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의 1심 판결로 ‘국정농단 재판’의 핵심 쟁점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뇌물 혐의를 서로 다르게 판단한 3개의 판결이 공존하게 됐다. 1억원 이상 뇌물 수수 혐의가 인정되면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받는 박 전 대통령과 달리 뇌물 액수와 연동된 ‘횡령액 50억원’ 기준에 따라 형량이 좌우되는 이 부회장의 운명은 결국 대법원이 결정할 전망이다.
재판부마다 이 부회장의 뇌물액 산정은 크게 엇갈렸다. 이 부회장 1심은 89억2227만원, 2심은 36억3484만원,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1심은 72억9427만원을 뇌물액으로 판단했다. 최씨의 딸 정유라씨가 탄 말 세 마리와 이 부회장의 승계작업 등 부정한 청탁에 대한 평가가 엇갈린 탓이다. 세 재판부 모두 삼성이 정씨 승마지원을 위해 최씨의 1인 기업인 독일 코어스포츠에 보낸 36억3484만원을 뇌물로 인정했지만 정씨가 탄 말 세 마리는 이 부회장 1심과 박 전 대통령 1심이 뇌물로 인정하고, 이 부회장 2심만 인정하지 않았다. 말을 뇌물로 인정한 재판부는 최씨가 2015년 11월 “이재용이 브이아이피(VIP·대통령) 만났을 때 말 사준다고 했지, 언제 빌려준다고 했냐? 박상진에게 독일로 당장 들어오라고 하라”고 말한 점을 주목했다. 여기에 박 전 대통령 1심 재판부는 이후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이 박원오 전 대한승마협회 전무에게 ‘기본적으로 원하시는 대로 해드리겠다’ 등의 문자를 보낸 점 등을 고려해 “말 소유권이 실질적·대내적으로는 최씨에게 있다”고 판단했다.
반면 이 부회장 2심은 말 패스포트에 소유주가 삼성전자로 표시된 것 등을 근거로 최씨의 말을 ‘말을 삼성 명의로 등록하지 말라는 취지지 소유권을 이전해달라는 취지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 결과 이 부회장 2심은 뇌물액과 연동된 횡령액을 80억9095만원으로 본 1심과 달리 36억3484만원으로 줄여, 이 부회장은 횡령액 50억원이 넘으면 가중되는 형량을 피할 수 있었다.
직접 뇌물과 달리 ‘부정한 청탁’이 입증돼야 하는 제3자 뇌물수수 혐의는 이 부회장 1심에서만 인정됐다. 세 재판부는 모두 삼성 합병 등 특검이 주장한 개별 현안은 부정한 청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유일하게 이 부회장의 1심만 ‘승계작업’을 포괄적·묵시적 부정한 청탁으로 인정했다. “개별 현안 중 일부는 이재용의 지배력 확보에 직간접적으로 유리한 영향을 미치는 효과가 있었다. 미래전략실 임원들도 이재용을 후계자로 인정하면서 개별 현안에 적극적으로 관여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반면 박 전 대통령 1심 재판부는 이 부회장 2심 재판부와 같은 논리를 폈다. “일부 현안은 이재용의 지배력 확보에 유리한 영향을 미치는 효과가 있었다”면서도 “그런 결과는 개별 현안들의 진행에 따른 여러 효과 중 하나일 뿐이어서 승계작업이 존재한다고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김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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