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에서 끊어진 경의선 철길을 관광객들이 걸어보고 있다. 파주/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11년 만에 이뤄진 ‘4·27 남북 정상회담’으로 한반도에 평화의 바람이 분다. ‘통일’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내는 이들도 늘고 있다. 평소 남북문제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던 20~30대 젊은층 사이에서도 변화의 움직임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2030세대’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정상회담을 지켜보며 막연했던 변화를 실감했다고 입을 모았다. 인천에 사는 이경석(33)씨는 29일 “남과 북이 분단된 지 오래여서 문화의 차이가 크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특히 김 위원장에 대해선 ‘독재’, ‘불통’ 등 편견이 있었는데 행동이나 말투를 직접 보니 역시 동포, 민족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최근까지만 해도 2030세대는 다른 연령대에 견줘 통일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는 이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취업포털 인크루트 등이 지난 1월24일부터 2월1일까지 성인남녀 3763명을 대상으로 남북통일의 필요성에 대해 물어보니, 20대와 30대만 통일 필요성에 공감하지 않는 이의 수가 더 많았다. 20대는 36%, 30대는 40%가 통일 필요성에 공감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통일이 필요하다고 답한 이는 각각 31%, 32%에 그쳤다. 반면 10대 이하는 50%가, 40대는 49%가, 50대 이상은 57%가 통일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남북 정상회담은 통일에 대한 2030세대의 생각을 얼마나 바꿔놓았을까? 서울 은평구에 사는 직장인 김수빈(33)씨는 “이전까지 통일이란 내게 실현 가능성 없는 얘기였는데, 이젠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10여년 전 국토대장정을 할 때, 강원도 고성에서 끝낸 적이 있는데 언젠가 북한 개마고원까지 가는 모습을 떠올려봤다”고 말했다. 대학생 정민선(23)씨는 “다섯살 무렵 한달 동안 기차를 타고 유럽 여행을 했는데 이번 정상회담을 지켜보며 ‘비행기를 타고 가서 기차 여행을 하는 게 아니라 아예 한국에서부터 기차를 타고 유럽에 갈 수 있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판문점 선언에도 남북이 철도를 잇는다는 말이 있어 반가웠다. 북한 땅을 밟고 유럽까지 여행을 가고 싶다”고 말했다.
현재 군 복무 중인 신아무개(24)씨는 모병제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신씨는 “나는 이미 군 복무를 하고 있지만 ‘내 아들은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당장 북한의 얘기를 모두 믿을 수는 없겠지만 정상회담을 본 뒤 나뿐 아니라 다른 군인 친구들 사이에도 통일과 모병제에 대해 긍정적인 분위기가 커진 것만은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알린 김 위원장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직업군인으로 일하다 제대했다는 김다빈(28)씨는 “군 출신이라 그런지 ‘북한 정권은 적’이란 개념이 확고했는데, 정상회담 이후 다 애매해졌다. 만찬 뒤 헤어질 때 모습이나, 리설주가 남편이라 부르는 장면들이 그랬다. 매우 딱딱한 (독재자) 이미지였는데 이번에 보니 정상국가 수장으로 보이려 많이 노력하더라. 통일까진 몰라도 개방하고 왕래만 해도 서로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인천에 사는 엄유준(37)씨는 “김 위원장이 스위스 유학파라 과거 북한 지도자와 다를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남북문제에 대한 태도를 이렇게 빨리 바꿀 줄은 몰랐다. 북한이 동반자가 된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한반도 평화 기류에 자극받은 2030들의 의견이 다양하게 쏟아졌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등이 환한 표정으로 축배를 나누는 ‘짤방’이나, 문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예측하는 글 등이 대표적이다. 남북통일의 ‘경제적 효과’에 기대를 거는 직장인들도 나타난다. 한 공공기관에 다니는 박아무개(38)씨는 “개성공단 관련 주식과 건설업에 투자를 해뒀는데, 성공적인 남북 정상회담에 따른 경제협력 기대감이 주가에도 반영될 것 같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손을 잡고 군사분계선을 넘나드는 모습이 가슴 찡하기도 했지만, 평화가 돈이 된다는 사실도 확실히 깨닫게 됐다”고 했다.
박기용 노현웅 최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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