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노태우, 박근혜 전 대통령. 한겨레 자료사진
“헌법질서를 문란케 한 점에서 죄질이 매우 무겁고 대통령의 지위를 이용해 엄청난 부정축재를 한 것은 대통령 재직 중 경제안정에 기여하는 등 업적이 있었다고 해도 크게 참작되지 않아 법정 최고형을 선고할 수밖에 없다.”
(1996년 8월26일, 전두환 전 대통령 1심 선고)
“국정질서가 혼란에 빠지고 탄핵 사태까지 벌어진 주된 책임은 헌법상 부여된 책무를 방기한 대통령에게 있다. (…) 다시는 국정을 혼란에 빠뜨리는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경계하기 위해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2018년 4월6일, 박근혜 전 대통령 1심 선고)
6일 재판부가 박근혜 전 대통령 대해 밝힌 선고 이유는 22년 전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한 1심 선고 취지와 닮았다. 세 사람에게 적용된 범죄는 달랐지만, 법원은 대통령의 막강한 권한을 사적으로 유용한 책임은 모두 엄중히 물었다.
1995년 11월21일 노태우 전 대통령이 수천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 구속된 데 이어, 다음 달 21일 전두환 전 대통령이 내란 등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두 전직 대통령은 검찰 수사 단계부터 혐의를 강하게 부인했다. 특히 전 전 대통령은 검찰 출석이 예정된 날 서울 연희동 자택 앞에서 “검찰의 태도는 진상규명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현 정국의 정치적 필요에 따른 것”이라는 ‘골목 성명’을 발표하고 고향인 경남 합천으로 갔다. 이후 체포돼 사법부의 심판이 시작된 뒤에도 정치투쟁은 이어졌다. 1심 재판 도중 사선변호인들이 재판 일정에 불만을 표시하며 총사임한 뒤 국선변호인이 지정되자, 이들도 재판 출석을 거부했다. 하지만 재판부의 인치 방침에 곧바로 법정에 모습을 다시 드러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6년 10월 ‘40년 지기’ 최순실씨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이 불거지며 헌정 사상 탄핵된 첫 대통령이 됐다. 그는 검찰 조사와 헌법재판소의 출석 요구에 계속 응하지 않다가 파면 이후인 지난해 3월21일 처음으로 검찰 포토라인에 섰다. 박 전 대통령 역시 지난해 10월16일 추가 구속영장 발부 이래 이날 열린 선고공판까지 법정에 나오지 않으며 줄곧 재판을 거부했다. 전 전 대통령에 비해 법정 ‘정치투쟁’의 강도가 더 올라간 셈이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은 12·12쿠데타를 주도하고 광주 민주화운동을 유혈진압한 혐의가 인정돼 1심에서 각각 사형과 징역 22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항소심이 비자금 일부를 무죄로 판단하며 각각 무기징역(추징금 2205억원)과 징역 17년(추징금 2628억원)으로 감형했고, 형이 확정됐다. 이들은 1997년 12월 외환위기를 맞아 구속 2년여 만에 특별사면됐지만, 추징금은 사면대상에서 제외됐다. 전 전 대통령은 1673억원이 체납된 2003년 “내 통장에 잔액은 29만원뿐”이라며 추가납부를 거부하다 2013년 형법의 추징·몰수 시효를 연장하는 ‘전두환법’을 끌어내기도 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3월15일 오전 1박2일간 검찰 조사를 마치고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을 나서고 있다. 신소영 기자
1달 새 구속기소된 전·노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박 전 대통령에 이어 이명박 전 대통령도 100억원대 뇌물수수와 350억원 횡령, 수십억원 조세포탈 혐의로 지난달 22일 구속돼 오는 9일 재판에 넘겨진다. 서울중앙지법 유일의 형사대법정에서는 박 전 대통령의 ‘국가정보원 특활비’ 재판과 ‘20대 총선 새누리당 경선 개입’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데, 박 전 대통령이 계속 나오지 않고 이 전 대통령이 변호인단과 함께 재판에 나오면 이 법정을 차지할 가능성이 있다. 검찰 수사에 대응하는 모습만 놓고 보면 세 전직 대통령보다 이 전 대통령 쪽 반발의 강도가 가장 높다. 구치소 방문 조사에 응했던 박 전 대통령과 달리 이 전 대통령은 구속수감 이후 지금껏 검찰의 방문 조사를 세 차례나 거부했다. 현소은 기자
son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