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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김구 등 7명 잠든 효창공원에 반공탑·축구장 들어선 사연

등록 2018-05-31 05:00수정 2018-05-31 11:52


[효창공원을 독립공원으로]
독립운동가 묘역 현장
서울 용산구 효창동에 있는 효창공원(옛 효창원)을 국가 차원의 민족·독립 공원으로 격상하자는 논의가 쏟아지고 있다. 백범 김구 등 임시정부 지도자들이 묻힌 효창공원을 독립운동의 상징적인 공간으로 만들어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분명히 하자는 뜻이다.

메마른 묘역 위로 5월의 햇살이 쏟아졌다. 잔디를 찾아보기 힘든 묘역에선 바람이 불 때마다 흙먼지가 일었고, 묘비에는 희뿌연 흙과 벌초 때 흩날린 풀들이 마구 달라붙어 있었다. “노여워 마시고, 부디 위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 거친 땅을 오래도록 바라보던 차영조(74)씨가 묻힌 이들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의 주요 시설물과 부적절한 시설물들/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지난 4일,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옛 효창원) 안 독립운동가 8인의 묘역(안중근 의사 가묘 포함)은 황폐했다. 대부분의 묘역은 ‘떼’(잔디)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맨흙이 드러나 있었고, 윤봉길 의사와 이동녕 선생의 묘역은 봉분 곳곳이 움푹 내려앉아 있었다. 윤 의사 묘역 뒤편으로는 봉분 흙이 흘러내린 상태였다.

“이들은 나라의 독립을 위해 일생을 바친 분들이다. 애국선열을 예우하지는 못할망정, 이렇게밖에 대우하지 못하는가.” 차씨는 비통해했다. 그러면서 ‘임정요인 묘역’에 마련된 이동녕, 조성환, 차리석 선생의 비석에 묻은 흙먼지를 맨손으로 연방 닦아냈다. 이들은 임시정부에서 각각 주석, 군무부장, 비서장을 지낸 독립운동가들이다. 차씨는 차리석 선생의 아들이다.

효창공원에는 백범 김구 선생과 이들 임정 지도자를 비롯해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의사가 잠들어있다. 삼의사 묘역에는 안중근 의사의 가묘도 조성돼 있다. 안중근 의사의 유해가 봉환되면 모시기 위해 1946년 김구 선생 주도로 마련해놓은 곳이다. 효창공원에 묻힌 일곱 선열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사당인 의열사도 1990년 건립됐다.

애국선열의 묘소가 몰려있는 곳이지만 국가 차원의 예우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곳의 관리주체는 중앙정부가 아니다. 용산구가 관리를 맡고 있다. 법적 지위는 사적이자 공원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사적 330호인 효창공원은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용산구가 근린공원으로 관리하고 있다”며 “사적은 대체로 지방정부가 관리를 맡는다”고 말했다.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에 마련된 윤봉길 의사 묘역. 묘역에는 잔디를 찾아보기 힘들고, 관리가 제대로 안 돼 봉분 곳곳이 움푹 파여있다/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에 마련된 윤봉길 의사 묘역. 묘역에는 잔디를 찾아보기 힘들고, 관리가 제대로 안 돼 봉분 곳곳이 움푹 파여있다/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근린공원으로 관리돼 오면서 독립운동가 묘역과 무관한 시설들이 곳곳에 들어서 어지러움을 더하고 있다. 이승만·박정희 정권이 항일운동가 묘역을 훼손하기 위해 설치한 것들이다. 애국선열 8인의 묘역 앞은 관중 1만8천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2만7641㎡(8360평) 규모의 효창운동장에 가로막혀 있다. 이승만 대통령이 자신의 정적인 백범을 억누르기 위해 1960년에 지은 운동장이다.

뒤늦게 사적으로 지정됐지만
용산구가 근린공원으로 관리
국가 차원 예우 찾을 수 없어

백범 묘 30m 위쪽에 반공탑
원효대사 동상도 뜬금없어

“내년 임시정부 100년 앞둔 지금
독립운동 정신 바로세울 적기”

일본군 장교 출신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효창공원을 훼손한 흔적도 곳곳에 남아 있다. 백범 묘역에서 북쪽 30m 거리에 우뚝 솟아 있는 ‘북한 반공투사 위령탑’이 대표적이다. 1969년에 세워진 위령탑 한쪽에는 탑 건립을 위해 찬조한 이들의 이름이 적혀있는데, 그곳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이름을 찾아볼 수 있다. 박 전 대통령이 1972년에 지은 대한노인회 중앙회 건물과 신광학원 도서관(현 대한노인회 서울시 연합회), 대한노인회가 이에 대한 보답으로 만든 ‘육영수 여사 경로 송덕비’도 그대로 남아있다. 광화문 이순신 동상을 세운 애국선열 조상 건립위원회가 1969년 들여놓은 10m 높이의 원효대사 동상도 뜬금없는 모습으로 효창공원 동쪽에 자리하고 있다. 원효대사 동산 건립은 일제 때 이 지역 이름인 ‘원정’(元町)과 ‘효창원’의 앞 글자를 따서 지은 ‘원효로’라는 엉터리 이름에서 비롯한 일이다. 원효로는 일제의 잔재나 다름없는 이름이다.

시민들의 자발적 모임인 ‘효창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김용삼 운영위원은 “이승만, 박정희 정부가 김구 선생 등 독립운동가 묘역을 훼손하기 위해 효창운동장과 반공투사 위령탑, 노인회, 육영수 송덕비, 원효대사 동상 등을 마구 세웠다”며 “사실상 독립운동가들을 조롱하는 이런 시설물부터 철거하는 일이 성역화의 첫걸음”이라고 강조했다.

우리 역사가 외면해 온 독립운동가들의 위상을 하루빨리 재정립 해야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희곤 안동대 교수(사학·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장)는 “효창원을 보면, 민족 정기를 바로 세우려고 한 독립운동가들의 노력들이 이승만, 박정희 독재 정권을 거치면서 어떤 방식으로 훼손돼 왔는지 잘 알 수 있다”며 “조국 독립을 위해 희생한 이들의 위상을 재정립하고 그들이 추구한 독립 정신을 바로세우기 위해서라도 효창원을 속히 국가 차원의 독립운동가 추모 공원으로 조성해야 한다. 내년 임시정부 100주년을 앞둔 지금이야말로 가장 적절한 시기”라고 밝혔다.

차영조씨도 “효창원이 지금과 같은 공원이 아니라 애국선열들에 대한 ‘추모의 장소’, 역사의 진실을 밝히는 ‘기록의 장소’, 임시정부의 정신과 업적을 자손 대대로 가르칠 수 있는 ‘교육의 장소’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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