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페미액션’이 주최한 ‘달빛 걷기’ 참가자들이 서울 노고산동 신촌역 인근을 행진하고 있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이른바 ‘몰카 사건’에서 남녀 편파 수사에 항의하는 집회가 19일 잇따라 열렸다.
이날 오후 3시30분께 서울 혜화동 ‘좋은공연안내센터’ 앞 도로에는 1만여명의 여성이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편파수사 규탄시위)에 참여했다. 드레스코드가 '레드'로 정해진 이 날 집회에서 참가자들은 붉은 계열의 옷을 입거나 소품을 지참했다. 시위 예정 시각은 애초 3시였지만 참가자들이 불어나면서 장소 확보 등의 문제로 시작 시각이 30분가량 늦어졌다. 인터넷 카페에서 주도한 이 날 시위는 참석 대상을 여성으로 한정했으며 모금을 통해 무대 장비 등을 마련했다. 참가자들은 "남 피해자 쾌속 수사, 여 피해자 수사 거부" "공평하게 잡아가라, 공평하게 수사하라" "동일범죄 동일처벌" 등의 구호를 외치며 경찰이 몰카 사건에서 성별에 따른 편파수사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번 시위의 불을 댕긴 것은 '홍익대 누드모델 몰카 사건'이다. 경찰은 1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남성 누드모델의 나체 사진이 올라오자 수사에 착수해 여성 동료 모델인 안아무개씨를 붙잡아 최근 구속했다. 경찰 조사 결과 안씨는 홍익대의 한 누드 크로키 수업에서 남성 모델의 나체 사진을 찍은 뒤 이를 유포한 것으로 알려졌다.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 페이스북 갈무리
하지만 이날 시위에 참여한 여성들은 남성이 피해자인 '홍익대 누드모델 몰카 사건'과 달리 여성 피해자일 때는 경찰이 수사를 지지부진하게 하거나 아예 거부해왔다고 지적했다. "못한 게 아니라 안 했던 거네" "동일범죄 동일처벌" 등의 손팻말이 시위에 등장한 것도 이 때문이다. 참가자들은 이날 경찰 캐릭터인 '포돌이' 모양의 박을 깨고 법전이 그려진 현수막에 페인트를 던지는 퍼포먼스 등을 한 뒤 오후 7시께 시위를 마무리했다.
같은 날 오후 8시 서울 노고산동 서울지하철 2호선 신촌역 3번 출구 앞에서 열린 '달빛 걷기' 행사에서도 몰카 수사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2016년 5월 '강남역 10번 출구 살인사건'이 발생한 이후 만들어진 '불꽃페미액션'이 주최한 이 행사는 여성들이 성폭력과 범죄의 공포 등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취지로 2년 전부터 시작됐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한 고등학생은 "방금 혜화역에 갔다가 이 자리에 왔다. 많은 사람이 분노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며 "여자고등학교에 남성들이 무단으로 들어와 서성이는 장면을 여러 번 목격했다. 혹시 몰카를 설치했을까 봐 학교 화장실에도 제대로 못 가는 것이 현실이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참가자는 "몰카 피해를 본 여성들은 직접 증거를 수집해 경찰에 가져가도 '가해자를 찾기 어렵다'는 말을 들어왔다. 하지만 이번에 홍익대 사건을 보면서 '아 노력하면 잡을 수 있구나' '아 몰카는 비정상적인 거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라며 대부분 여성이 피해자인 몰카 사건에 대한 수사가 더 강력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70여명은 서울 신촌역 인근을 행진하며 "여성도 국민이다. 동일수사 동일처벌" "피해자 보호, 지금 당장" 등을 외쳤다.
한편 지난 11일 '여성도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성별 관계없는 국가의 보호를 요청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국민청원에는 19일 밤 11시 기준으로 총 39만여명이 참여했다. 이 청원의 청원자는 청원 개요에 “피해자가 남성이기 때문에, 가해자가 여성이기 때문에 수사를 달리 하는 국가에서는 남성 역시 안전하지 않다”고 적으며 여성 상대 범죄에 대한 제대로 된 수사와 처벌을 요구했다.
정환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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