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욱 기자가 지난달 27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구립 용산어린이집에서 보육교사 일일체험을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아이는 와락 울음을 터트렸다. “오늘은 ‘아빠 선생님’이 오신 날이에요.” 보육교사 백송이(33)씨가 어찌할 줄 모르는 기자를 가리키며 소희(가명·1)를 달랬지만, 좀처럼 눈물은 잦아들지 않았다. 어울리지 않게 귀여움과 깜찍함을 섞어 ‘안녕’하고 인사를 건넨 게 화근이었을까. 아이는 마치 못 볼 것을 본 사람처럼 눈을 꼭 감고 목놓아 울었다. 영준(가명·1)이도 친구의 울음에 얼굴을 씰룩이더니, “으앙~”하고 눈물을 보였다. 한두 아이가 울자, 다른 아이들의 얼굴도 굳어졌다. 순간, 걷잡을 수 없는 후회가 밀려왔다. ‘망했다.’ 어린이집 일일보육교사 체험의 시작이었다.
지난달 27일 오전 9시, 서울 용산구에 있는 구립 용산어린이집 ‘귀여운 반’은 아이 울음소리로 가득했다. “아직 몇몇 아이들이 엄마, 아빠와 떨어지는 것에 적응하지 못한 탓이에요.” 보육교사 최가은(27)씨가 기자를 안심시키며 말했다. 귀여운 반은 이 어린이집에서 가장 어린 아이들이 생활하는 공간이다. 2016년에 태어난 만 1세 아이들 10명을 보육교사 2명이 돌보고 있다. 아이들은 이곳에 온 지 한 달이 채 안 됐다. 새학기가 시작한 올해 3월부터 등원했기 때문이다. 이곳 생활에 적응하는 과정이어서 귀여운 반 아이들 가운데 일부는 아침에 어린이집에 오면, 소희처럼 엄마를 찾으며 운다고 최씨는 설명했다.
보육교사들은 아이들이 울음을 그치지 않자, 품에 꼭 안고 등을 토닥여주었다. 아이들은 “엄마, 엄마”하며 보육교사의 품을 파고들었다. 그러더니 이내 거짓말처럼 울음을 그치기 시작했다. 엄마 품처럼 보육교사의 품에서도 아이는 안정감을 느끼는 것이었다.
“이거 한 번 먹어볼까?” 백송이씨는 울던 아이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간식을 내보였다. 저마다의 식판에 담긴 떠먹는 요구르트와 잘게 잘린 아몬드를 보여주자, 아이들은 책상 앞으로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아빠 선생님, 아이들 간식 먹는 것 좀 도와주세요.” 백씨가 말했다. 그는 아이들이 친숙하게 느낄 수 있도록 기자를 ‘아빠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인사만 해도 우는 아이들이 내가 주는 간식을 먹으려고 할까?’ 보육교사들과 함께 아이들의 손을 씻긴 뒤, 요구르트를 한 숟가락 떠 소희 입 앞으로 가져갔다. 손끝이 떨려왔다. “소희야, 아~ 해보자. 아~.” 하지만 굳게 닫힌 입은 열리지 않았다. “그럼 아몬드를 한 번 먹어볼까?”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등에서 식은땀이 났다. ‘열려라. 참깨.’ 주문이라도 외워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제가 해 볼게요.” 백씨가 숟가락을 받아들자, 소희가 간식을 먹기 시작했다.
‘아빠 선생님’의 민망함을 읽었는지, 영준이가 다가왔다. “이거 같이 먹을까?”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요구르트를 건네는 손길보다 더 조심스럽게 ‘아~’하고 입을 벌렸다. 성공. 영준이가 간식을 받아먹자, 다른 아이들도 아빠 선생님의 손을 어색해하지 않았다.
보육교사들의 하루는 아침 8시30분부터 시작됐다. 아침 7시30분부터 나와 있는 당직 교사를 뺀 나머지 보육교사들은 이때부터 교실을 정리하고 등원하는 아이들을 맞이했다. 이어 아이들의 건강 상태 등을 살피고 간식을 먹였다.
