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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세월호 지켜보며 ‘내 아이’ 넘어 ‘마을공동체’ 발견했죠”

등록 2018-04-03 19:06수정 2018-04-03 20:04

【짬】 용인 동천마을네트워크 김경애 운영위원

지난 3월24일 ‘머내 만세운동’을 재현하는 행사를 마무리했던 동천동 옛 주막거리에서 만난 동천마을네트워크의 김경애 운영위원. 사진 강성만 선임기자
지난 3월24일 ‘머내 만세운동’을 재현하는 행사를 마무리했던 동천동 옛 주막거리에서 만난 동천마을네트워크의 김경애 운영위원. 사진 강성만 선임기자
지난달 24일 경기도 용인시 동천동 머내 버스정류장 근처 주막거리엔 300명이 넘는 주민이 모였다. 독립만세 구호가 터져나왔고 일본군 총탄에 쓰러지는 퍼포먼스도 했다. 가로 7m 대형 태극기도 내걸렸다. 앞서 고기동 고기초교에 모여 3시간 동안 5㎞를 걸어 주막거리에 도착했다. 1919년 3월29일 이 지역에서 일어난 ‘머내 만세운동’이 동네 주민들의 자발적인 노력으로 99년 만에 재현된 순간이다. 이 대회 준비를 이끌었던 동천마을네트워크 김경애 운영위원을 지난달 30일 동천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관의 지원 없는 주민들만의 행사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김 위원은 먼저 이 지역의 역사와 지리를 연구하는 주민 모임인 ‘머내여지도’ 이야기를 꺼냈다. “재작년 9월 주민인 김창희 통의도시연구소 이사의 제안으로 10여명이 만들었어요. 머내는 동천동 일대의 옛 지명이에요.” 지난해 12월엔 자료집을 냈고 올해는 책도 낼 계획이다. “머내여지도 활동을 통해 우리 동네에서 만세운동이 있었고 주민 2명이 당시 일본군의 총탄에 절명했다는 사실도 알게 됐어요.” 회원들은 머내 3·1운동의 모습을 당시 판결문과 후손 증언 등을 통해 복원하고 시위 길도 옛 지도 등과 비교해 고증해냈다.

용인 동천·고기동 주민들이 지난 3월 24일 재현한 ‘머내 만세운동’의 한 장면.  동천마을네트워크 제공
용인 동천·고기동 주민들이 지난 3월 24일 재현한 ‘머내 만세운동’의 한 장면. 동천마을네트워크 제공

“지난해 10월 ‘마을 팟캐스트’에서 머내 만세운동을 주제로 녹음을 한 뒤 뒤풀이에서 ‘한번 재현해보자’고 의기투합했어요.” 밤토실도서관, 극단동동, 밥챙알챙 마을합창단 등 10여개 단체로 준비 모임을 꾸려 지난 1월9일 첫 모임을 시작했다. 지역 대안학교인 수지꿈학교, 소명중고, 이우학교와 공립 한빛중 역사교사들은 머내 만세운동을 주제로 수업을 하기도 했다. 주민 대상으로 사전교육도 했다. “지난 2월말 독립운동 연구자인 한시준 단국대 교수를 모셔 3·1운동 강의를 들었어요. 주민 70여명이 참석했죠.”

그가 지금 살고 있는 고기동은 옛 마을 형태가 조금 남아 있지만, 동천동은 대규모 아파트촌으로 탈바꿈했다. “90년대 후반에 지역 개발이 시작됐어요. 원주민은 대부분 땅을 팔고 떠났고 일부가 아파트 입주권을 가지고 돌아왔죠. 원주민 비율은 10%가 안 될 겁니다.” 그도 외지인이다. 8년 전 아이들 교육을 위해 이사 왔다. “세 아이 가운데 둘이 이우학교를 다녔어요.”

