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위 4구역 재개발현장. 해당 지역 인근에 빌라 등이 이주가 마무리되어 오가는 사람이 없으며 거리에 각종 폐기물들이 쌓여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2009년 ‘용산참사’ 이후에도 재개발을 둘러싼 갈등과 비극은 지금도 곳곳에서 끊이지 않는다. 2005년 뉴타운으로 지정된 서울 성북구 장위동 재개발 지역도 마찬가지다. 재개발 조합은 항상 현금청산자(주택 등을 가지고 있지만 분양 대신 보상을 택한 경우) 또는 세입자들과 다툰다. 보상금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경비용역’의 폭력이 등장할 때도 있다.
내몰린 이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곤 한다. 2월 서울 ‘장위 4구역’에서 재개발에 반대하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니트 공장 사장 김현식(가명·64)씨가 그런 경우다. 김씨뿐 아니다. 지난해 11월 ‘장위 7구역’에서는 한 현금청산자가 가슴에 칼을 꽂았다. 4시간 수술 뒤 겨우 목숨을 건진 그는 최근까지 세입자 등과 함께 철거 지역에서 농성하다 경비용역에 끌려 나왔다. 이들은 지금 ‘장위 7구역’ 모델하우스 앞에서 농성 중이다.
문제는 결국 돈이다. 조합 쪽은 ‘법에 따라 보상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현금청산자와 세입자 상당수는 ‘턱없는 수준’이라고 호소한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류하경 변호사는 “적어도 지금 사는 집과 비슷한 수준이나 약간 낮은 수준에서는 살게 해줘야 한다. 하지만 지금 나오는 보상금은 집이나 가게를 절반 이하의 평수로 줄여야 하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용산참사’ 이후 법 개정이 있었지만 정작 변한 것은 많지 않다. 재개발 보상에는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공익사업 보상법)이 적용된다. 공장이나 상가 세입자를 위한 영업손실보상금 기준은 공익사업 보상법 시행규칙에 정해져 있다. 이 시행규칙은 2014년 ‘영업장소 이전으로 생기는 영업손실 계산 기준을 종전 3개월에서 4개월로 늘리고, 영업장소 이전 후 발생하는 영업이익 감소액을 보상에 포함하는 수준’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조합도 할 말은 있다. 장위 뉴타운의 한 조합 관계자는 “자영업자들이 세금을 피하기 위해 국세청에 세금 신고를 안 해 보상금이 적게 나오는 경우가 있다. 그렇게 되면 영업손실을 파악할 자료가 없어 보상금이 적을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고 왜 많은 보상을 바라느냐는 주장이다.
하지만 한국부동산정보학회장인 허강무 전북대 공공인재학부 교수는 “세금과 보상은 별개의 문제다. 세금을 안 낸 것은 국세청이 걷으면 되고, 보상은 따로 적절하게 하면 된다”고 잘라 말했다. 허 교수는 “현재 보상 관련법의 틀이 80년대에 만들어졌다. 그때와 경제 규모도 달라지고 영업을 새로 시작하는 조건도 달라졌다. 영업손실보상금 기준이 4개월밖에 되지 않는 게 문제”라고 짚었다. 그는 또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현금청산자나 세입자에게는 개발 이후 생길 이익이 돌아가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옮기는 주변 지역은 개발이익이 반영돼 시세가 비싸진 상태다. 결국 적게 받고 많이 내는 이중고가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조합원만 이익을 가져가는 재개발의 기본 전제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는 취지다.
이런 갈등을 막기 위해서 사전 합의가 중요하다는 제안도 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재개발 갈등을 완벽하게 해결하는 방법은 솔직히 마땅치 않다. 세입자를 위해 조합에 일방적으로 이익을 포기하라고 강요하기도 어렵다”며 “오히려 재개발 사업 이전에 갈등을 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에서는 재개발 사업이 너무 빠르게 진행된다. 선진국은 보통 주민의 90% 이상에서 동의를 받아야 재개발을 한다. 하지만 한국은 주민 동의 수준이 75%로 낮다”고 말해다. 심 교수는 이어 “보상 방법도 다양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주택 소유자지만 분양도 현금청산도 못 받겠다고 하는 경우 인근 사무실을 주는 방법 등으로 갈등을 해결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사전 합의와 갈등 해결을 위한 다양한 보상 방법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규모 재개발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정석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뉴타운 방식의 대규모 재개발은 여러 가지 문제를 낳는다”면서 일본 도쿄 인근에 다마 신도시 사례를 들었다. 1970년대 만들어진 신도시인데 지금 가보면 초·중·고교 절반이 폐교됐다고 한다. 처음 만들어질 때 입주한 30~40대가 지금 60~70대가 되어 주민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도시의 활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정 교수는 “도시는 ‘잘게’ 변화할 필요가 있다. 개발 단위가 작아져야 영세 자영업자에게도 일거리가 생긴다”고 강조했다. 지금처럼 대규모로 재개발을 하면 대형 건설사만 이익을 본다는 지적이다. 이미 주거환경관리사업 등 기존 동네를 유지한 채 주택 등을 손보는 제도들이 마련돼 있는데도, 전면 재개발이 사업성이 높으니 다들 그 방법만 생각한다는 것이다. “재개발이 더 어려워질 필요가 있다”는 게 정 교수의 조언이다.
정환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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