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우사 김규식의 친손녀 김수옥 부회장
1948년 4월19일부터 23일까지 북한 평양에서 전조선정당사회단체대표자연석회의와 남북조선제정당사회단체지도자협의회 등 단독정부 수립 노선에 대항한 일련의 정치회담이 열렸다. 19일 백범 김구 일행에 이어 22일 우사 김규식 일행이 참석했다. 바로 이 ‘남북협상’이 올해 70돌을 맞았다.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와 우사김규식연구회는 1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1948년 남북협상과 한반도의 미래'를 주제로 기념 학술대회를 연다.
“할아버지께서 앞장서 내디뎠던 해방 이후 남북통일운동의 첫걸음을 조명하는 자리여서 기쁩니다. 때마침 오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의 성공을 기원하는 의미도 있습니다.”
이번 학술대회를 공동 주최한 우사김규식연구회의 부회장이자 우사의 친손녀인 김수옥(75)씨를 지난 13일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나 남다른 감회를 들어봤다.
오늘 남북협상 70돌 기념 학술대회
‘버치 문서군 통해 보는 김규식’ 주목
박태균 교수 하버드대 기증자료 발굴
“어릴 때 신당동 버치집 놀러 다녀” 내과전문의 은퇴 뒤 ‘우사 기념’ 활동
해방정국 3대 정치요람 ‘삼청장’ 복원 기대
김 부회장이 이번 학술회의에서 특히 주목하는 주제 발표는 박태균 서울대 교수의 ‘버치 문서군을 통해 보는 김규식과 남북협상, 그리고 그 현재적 의미'다. 버치 문서군은 미군정청 정치고문 레너드 버치 육군 중위가 1945년 12월부터 48년 남한 단독정부 수립 때까지 활동하면서 수집한 해방정국 관련 자료들을 말한다. 그의 사후 유족들이 하버드-옌칭 도서관에 기증해 하우스먼컬렉션 가운데 버치컬렉션으로 소장돼 있다. 한국현대사 전문가인 박 교수가 지난해 하버드대에서 버치컬렉션을 발굴해 이번에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버치라는 이름을 듣고 깜짝 놀랐어요. 해방 직후 11월 온 가족이 중국에서 환국한 뒤 할아버지는 삼청장에서 사셨고, 우리 가족은 신당동에 따로 살았는데, 아버지 손에 이끌려 이웃 버치 중위의 집에 종종 놀러 간 기억이 있거든요.”
김 부회장은 휴대전화 갤러리를 열어 5살 무렵 버치 중위의 딸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줬다. 그가 화신백화점 박흥식의 딸 생일잔치 날로 기억하는 사진에는 한복을 입은 버치의 딸을 비롯 여러 외국인 아이들이 함께하고 있다.
하버드대 법학전문대학원을 나와 오하이오주 애크런에서 변호사로 일하던 버치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입대해 태평양사령부를 거쳐 미군정의 정치자문그룹(PAG) 소속으로 한국에 배치됐다. 군정청 사령관 하지 중장에게 발탁된 그는 특히 46년 5월 제1차 미·소 공동위원회가 결렬된 이후 좌우합작위원회의 조직과 활동에 적극 개입했다. 이 때문에 그가 남긴 문서에는 여운형과 더불어 ‘좌우합작’을 주도한 김규식의 활동에 대한 기록이 가장 많이 담겨 있다.
“한국전쟁 때 우사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이후 여느 독립운동가 집안과 마찬가지로 우리 가족도 힘들게 살아야 했지요. 그나마 할아버지께서 운영을 기여한 인연으로 정신여고 김필례 교장께서 도와준 덕분에 학업은 무사히 마칠 수 있었죠. 약대를 나온 6살 위 언니의 뒷바라지로 의대 공부도 했으니 저는 운이 좋은 편이었구요. 하지만 학창 시절 내내 친구들조차도 제가 우사의 손녀인 줄 몰랐어요. 굳이 내세울 형편이 아니었으니까요.”