재작년 주민 10여명 ‘머내여지도’ 꾸려
지역사 연구하다 ‘3·1운동’ 기록 발견
마을 팟캐스트로 알리고 ‘준비모임’ 만들어
‘3·29 머내 만세운동’ 99년 만에 재현

아이들 교육 위해 이주…집지어 ‘정착’
“동네 장서가 연결 집을 작은 도서관으로”

‘머내 만세운동’ 재현 행사 장면.
‘머내 만세운동’ 재현 행사 장면.
주민들은 재작년 ‘동천마을네트워크’(운영위원장 연인선)를 결성했다. 이번 만세 대회가 ‘성공’을 거둔 데에는 네트워크의 힘이 크게 작용했다. 그는 세월호 이야기를 했다. “2014년 4월 참사가 난 뒤 ‘우리 마을부터 뭐라도 해보자’고 생각했어요. 당시 저는 이우학교 학부모 모임과 마을 인문학공부모임 ‘문탁’에 참여하고 있었죠. 우리가 원하는 삶을 우리 스스로 마을 안에서 만들자고 맘먹었죠.” 마을 단체들이 모여 2015년 축제를 꾸렸다. 이듬해는 20여개 마을단체로 네트워크를 결성했다. 2016년 그는 마을웹진 <수지큐> 운영진으로도 참여했다.

김창희 이사는 대회 보도자료에서 ‘만세운동 재현은 서로 섞이지 못했던 신구 주민들이 함께 어울리도록 해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갈 실마리가 됐다’고 했다. “대회에 원주민 대여섯분도 참여했어요. 3·29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이덕균 선생의 후손인 이석순님이 마무리 발언도 했죠. 행사에 참여한 원주민들이 주체라고 생각하고 모금에도 적극 나서주셨어요. 대회가 원주민과 이주민이 서로 이해하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행사가 끝난 뒤 용인문화원에서 내년 100주년 행사는 함께하자고 했어요.”

‘머내 만세운동’ 재현 행사 장면.
‘머내 만세운동’ 재현 행사 장면.
그는 머내여지도 자료집에서 지역의 한센인 정착지인 염광농원과 수지가구단지의 역사를 정리했다. 자료집 출판은 동네서점이자 1인 출판사인 ‘우주소년’에서 맡는단다. “용인 기흥구 주민들도 머내여지도를 모델로 기흥의 역사를 탐구하는 모임을 준비하고 있다더군요.”

그가 동네 역사를 공부하면서 얻는 가장 큰 즐거움은 옛길을 새롭게 발견하며 느끼는 감동이다. 만세 시위 길도 그중 하나다. “머내여지도 회원 한분이 우리 공부가 ‘마을이 보이는 활동’이라더군요. 마을 하천인 동막천과 손곡천 답사 기행도 주민들과 함께 해보려고 해요.”

그는 역사학도다. “이 동네로 오기 전에는 마을 활동을 한 적이 없어요.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활동을 하는 단체에 후원금을 내는 것으로 만족했지요.” 요즘은 아이들한테 “엄마가 안 해도 되잖아”라는 얘기를 들을 정도다. 무엇이 그를 열정적인 마을활동가로 변모시켰을까. “상황이 저를 움직이게 했죠. 세월호 때 우리 아이만 돌보는 것을 벗어나 ‘시스템’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답은 마을에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주민들이 서로 어울려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다면 아이들이 더 안전하고 행복하리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는 자신을 두고 ‘버텨주는 존재’라고 했다. “저를 필요로 할 때 제가 있어주는 게 중요해요. 아직까지 손 드는 분이 없어 제가 이분 저분에게 연락하며 활동하고 있죠.”

그의 가족은 며칠 뒤 고기동에 직접 지은 집에 입주할 예정이다. “책을 좋아해 작은 도서관 만들기가 꿈이었어요. 집을 작은 도서관으로 만들려고요. 40~70대 어른을 위한 도서관이죠. 동네에 책 많은 사람이 누군지 잘 압니다. 그분들 장서를 연결시킨 네트워크 형태의 도서관을 계획하고 있어요. 지역자료 보관소도 겸하고요.”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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