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 박근혜 대통령이 당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 등과 청와대에서 만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시 유승민 새누리당 국회의원(현 바른미래당 공동대표)의 출마를 막기 위해 ‘대항마’를 요구했다는 진술이 나왔다. 박 전 대통령은 경쟁 후보로 내세우려던 이재만 전 대구 동구청장의 연설문까지 직접 썼다는 주장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2부(재판장 성창호) 심리로 19일 열린 박 전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재판에서 신동철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의 증인신문이 진행됐다. 신 전 비서관은 “20대 총선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은 특별히 대구·경북에 관심을 많이 뒀고, 어떤 인물을 후보자로 추천할지 박 전 대통령에게 미리 보고하고 승인을 받았다”며 “유승민 의원과 갈등으로 대구 동구을 지역에 끝까지 대항마를 내세우라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이어 “유 의원을 배제하기 위해 이재만 전 대구 동구청장을 내세우고, 경쟁력을 확인하기 위해 여론조사를 통해 지역구 지지율을 반복적으로 확인했다”고 신 전 비서관은 진술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이재만 후보를 위해 연설문까지 직접 작성했다고 한다. 신 전 비서관은 “박 전 대통령이 현기환 당시 정무수석에게 전화해 이재만 후보가 연설을 잘 못한다고 지적했고, 현 수석은 박 전 대통령이 계속 채근해 힘들다고 토로했다”며 “(그해) 2~3월 사이 박 전 대통령이 이 후보가 사용할 연설문을 아예 친전봉투로 현 수석에게 보냈다”고 밝혔다. 이 연설문을 받아든 현 수석이 “연설문을 꺼내 손에 들고 흔들며 “읽어보라, 할매가 직접 연설문을 보냈다”고 말했다”며 “연설문은 에이포(A4) 용지 3장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신 전 비서관은 주장했다. 신 전 비서관은 또 “박 전 대통령이 성격이 급해 (현 수석에게) 열 몇번(씩) 전화했다”며 “현 수석이 ‘할매 또 전화 왔다’고 말하곤 했다”고도 증언했다. 다만 그는 “(‘할매’라는 표현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사랑과 우애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고도 덧붙였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의 계획은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 대표의 ‘옥쇄파동’으로 좌절됐다. 신 전 비서관은 “(이재만 후보의) 지지율이 반등 되지 않자 단수 공천해 유승민을 배제하려 했다가 김 대표가 (공천 최종안을) 승인하지 않아 이뤄지지 않았다”며 “그때 김 대표가 이곳을 포함해 6곳을 승인하지 않고 부산 영도구 지역구로 갔고, 마지막까지 세 곳은 끝까지 못하겠다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결국 대구 동구을에 새누리당은 아무도 공천을 하지 못했고,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유 의원이 당선됐다.
이날 신 전 비서관은 박 전 대통령이 현 수석을 통해 유 의원 사무실에 붙은 자신의 사진을 떼라는 지시를 내렸다고도 말했다. 신 전 비서관은 “당시 대구·경북 최고 친박 실세인 최경환 의원도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했다”며 “할수 없이 대구시당 사무처를 통해 ‘새누리당 재산이니 돌려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 국선변호인이 “현 수석은 박 전 대통령 지시를 받거나 신 전 비서관에게 지시한 적 없다는 입장”이라고 말하자 신 전 비서관은 “얼마나 집요하게 (지시)했는지 제가 감당이 안됐다. 현 수석이 하루에 세번 정도 ‘어떻게 됐느냐’며 저를 들들 볶았다”고 답했다. 2016년 3월 새누리당 대구시당은 20대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 공천에 탈락한 뒤 당한 유승민·주호영·류성걸 의원 등에게 공문을 보내 “대통령 존영을 반납해달라”고 요구한 바 있다. 유 의원은 사진 반납을 거부하다 신당 창당에 나선 지난해 1월 박 전 대통령 사진을 뗐다. 김민경 현소은 기자
salma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