1943년 중국 상하이에서 태어난 김 부회장은 우사의 맏아들 김진동의 2남3녀 가운데 둘째 딸이다. “직접 기억은 없지만, 어머니한테 프랑스 조계에서 일본군 감시를 피해 숨어 살다시피 했고 워낙 가난하고 지저분한 동네여서 힘겨웠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죠.”
형제자매 대부분이 미국으로 건너가고 홀로 서울에 남은 그는 의대를 나와 내과 전문의로 일하다 8년 전 은퇴했다. “해방정국 때 너무 어렸기 때문에 다정다감하게 안아주셨던 할아버지로만 기억할 뿐 역사나 정치적 활동에는 관심이 없었지요. 그러다 은퇴한 뒤 뒤늦게 우사연구회에 참여하고 보니 안타까운 일이 참 많아요.”
특히 그는 이화장, 경교장과 더불어 해방정국 3대 정치요람으로 꼽혔던 삼청장을 복원하고자 애쓰고 있다. ‘1948년 2월 14개 정당과 51개의 사회단체로 구성된 중간파 정치세력의 집결체인 민족자주연맹은 위원장 김규식의 주재로 위원 17명이 삼청장에서 연석회의를 열었다. 이 회의에서 북한의 김일성과 김두봉에게 남북요인회담의 개최를 요망하는 서한을 보내기로 결의하고, 김구와 김규식의 이름으로 같은달 16일 서울의 소련군 대표부를 통해 북한에 전달했다.’ 남북협상의 첫 발의가 이뤄진 곳이 바로 삼청장이기도 했다.
“민영휘의 후손인 민규식이 환국한 할아버지에게 내준 집인데, 후손들이 세금을 내지 못해 경매에 나온 것을 2009년께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이 낙찰받은 뒤 국유지와 교환해 지금은 청와대 경호실에서 관리하고 있다고 알고 있어요.”
마침 몽양여운형기념사업회(이사장 이부영)에서는 5월 몽양아카데미의 역사탐방 프로그램으로 삼청장 찾기 탐방에 나설 계획이다.
심지연 경남대 명예교수가 좌장을 맡은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박 교수를 비롯 언론인 이상수 박사(남북협상의 사상적 배경), 이신철 성균관대 연구교수(북한에서 보는 남북협상과 남북관계 개선 전망)가 주제발표를 한다. 각 주제마다 토론에는 장원석 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 학예사, 한승동 전 <한겨레> 기자, 이승환 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 회장, 김숙임 조각보 공동대표가 차례로 참여한다.
김 부회장은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백범 선생과 더불어 우사 할아버지가 염원했던 ‘남북 평화와 민족 화해의 지혜’를 모으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김수옥 우사김규식연구회 부회장이 지난 13일 한겨레신문사에서 남북협상 70돌을 맞아 평화와 통일을 열망하며 1948년 4월 북행을 결단했던 친할아버지 김규식 선생의 유지와 추억을 들려주고 있다. 사진 이종근 기자 root@hani.co.kr
‘버치 문서군 통해 보는 김규식’ 주목
박태균 교수 하버드대 기증자료 발굴
“어릴 때 신당동 버치집 놀러 다녀” 내과전문의 은퇴 뒤 ‘우사 기념’ 활동
해방정국 3대 정치요람 ‘삼청장’ 복원 기대
우사 김규식 선생의 친손녀인 김수옥(앞줄 오른쪽 두번째) 부회장이 5살 무렵인 1948년 서울 신당동 이웃집에 살던 레너드 버치 중위의 딸(뒷줄 오른쪽 세번째)과 박흥식의 딸(앞줄 오른쪽 세번째)의 생일잔치 때 찍은 사진이다.
1947년 무렵 우사 김규식의 정치요람이었던 서울 삼청동 국무총리 공관 인근의 삼청장 마당에서 찍은 직계 가족사진. 앞줄 왼쪽부터 어머니와 여동생, 할아버지 김규식과 수옥씨, 할머니 김순애와 오빠, 아버지 김진동. 뒷줄 왼쪽부터 언니, 고모, 삼촌이다.
연재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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