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남재준 전 국정원장, 이병기 전 국정원장, 이병호 전 국정원장.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
이병호 전 국정원장이 지난 1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2부(재판장 성창호)의 심리로 열린 박근혜 전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 증인으로 나왔다. 그는 자신의 적극적 개입은 부인하면서도, 청와대가 선거용 여론조사 비용을 요청해왔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 앞서 이 전 원장은 지난 11일 따로 진행 중인 박 전 대통령의 ‘특활비 뇌물 재판’ 증언대에도 섰다. 또 이 전 원장 자신은 박 전 대통령에게 21억의 특활비를 뇌물로 준 혐의로 기소돼 오는 30일 1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때론 피고인으로 때론 증인으로, 그는 쉴 새 없이 법정에 서고 있다.
특활비 상납과 여론조작을 통한 정치개입,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선거개입 수사·재판 방해 등 이명박·박근혜 정권 때 벌어진 국정원의 범죄를 단죄하는 재판이 30건을 넘어서면서,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법정에서는 당시 관련자들의 겹치기 증인신문이 반복되고 있다. ‘증인 돌려막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국정원 특활비 뇌물’ 사건 재판의 최다 출연자는 이헌수 전 기조실장이다. 박 전 대통령의 특활비 뇌물·선거법 재판과 이 사건의 공범인 ‘문고리 3인방’ 재판, 최경환 자유한국당 의원 특활비 뇌물 재판, 뇌물 공여 혐의를 받는 남재준·이병기·이병호 전 국정원장 재판 등에서 다섯 차례 증언에 나섰다. 지난달 마지막 주에는 자신의 재판과 증인신문을 포함해 세 차례나 법정에 서기도 했다.
이 전 실장은 2013년 4월부터 지난해 새 정부가 출범할 때까지 국정원 기조실장을 지내며 특활비 지출을 총괄한 인사로 꼽힌다. 특활비 혐의와 관련해 이를 입증하려는 검찰과 방어하려는 피고인들 모두에게 중요한 증인일 수밖에 없다.
남재준·이병기 전 국정원장도 각각 네 차례, 두 차례 증인석에 섰다. 이병기 전 원장은 지난달 16일 최경환 의원 재판에 나와 “성완종 사장 관련 검찰 수사를 받지 않게 해달라고 (나에게) 부탁하지 않았느냐”며 최 의원과 다투기도 했다. 문고리 3인방 중 ‘증인 차출’이 가장 많았던 안봉근 전 비서관은 지난 3월30일 국정원장 3인방 재판에 나와 4시간 넘게 증인신문에 답했지만, 지난달 24일 박 전 대통령 재판에 나와서는 돌연 증언 거부를 선언하기도 했다.
한편 특활비 사건과 관련해 21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형사33부(재판장 이영훈) 심리로 열린 ‘문고리 3인방’의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이재만·안봉근 전 비서관에게 각각 징역 5년에 벌금 18억원을 구형했다. 정호성 전 비서관에게는 징역 4년과 벌금 2억원을 구형했다. 이 전 비서관은 최후진술에서 “(특활비를 받아 보관하는 등) 그 일이 총무비서관의 직무로 생각했다. 참모로서 왜 더 잘 모시지 못했을까 대통령께 너무 죄송한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김민경 고한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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