 돌보느라 어쩔 수 없이 ‘경력단절여성’이 됐다. 아내의 퇴사는 어머니의 삶과 겹쳐진다.
“어머니 아버지는 두 분 다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다. 어머니는 집에 오셔서 저녁밥을 짓는데 아버지는 기원에 가셨다. 기원에 있는 아버지를 모셔 오는 게 내 일이었다. 똑같은 선생님인데 어머니는 집에서 일하고, 아버지는 기원에 있는 게 이상했다.”
우 박사는 살림하는 일이 즐겁다. 먹고 싶은 건 스스로 해 먹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가 일곱 살이 되자 음식 만들기에 참여시킨다.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높은 자리’를 마다했다. 대신 ‘한 푼 두 푼’ 벌기로 했더니, 주변 사람들이 하나같이 혀를 찼다. 아빠가 돈을 벌어 식구들 편하게 해야지, 쪼들리게 하느냐고. 지난해 출간한 육아분투기 <오늘 한 푼 벌면 내일 두 푼 나가고>를 통해 그는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남성 엘리트들 세상이 ‘남뽕’으로 유지된다고 분석했다.
“국가주의를 지나치게 신봉하는 경우 ‘국뽕’(국가와 히로뽕을 합친 말)이라고 한다. 한국에서 국뽕이라는 단어가 학문적으로 정의할 수 있다면 ‘남뽕’도 정의될 수 있을 것이다. 남녀 사이엔 작은 생물학적 차이가 있다. 그 차이의 수준을 넘어 우리는 ‘남뽕’ 교육을 한다. 남자아이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며 ‘강한 남성’이 되도록 훈련시킨다. 남자 엘리트들 사이 거친 어깨싸움, 그걸 참아내고 심지어 주도하기 위해 수많은 사례를 주입식으로 배우기도 한다. 아픈 아이를 두고 내가 꼭 해야 하는 일이 있을까? 나는 없다고 생각한다. 가족과의 시간을 비롯한 개인적 삶을 희생하고 ‘대의’를 위해 살아야 한다고 배웠다. 그게 남자의 삶이라고. 왜 굳이 남자일까? 80년대엔 여성이 뭔가 할 거라고 생각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세상, 여자도 남자도 피곤하다.”(336~340쪽)
아들 둘을 키워보니 차이가 작지 않았다. 딸·아들 간 차이보다 아들·아들 간 차이가 더 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경제학자인 막냇동생과 자신을 비교해봐도 ‘전화 목소리’를 빼곤 도무지 같은 점이 없다. “우린 너무 오랫동안 아들이나 딸, 이런 간단한 획일적 기준에 모든 것을 집어넣고 판단하는 손쉬운 방법에 익숙해져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322~323쪽)
지난해 경기도 고양시 한 초등학교 4학년 학생이 그린 그림. 초등젠더교육연구회 제공
‘기사도 정신’ 가르쳐야 할까?
우 박사는 참여자들에게 통계를 보여주었다. 비정규직을 포함한 한국 청년고용률은 41%. 결혼할 여건이 되는 젊은이가 극소수라는 의미다. “낮은 출산율은 너무나 당연하고, 성별 갈등도 여기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한국 남성 가사분담률은 약 16%. 노르웨이·스웨덴 같은 나라는 40%대이다. “인간답게 사는 것과 젠더 차이에서 무엇인가 잘못됐음을 인지하는 건 다른 방향 같지 않다. 남자들이 잘난 척하면서는 선진국으로 가기 어렵다.”
<볼드저널> 독자 자문단인 유성기(50)씨는 ‘다른 젠더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에 강연회에 왔다. 그는 회사 입사 20년 만인 2015년 12월부터 약 2년 동안 유아휴직을 했다. 초등학생 두 아들을 돌보기 위해서였다. 노동조합이 있는 큰 회사에서 일하지만, 사무직 가운데 육아휴직을 쓴 아빠 ‘1호’가 됐다. 우리 사회가 변하려면, 남성들이 주로 여성이 하고 있는 일에 직접 나서 몸으로 부딪히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대부분 엄마들이 참여하는 학교 활동도 열심이다. 비슷한 관심사를 공유하는 인터넷 카페를 통해 친분을 쌓은 아빠 15명은 단체 채팅방에서 주로 학폭위(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나 장난감 이야기를 한다. “학교에서 아빠들 참여를 적극적으로 유도하길 바랍니다. 어머니회는 낮에 엄마들을 모아 ‘일꾼’으로 쓰기 위한 통로거든요. 어머니회를 없애고 학부모회를 만들어 주말이나 저녁때 모여 교사와 학부모가 뭔가 으쌰으쌰 해보면 좋겠어요.”