간식을 먹고 나서, 오전 10시부터는 본격적인 ‘놀이’가 시작됐다. 보육교사들은 교실에 마련해 둔 장난감과 각종 교구 등을 이용해 아이들이 자유롭게 놀 수 있도록 유도했다. 만1세 반 아이들은 언어능력이 발달하지 못해 유아반 아이들처럼 정상적인 수업이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놀이를 통해 말하기·듣기 훈련을 하고, 소근육·대근육 등 운동 발달능력을 키운다고 보육교사들은 설명했다.
여러 명의 아이를 동시에 돌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책을 가져와 읽어달라고 하는 아이, 블록 놀이를 하자고 하는 아이, 색종이를 찢어 자기 얼굴 사진 위에 풀로 붙이는 아이, 토끼 인형을 꼭 껴안고 있는 아이, 교실을 뛰어다니는 아이, ‘엄마 상어, 뚜루루 뚜루’하는 노래를 듣다가 갑자기 엄마 생각이 났는지 “엄마”하고 우는 아이 등등. 이 아이, 저 아이와 놀아주면서도 우는 아이를 달래고, 아이들이 넘어지거나 부딪히지 않는지, 위험하게 책상이나 교구장에 올라가지 않는지 등도 살펴야 했다. 출근 2시간도 안 돼, 서서히 넋이 나가기 시작했다. 백씨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아이들이 유희실에서 보육교사와 함께 원통형 터널 통과하기 놀이를 하고 있다.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3시간 같은 30분이 지나자, 보육교사들은 아이들을 유희실로 데리고 나갔다. 유희실은 ‘ㅁ’자형 구조인 용산어린이집의 가운데에 마련된 가장 넓은 실내 공간이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미끄럼틀도 타고 자유롭게 뛰어논다. 당초 보육 계획은 어린이집에 딸린 실외 놀이터에서 야외활동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날 미세먼지가 심한 탓에 실내활동으로 대체됐다.
보육교사들은 이곳에서 아이들이 풍선을 갖고 놀게 했다가, 미끄럼틀을 타게 했다가, 피아노를 치게 했다가, 금세 또 공을 가지고 놀게 했다가, 이번에는 비눗방울 놀이를 했다가, 잠시 뒤 원통형 터널 통과하기 놀이를 하는 등 수시로 놀이기구를 바꿔가며 아이들과 뛰어놀았다.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짧은 아이들이 지루해하지 않도록 발달에 필요한 놀이를 수시로 바꿔가며 하는 것이었다. 특히, 이 시간은 아이들이 몸을 움직이면서 뛰어놀기 때문에 잠시도 아이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절대 아이를 등지고 있어선 안 돼요. 아이들이 다칠 수도 있기 때문에 항상 아이들 전체를 시야에 두고 있어야 해요.” 백씨가 말했다. 끝없이 아이들에게 무언가에 관해 이야기를 하면서, 눈으로는 아이들을 살피고, 몸은 쉴 새 없이 계속 움직이다 보니 몸은 금방 녹초가 됐다.
1시간여를 뛰어논 뒤, 아이들을 교실로 데려가 손을 씻기고 기저귀를 갈아줬다. 이어 점심을 먹였다. 조와 보리, 현미가 섞인 잡곡밥에 소고기 된장국, 양배추 당근 볶음, 두부양념조림, 고춧가루가 들어가지 않은 깍두기가 반찬으로 나왔다. 혼자서 밥을 먹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대체로 아이들은 숟가락질이 서툴렀다. 밥과 국과 반찬을 숟가락으로 뜨기도 힘겨워했을뿐더러, 뜨더라도 입에 제대로 넣지 못해 흘리기 일쑤였다. 어른들의 도움 없이 아이들은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없었다. 일일이 아이들에게 밥을 떠먹여야 했다. 그러면서 보육교사들은 밥도 먹어야 했다. 보육교사들은 아이들과 함께 밥을 먹는다. 따로 식사할 수 있는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밥을 씹고 있을 때, 밥을 국에 말아 허겁지겁 입에 욱여넣었다.
