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지 관점이 떨어진다고 지적받는 서울시의 포스터들
서울시의 복지정책 홍보물이 성차별 논란에 휩싸였다. 서울시의 ‘정책 신제품’을 개발하는 가상연구소인 ‘내일연구소 서울’이 내놓은 홍보 포스터가 그 주인공이다. 서울시가 10대~60대까지 세대별로 지원하는 맞춤형 정책을 알리기 위해 제작한 이 포스터를 두고 “남녀의 성역할을 고착화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앞서 지난해 12월에도 서울시는 뉴욕에 ‘한복 여성 홍보 포스터’를 내보내려다 성상품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서울시는 지난달 29일 지하철 역사와 버스, 가판대에 ‘82년생 김지영’ ‘93년생 이진욱’ ‘67년생 정지환’ 등으로 시작하는 정책광고 포스터 5건을 게재했다. 각 세대별로 서울시가 지원하는 맞춤형 정책을 알리기 위해 설치된 홍보물이었다. 출산·육아·경력단절·취업차별·남녀차별에 고통 받는 여성의 삶을 그린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모티브로 삼은 홍보물이었다.
문제는 이 홍보물이 소설의 취지와 달리 ‘육아=여성’ ‘구직=남성’ 처럼 남녀의 성역할을 고정시켜 결과적으로 성차별을 조장한 것이다.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82년생 김지영, 당신의 내일을 서울이 연구합니다’라는 홍보물에는 신혼부부 주택공급, 국공립 어린이집 신설 등의 내용이 담겼다. 반면 남성이 주인공인 ‘93년생 이진욱’ 홍보물에는 청년수당, 청년 임차보증금지원, 청년일자리센터 등의 정책이 담겨 있었다.
누리꾼들은 SNS에 이 홍보물을 찍어 올리며 ‘남성이 등장하는 홍보물은 일자리 정책을 소개하면서, 여성이 등장하는 광고에선 육아를 강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누리꾼 영**은 “서울시 관계자들이 <82년생 김지영>을 읽어봤는지 모르겠다.
혹시 서울시는 ‘82년생 김지영을 유행어 정도로 생각하는 거냐”고 꼬집었다. 또다른 누리꾼 he*** 역시 “<82년생 김지영>은 여성들이 겪는 경력단절과 성차별, 소위 결혼-출산-육아의 맘고리즘을 그려낸 소설이다. 그런데 이런 소설을 캐치프레이즈로 이용하면서 겨우 넣은 게 어린이집, 산후도우미, 신혼부부 주택공급이냐”고 밝혔다.
비판이 거세지자 서울시는 “기획 의도와 다르게 일부 포스터가 우리 사회의 전통적인 성역할을 고착화시킨다는 우려에 공감하며, 이를 수용해 해당 콘텐츠를 수정하고 있다. 빠른 시일 내에 지적된 포스터를 교체하겠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논란을 자초한 홍보물은 ‘일부 포스터’에 그치지 않는다. 제2의 전성기를 응원한다는 ‘67년생 정지환’ 역시 남자였다. 은퇴 이후 새로운 삶을 준비하기 위한 정책은 남성 모델을 내세웠다. 반면, 간병 등 돌봄을 받아야 하는 ‘51년생 김현자’ 모델은 여성이었다.
홍보물의 색상 역시 논란이 됐다.
여성을 모델로 내세운 홍보물은 모두 분홍색 계열을 사용했고, 남성의 경우엔 파란색을 사용했다. 여성이 모델인 ’82년생 김지영’과 ‘2003년생 박보람’ 옆에만 웃는 얼굴과 하트 이모티콘이 들어간 것도 문제였다. 누리꾼 햄**은 “젊은 여성 이름 뒤에 ♥ 이런거나 붙이고 핑크색 주황색을, 남성들은 파란색·초록색이다. 정말 사소한 것까지 성역할 고정관념에 충실한 성차별 끝판왕 홍보물”이라고 비판했다. 서울시는 포스터를 교체하겠다고 밝혔지만, ‘내일연구소 홈페이지’는 여전히 같은 홍보물이 올라와 있다.
서울시 내일연구소 누리집 화면 갈무리. 논란의 홍보물이 여전히 게시돼 있다.
서울시의 성인지 관점에 대한 비판이 제기된 홍보물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12월 서울시가 뉴욕 타임스퀘어 등 미국 뉴욕시 전역에 내보낼 예정이었던 서울 관광 홍보 포스터 역시 ‘여성의 몸을 상업화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한복을 입은 여성의 실루엣에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경복궁, 광화문 광장을 비치게 만들어졌는데, 일부 시민들이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여성이 옷고름을 잡은 모습 위에 “서울에서 잊을 수 없는 체험을”이라는 문구가 쓰인 이 포스터를 두고 일부에선 ‘기생관광’을 떠올리게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결국 서울시는 이 광고를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논란이 됐던 서울시 관공 홍보 포스터.
녹색당 서울시장 후보인 신지예(27)씨는 “한복 입은 여성 홍보물보다 이번 82년생 홍보물은 서울시의 부족한 성인식적 관점을 더욱 잘 드러냈다”며 “왜 같은 문제가 반복될까요? 근본적인 관점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고 밝혔다. 신씨는 이번 홍보물에 등장한 ‘청년의 사랑을 위해’라는 문구 역시 비판받아야 한다고 했다. 신씨는 “청년의 사랑에 투자한다며 신혼부부를 위한 주택 공급을 늘리겠다고 한다”며 “결혼해 아이를 낳을 사랑이 아니면 투자가치가 없다는 것인가. 아이를 안(못) 낳든 결혼을 안하든 모든 청년의 사랑은 존중되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황춘화 기자
sflow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