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토론회 ‘법원은 재벌에 관대한가’ 보고서 발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최태원 에스케이(SK) 회장, 정몽구 현대차 회장, 구자원 엘아이지(LIG) 회장,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 강덕수 전 에스티엑스(STX) 회장….
모두 재벌 총수이거나 총수 일가로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가 2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난 이들이다. 일반 형사 사건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1심 실형-2심 집행유예’ 형태가 재벌 총수 일가 범죄에서는 일종의 공식처럼 되풀이되고 있다. 이렇게 우리 법원이 유독 ‘재벌 총수 범죄에 관대하다’는 사실을 통계적으로 뒷받침하는 분석이 나왔다.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업범죄 판결 경향과 양형기준 효과에 대한 토론회’에서 최한수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연구위원과 이창민 한양대 교수(경영학과)는 ‘법원은 여전히 재벌(범죄)에 관대한가’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를 보면, 2000~2014년 재벌이 저지른 기업범죄 사건에서 집행유예가 선고된 확률은 72%였다. 10건 중 7건 이상이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것이다. 보고서는 기업범죄를 특경가법(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의 적용을 받는 5억원 이상 횡령·배임 등 범죄로 규정했다. 전체 기업범죄 사건에서의 집행유예 확률은 62%로 재벌만 따로 계산한 것보다 10%포인트 낮았다.
같은 기간, 일반 경제 사범에 해당하는 특경가법(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범죄에서 집행유예가 선고된 비율은 44%였고, 길거리 범죄인 폭행·상해죄의 집행유예율은 62%였다. 재벌이 주체가 된 기업범죄의 집행유예율이 일반 경제사범이나 폭행·상해죄보다 훨씬 높은 것이다.
재벌의 기업범죄에서는 1심보다 2심에서 집행유예 판결이 늘어나는 형태도 강하게 나타났다. 폭행·상해 범죄의 경우 1심과 2심의 집행유예율이 각각 63%, 33%, 절도·강도 범죄의 경우 51%, 30%로 심급이 올라갈수록 집행유예 비율이 줄어들지만, 재벌의 기업범죄에서는 1심 68%, 2심 78%로 오히려 증가했다.
보고서는 또 2010년대 들어 재벌의 집행유예 비율이 줄어드는 경향을 보이지만, 전체 기업범죄에서 집행유예 비율은 훨씬 더 크게 줄어든다고 지적했다. 전반적으로 집행유예 비율이 축소되는 가운데 재벌은 이 영향을 덜 탄다는 것이다. 최한수 연구위원은 “범죄자가 재벌 계열사와 관련될 경우 유죄 선고 때 집행유예를 받을 가능성이 비재벌 피고인보다 높다”며 “경제범죄에 대한 형사법적 규율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한 이런 격차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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