식사를 마친 아이들의 이를 닦이고, 옷을 갈아 입힌 뒤 이부자리를 펴줬다. 점심을 먹은 아이들은 하품하기 시작하더니 하나같이 잠들었다. 드디어 꿈에 그리던 휴식시간? 하지만 착각이었다. 보육교사들은 그때부터 아이 부모에게 보내는 ‘대화 수첩’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어린이집에서 아이가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할 수밖에 없는 학부모들에게 쓰는 일종의 편지였다. 아이가 아침에 어린이집에 온 뒤 어떻게 지냈으며, 건강 상태와 식사량, 배변 유무, 낮잠시간 등을 꼼꼼하게 기록했다. 그러면서 낮잠을 자는 아이들의 자리도 동시에 살폈다. 땀을 흘리는 아이는 이불을 살짝 걷어주고, 간혹 잠에서 깨 칭얼거리는 아이는 토닥여서 다시 잠을 재웠다. 아이들의 장난감과 교구를 씻고 소독하는 일도 이 시간에 이뤄졌다. 2시간이 또 쉴 새 없이 지나갔다.
김경욱 기자가 지난달 27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구립 용산어린이집에서 보육교사 일일체험을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오후 3시가 넘어서자 아이들이 일어났다. 일어난 아이들은 오후 간식을 먹었다. 간식은 떡과 보리차가 나왔다. 낮잠을 푹 자서인지 아이들은 방긋방긋 웃으며 떡을 먹었다. 그리고 일부 아이들이 하원 하기 시작했다. “적응 기간이라 아이가 낮잠을 자고 나면 데리러 오는 부모가 많다”고 최씨는 설명했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30분, 그다음에는 1시간, 2시간, 3시간 이런 식으로 조금씩 어린이집에 있는 시간을 늘려가며 부모와 떨어지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나이가 어린 아이들은 하원 시간을 가장 힘들어했다. 빨리 집에 가려고 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짐을 선반에서 꺼내놓는다거나, 외투를 걸쳐 입고 교실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딩동’하고 벨 소리가 울리면 아이들은 자신의 엄마가 왔을까 싶어 일제히 교실 안에 설치된 인터폰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영준이는 엄마가 온 친구를 보면서, 교실 한쪽 구석에 앉아 소리 없이 눈물만 흘렸다. 안쓰러운 마음에 다가가 꼭 안아주자, 그제야 “엄마, 엄마”하며 참았던 울음을 토해냈다. “잘 지내는 것 같지만, 아이들은 이곳에서 엄마가 보고 싶은 것을 참고 있는 거예요.” 백씨가 말했다. 그렇게 울다가도 엄마가 오면 아이들은 금방 웃음 지으며 교실 문을 나섰다.
“‘아빠 선생님 사랑해요’, 해줘야지.”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에게 최씨가 말하자, 아기천사들은 팔을 들어 일일보육교사를 힘껏 안아줬다. 하루의 고단함이 씻은 듯이 날아갔다. “아가야, 건강하게 무럭무럭 잘 자라렴.” 작별 인사를 건넸다. 돌아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오래도록 지켜봤다.
이날, 오후 4시30분이 되자 귀여운 반 아이들은 하나도 남지 않았다. 하지만 보육교사의 일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교실 바닥과 책상, 교구장을 청소하고, 그날의 보육활동을 평가하는 일일보육일지도 작성해야만 했다. 오후 5시30분 숨 가빴던 일과가 끝이 났다.
“일하면서 가장 힘든 점이 뭔가요?” 보육교사에게 물었다. “사람들의 불신이요.” 백씨가 말했다. “어린이집 아동 학대 사건이 한 번씩 보도되면, 사람들은 일부 극소수 보육교사의 문제를 전체 어린이집 보육교사의 문제로 일반화해서 생각하는 것 같아요. 심지어 가까운 친구들까지 ‘너희는 안 그러지?’라며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데, 보육교사에 대한 이런 부정적인 시선을 견뎌야 할 때가 가장 힘들죠. 보육교사와 아이들 사이엔 애착 관계가 형성돼요. 많은 보육교사들이 아이들을 자기 자식처럼 아끼며 일을 하고 있어요. 믿고 아이들을 맡겨주셨으면 좋겠어요.”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