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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법원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출발점 박근혜’ 단죄

등록 2018-04-06 20:53수정 2018-04-06 22:36

박근혜 1심 선고

‘문화예술인 지원배제’ 유죄
“정치성향 다르다고 배제는 위법”
박 “지시 안 했다” 부인했지만
“김기춘 나선 건 박근혜에서 비롯”

문체부 노태강 등 사직 압박
대통령 ‘지시’는 강요죄 판단
김기춘 비서실장이 2015년 1월26일 청와대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 화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김기춘 비서실장이 2015년 1월26일 청와대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 화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화예술계 전반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차별적인 지원을 통해 다수의 문화예술계 종사자들이 불이익을 당했고, 담당 직원 또한 위법·부당한 지시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직업적 양심에 반하는 업무를 고통스럽게 수행해야 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재판장 김세윤)는 6일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의 궁극적 책임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자신과 다른 목소리를 ‘좌편향’으로 낙인찍은 뒤 자의적으로 지원을 배제해 표현의 자유를 옥죄고 평등의 원칙을 침해한 책임을 엄히 물은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의 혐의 대부분이 지난 2월 같은 재판부가 선고한 최순실씨 선고와 겹치지만,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관련 혐의는 최씨 아닌 박 대통령에게만 적용됐다.

“출발점은 박근혜”… ‘모르쇠’ 안 통했다 박 전 대통령은 지금껏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과 공모해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화예술위원회·영화진흥위원회·출판진흥원 직원들에게 특정 문화예술인에 대한 지원 배제를 강요한 혐의(직권남용·강요)에 대해 “보고받거나 지시한 적 없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면서 주변 참모진에게 책임을 미루고 자신의 개입 정도를 애써 축소해왔다.

그러나 재판부는 “김기춘의 지시, 문화예술계 ‘좌파’에 대한 지원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청와대의 기조는 모두 ‘좌편향’돼 있는 문화예술계를 시정할 필요성이 있다는 피고인의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김 전 실장은 지원배제 행위의 ‘행동대장’으로서 책임을 공유할 뿐, 가이드라인을 제공한 것은 박 전 대통령이라고 본 것이다. 그 근거로 박 전 대통령이 “좌파들이 갖고 있는 문화계 권력을 되찾아 와야 한다”, “좌편향 문화예술계에 문제가 많다”고 말하고 지원배제 방침의 초안 격인 ‘문제단체 조치내역 및 관리방안’ 및 후속 조치 내역을 보고받고 승인한 점 등을 짚었다.

재판부는 “국정 최고책임자로서의 지위를 종합해 보면, 개별 행위를 실행하지 않았더라도 범행 전체에 대한 공모는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박 전 대통령이 “<창비> <문학동네> 등 문예지 예산이 지원됐는데 보수 문예지는 축소됐으니 해결하라”고 지시한 뒤 대책을 보고받는 등 특정 단체에 대한 지원배제 행위에도 관여했다고도 지적했다.

이날 판결은 지난해 7월 김 전 실장 등의 1심 재판부가 “보수주의를 표방해 당선된 대통령이 ‘좌파에 대한 지원 축소’를 표방한 것이 헌법이나 법령에 위반된다고 볼 수 없다”면서 ‘면죄부’를 준 데 대한 반박으로 평가된다.

노태강 전 문화체육관광부 체육국장이 2017년 2월 8일 오후 한겨레 토요판 이진순씨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노태강 전 문화체육관광부 체육국장이 2017년 2월 8일 오후 한겨레 토요판 이진순씨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블랙리스트’·‘사직 요구’ 강요죄 첫 인정 재판부는 지원배제 행위의 여파로 이뤄진 1급 공무원 3명(최규학·김용삼·신용언)에 대한 사직 강요도 유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들은 위법한 지원배제 명단 실행에 소극적이었다거나 (박 전 대통령과 대립하던) 유진룡 장관 측근이라는 이유로 객관적·합리적 이유 없이 사직을 요구받았다”고 했다. 또 “신분보장의 대상에서 제외되는 1급 공무원이라도 면직 때는 임용권자의 자의가 허용되지 않는다”고 못박았다. 이와 더불어 박 전 대통령이 노태강 전 문체부 체육국장을 ‘나쁜 사람’으로 낙인찍고 사표 제출 지시를 내린 혐의(직권남용·강요)도 유죄로 인정했다.

특히 재판부는 이제까지 ‘블랙리스트’ 사건에서 인정된 바 없는 강요죄도 유죄로 판단했다. ‘블랙리스트’ 1·2심 재판부가 “의사결정의 자유를 방해할 정도로 겁먹게 하지는 않았다”고 판단한 것과 다른 판단이다. 재판부는 공무원 사회에서 막강한 인사권을 가진 대통령의 지위에 주목했다. 대통령의 지시는 이를 따르지 않았을 경우 부당한 인사조치, 복무점검, 직무감찰 등 구체적 불이익을 내포한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그 구체적 근거로 노 전 국장이 “‘장관 윗선의 지시’라는 말을 듣고 사직서 제출을 거부하면 동료나 부하에게 피해가 갈까봐 두려웠다”고 말한 점이나 다수 문체부 산하 위원회 공무원들이 “지원배제 대상 단체를 지원하면 사업 자체가 없어질 수 있다고 들었다”, “무력감과 자괴감을 느꼈지만 기관이 피해를 볼 것이라는 두려움을 느꼈다”고 입 모아 증언한 점 등을 짚었다.

현소은 기자 s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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