아직 아빠는 아니지만, 강연회에 온 사람도 있었다. 공공연구기관에서 일하는 김정준(34)씨는 아내와 함께 미래에 태어날 아이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고민한다. 특히 요즘엔 젠더 문제가 관심사다. 며칠 전엔 아들을 낳을 경우 ‘기사도 정신’을 발휘하라고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두고 토론을 했다. 그는 사회 곳곳에 ‘평등의 가치’가 더 들어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직장생활을 시작하며 마주한 한국 사회는 생각보다 ‘폭력적’이었다. 아내 역시 ‘고된’ 전공의 생활을 하고 있다. ‘너무나 폭력적이고 사람에 대한 존중이 없는’ 우리 사회가 드러나는 과정이 미투 운동이라고 본다.
남자다움의 그늘
‘남자다움’ 혹은 ‘여자다움’을 엄격히 구분짓고, 다른 역할을 부여하는 건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 폭력적인 구조를 고착화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 폭력방지단체 ‘어 콜 투 멘’(A Call To Men) 공동설립자 토니 포터는 같은 남성들에게 ‘남자다움의 그늘’을 돌아볼 것을 촉구해왔다. 책 <맨박스>에서 그는 남성들이 사회화되면서 무의식적으로 학습하는 남자다움이 여성에 대한 각종 폭력을 용인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사회화 과정은 눈치챌 수 없을 만큼 조금씩 꾸준하게 이뤄지므로, 평범하고 착한 남성들 역시 자신도 모르게 일부 남성들 폭력을 묵인한다고 짚었다. “남자가 되는 법 대부분은 ‘여성 성향이라고 여겨지는 것들’로부터 거리를 두는 데서 시작된다. 남자는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서적 고통 따위 느끼지 않는 존재라고 배운다. 여성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남성 비중은 예상보다 훨씬 높은 편이다.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여성들의 말을 못 들은 체하는데 대개 ‘여자들은 말이 많아. 불평불만만 가득해’라는 식으로 정당화하곤 한다.”(22쪽)
두번째 강연자인 서한영교(35) 시인은 지난 1월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남겼다. “가담하지 않아도 연루되어버리는 일이라는 게 꼭 있다. 사내로 큰다는 것도 꼭 그렇다.” 어떤 경험을 한 것일까? “어린 시절 큰이모로부터 선물받은 ‘분홍색 니트’를 입고 학교에 간 날, 남자애들로부터 ‘계집애 같다’ 말을 정말 많이 들었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계집애처럼 보인다는 게 어떤 거지. 이렇게까지 모욕을 감수해야 하는 일인가’ 그런 생각이 들면서 그 옷을 다신 입지 않았다. 그 뒤 본격적으로 사내아이가 사나이로 크는 과정이 시작됐던 것 같다. 다리 벌리고 침 뱉는다든지 욕설하면서 자기과시 한다든지. 내 안의 여성성을 배제하게 된 과정이었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인 ‘인식’이 송두리째 무너진 건 열아홉 무렵이었다. 정말 좋아했던 고 박남철 시인이 술자리에서 성추행과 구타를 했다는 폭로가 있었다. 박 시인이 피해자를 도운 여성 문인을 향해 성폭력적인 ‘욕시’를 쓴 걸 보고 충격에 휩싸였다. “그때 처음 남성적 폭력이 괴물 같다고 느꼈다. 최근 미투 운동을 계기로 남성스러워야 한다는 인식에 균열이 일어난 젊은 친구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3월28일 밤, 서울 마포구 서교동 북카페 디어라이프에서 <볼드저널> 주최로 젠더 감수성 강연회가 열렸다.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위촉 전문강사 손경이씨가 독일 표지판과 한국 표지판 차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현정 기자
성? 미리 가르쳐 행복하게
미투 운동을 지켜보는 부모들이 가장 고민하는 건 ‘성교육’이다. 언제, 어디서부터, 어떻게 알려주어야 할지 난감하다. 이날 마지막 강연자는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위촉 전문강사 손경이(50)씨였다. 그는 자녀들에게 변화가 올 것을 미리 가르쳐 ‘행복하게 해주자’고 제안했다. “내가 내 몸을 사랑하고 잘 알아야 다른 사람 존중할 수 있어요. ‘생리 시작하면 키 안 큰다’ 같은 말은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표현이에요.” 젠더 감수성을 설명하며, 지난 2월 독일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화장실 등 안내 표지판이었다. 한국 표지판과 어떤 부분이 다를까? 성별에 따른 색깔 구분이 없다. 여성 상징 기호가 먼저 보이고, 그다음에 남성 상징 기호가 있었다.
