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일러 조 아이젠버그 ‘경제적 보장 프로젝트’(ESP) 상임이사는 지난 14일 <한겨레>와 만나 “기본소득은 인간의 품위에 관한 메시지”라고 말했다. 박기용 기자
“미국에선 아직 많은 이들이 ‘가난은 개인 탓’이며,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고정관념을 깨려 합니다.”
테일러 조 아이젠버그 ‘경제적 보장 프로젝트’(ESP·이에스피) 상임이사는 15일 열린 ‘새로운 상상 2018’ 콘퍼런스에 하루 앞서 <한겨레>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기본소득은 인간의 품위에 관한 메시지”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에스피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페이스북의 공동창업자 크리스 휴스가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든 미국의 연구재단이다.
이에스피는 내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스톡턴이란 인구 30만 도시에서 기본소득 실험을 계획 중이다. 무작위로 선정한 100명의 시민에게 1년 반 동안 매달 500달러를 준다. 실험의 핵심은 가난한 이에 대한 미국민들의 고정관념을 깨는 것이다.
아이젠버그는 “가난이 개인의 잘못 때문이란 생각을 깨려면 기본소득을 통해 가난에서 벗어난 성공의 ‘스토리’가 필요하다. 사람들을 설득하기엔 계량화된 수치보다 스토리가 더 좋은 수단”이라고 했다.
스톡턴은 부의 편중이 심하고 많은 이들이 하루 2달러를 채 못 버는 곳이다. ‘자동화’ 속도가 빨라 일자리도 빠르게 사라진다. 27살의 젊은 마이클 텁스 스톡턴시장은 이곳에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많은 미국인처럼 텁스 시장도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영향을 받았다. 킹 목사는 1968년 39살로 생을 마감하기 전 남긴 책에서 “빈곤을 해결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 기본소득 보장”이라고 썼다. “경제적 안정이 확대되면 심리적 변화가 일어날 것”이란 킹 목사의 기대는 텁스 시장의 바람과 다르지 않다.
아이젠버그는 체로키 인디언을 대상으로 한 미국 듀크대의 기본소득 실험을 예로 들어 “흔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현금을 주면 마약이나 술 사는 데에 쓸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험을 해보면 실제 그렇지 않다. 더 안정된 삶을 위해 투자한다. 기본소득이 보장되면 인간은 더 나은 선택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스토리텔링’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에스피는 스톡턴 실험을 통해 발굴한 성공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시 다양한 이들로부터 기부를 받아 실험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이에스피는 지난해 말 ‘인투 더 블랙’(흑자 속으로)이란 이름의 단편소설 공모대회를 열었다. 기본소득을 보장하면 사회가 어떻게 변할지 상상해보자는 취지였다. 1등 수상작은 인공지능을 갖춘 현금인출기(ATM)에 관한 것이었다. 돈을 찾아가는 이들의 표정, 잔고를 확인했을 때의 반응 등을 인출기가 읽고 경제적 곤란에 빠진 이를 각종 사회보장 프로그램과 연계해주자는 아이디어였다. 아이젠버그는 “어떻게 해야 기술 변화를 사람한테 좋은 쪽으로 이끌 수 있을지, 기본소득을 도입하면 누구를 위해 어떻게 도입해야 할지 구체적으로 생각해 볼 좋은 기회였다”고 말했다.
박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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