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숭실대 인문대 학생회장으로 학내 투쟁을 벌이고 있는 박래전. 민중해방열사 박래전기념사업회 제공
“30년, 나름 열심히 살아왔지만 아직은 저세상에서 몸을 비틀며 꽃을 피워내는 동생 앞에 설 자신이 없습니다. 언제나 저는 동생의 죽음 앞에서 떳떳이 설 수 있을까요?”
한국의 대표적 인권운동가인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이 최근 박래전기념사업회에서 펴낸 추모집 <1988 박래전―30년, 다시 만나는 동화(冬花) 박래전>에 실은 글 가운데 일부다. 동화는 박래전 열사의 생전 필명이다. 박 소장의 동생 박래전은 88년 6월4일 숭실대 학생회관 옥상에서 “광주는 살아 있다, 군사파쇼 타도하자!”고 외친 뒤 분신했다. 30년 전 학생들과 재야 운동권은 노태우 정부가 여소야대 국회 주도로 시작된 광주항쟁 진상규명 활동을 방해하자 분노했다. 숭실대 국문학과 82학번 박래전은 당시 인문대 학생회장이었다.
박래전 열사 30주기를 기려 포토 에세이로 나온 문집 ‘1988 박래전―30년, 다시 만나는 동화(冬花) 박래전’의 표지.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5·18’ 기념사에서 광주항쟁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기 위해 목숨을 내건 열사 네명을 호명했다. 그날 기념식 현장에서 동생 ‘박래전’ 이름이 불렸을 때 박래군은 “솟구치는 울음을 겨우 참았다”고 썼다.
추모집에는 박래전 열사의 글과 사진 및 선후배의 추모글이 담겼다. “어떡할려고 그러니 이노무 새끼들아/ 난 어떡하라고 두 형제가 다 유치장에 있어/ 나와라/ 나와서 이야기 좀 하자/ 어떡하란 말이냐 얘들아”(박래전 시 ‘어머니 말씀’ 중) 박 소장은 동생이 고교생 때부터 시를 썼다고 했다. 고3 래전은 재수해 연세대 국문학과에 들어간 두 살 위 형 래군이 시골집에 올 때마다 문학에 대해 꼬치꼬치 물었단다. 당시 형은 소설을 쓰고 있었다. 이런 열망의 작용이었을까. 아래와 같은 시구도 얻었다. “문득/ 숲 뒤로 돌아서는 달 아래/ 강가의 상해버린 수초/ 물결 위로 어우러진/ 찌는 별빛/ 별빛”(‘강·2’ 중)
박래전기념사업회(회장 문재호)는 올해 박래전 열사 30주기를 맞아 다채로운 추모 행사를 마련했다. 30일 오후 6시와 새달 4일 오후 7시 숭실대 학생회관 블루큐브공연장에서 박래전 추모 다큐 <겨울꽃>을 상영한다. 숭실대 중앙노래패 ‘두레’의 추모 공연도 새달 2일 오후 6시30분 같은 곳에서 열린다. 30주기 추모식은 새달 4일 오후 5시 숭실대 열사 기념비 앞에서, 모란공원 추모제는 6일 낮 12시에 한다.
새달 5일 오후 7시 인권재단 사람에선 ‘동화 박래전 추모관’도 연다. 이곳에 열사의 시도 내걸린다.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