성평등 동네 만들기 활동을 하고 있다는 한 여성 참여자는 “청소년 교육을 할 때 남학생들로부터 ‘선생님 꼴펨이에요? 여가부예요?’라는 이야기를 듣는다”며 조언을 구했다. “우리 어른들 잘못이에요. 내가 하진 않았어도 사과를 먼저 해요. 너희도 피해자라고. 돈 더 많이 낼 거고 관계를 리드해야 하고. 그런 식으로 사랑하다간 너희도 힘들 거라고. 우리가 노력을 많이 해야 해요. 남성이 남성을 강간한 사례를 말해주면, 권력이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럼 자신보다 더 약한 여자들도 힘들겠구나 합니다.”
‘프로불편러’가 필요하다
미투 운동으로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겨졌던 것들이 바뀔까. 지난 몇달간 여러 남성들을 만나 ‘젠더 감수성’ 관련 문제를 파고든 <볼드저널> 최혜진 편집장 생각이 궁금했다. “어느 남자분은 고향 친구들이 술자리에서 성매매 경험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며 ‘과연 바뀔까? 절망적이다’ 그렇게 말씀 하셨어요. 미투를 통해 가장 각성한 사람은 여성들이라고 생각해요. 여성들에게도 너무나 많이 내면화된 ‘틀’이 있었거든요. 이거 내 잘못이 아니었어. 내가 지금 불행하고 울화가 올라오는 건 딱히 내 잘못이 아니야. 그런 신호를 받은 거라고 느껴요. 여성분들이 자기 목소리를 주체적으로 내려는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어요. 그렇다면 당연히 그 주변 남자들에게 영향을 주겠죠? 그러면서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까, 생각해요.”
태어난 지 13개월 된 딸 이립이와 함께 강연회에 온 방순호(33)씨는 ‘각성한’ 아내 덕분에 사고의 폭을 넓히고 있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을 계기로 아내는 ‘프로불편러’로 거듭 진화했다. 여성들끼린 놀다 집에 돌아갈 때, 서로의 안전을 확인하는 것이 일상이라는 이야기를 그때 처음 들었다. 남성으로 살면서 경험하지 못한 일이었기에 큰 충격이었다. 아내가 너무 바빴던 데다, 요리하는 걸 좋아해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 가사노동을 주도했다. 그는 집안일을 저평가하는 사회가 ‘불편’하다. “집안일의 숭고함을 남성들은 잘 모르잖아요. 이과 출신인 제가 보기에 빨래는 엄청난 화학적 지식의 집합체에요. 어머니들이 1~2년 쌓은 노하우가 아니라, 숙련된 일인거죠.”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선 우리 사회에 더 많은 ‘프로불편러’가 필요하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참고 자료: <젠더감수성교육 매뉴얼: 지금 시작하는 젠더감수성>(한국성폭력상담소·2013), <나의 첫 젠더 수업>(김고연주·2017)
3월15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미투운동과 함께하는 범시민행동 출범 기자회견에서 성폭력에 대한 왜곡된 인식 및 정부 대책 마련 촉구 퍼포먼스가 열리고 있다.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3월28일 밤, 서울 마포구 서교동 북카페 디어라이프에서 <볼드저널> 주최로 젠더 감수성 강연회가 열렸다.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위촉 전문강사 손경이씨가 ‘성교육 하는 법’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