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육연구소의 ‘2주기 대학기본역량진단 모의 평가’ 결과를 보니 서울 주요 대학 4곳을 포함해 전국 일반대 65곳이 앞으로 3년간 1만3천여명의 입학 정원을 줄여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5년 4월 전국교수노동조합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단체 조합원이 정부의 일방적 대학 구조조정에 항의하며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정부의 대학구조개혁평가는 대학가에서 ‘살생부’로 불린다. 여기서 낙제점을 받으면, 국가장학금과 학자금 대출 등 정부 지원이 끊겨 ‘부실대학’이라는 꼬리표를 붙이게 된다. 자칫 퇴출 위기에 몰릴 수도 있다.
지난 3월엔 정부가 2주기(2019~2021년 이행) 대학구조개혁평가라 할 수 있는 ‘대학기본역량진단 평가’를 마쳤다. 평가 대상은 전문대를 포함한 298개 대학이다. 이들 대학 가운데 ‘하위 40%’ 대학은 앞으로 3년간 최대 2만여명의 입학 정원을 줄여야 한다. 대학구조개혁평가는 2023년 40만명 밑으로 떨어지는 대학 입학 대상자 감소에 대비해 1~3주기에 걸쳐 16만명의 대입 정원 감축을 목표로 진행되고 있다.
이전 정부에서 이뤄진 1주기 대학구조개혁평가(2016~2018년 이행)와 달리, 문재인 정부는 2주기 평가를 통해 대학 서열화와 지역 불균형을 해소한다는 정책 목표를 세웠다. 1주기 평가가 ‘지방대학 중심의 구조조정을 강요했다’는 지적을 받아들인 것이다. 전국 단위로 ‘구조조정 등급’을 매겼던 1주기와 달리 2주기에서는 5개 권역별로 나눠 대학 역량을 평가한 것도, 지방대의 위기가 해당 지역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받아들인 조처다. 사업 이름을 바꾸고 평가 방식도 개선했지만, 2주기 대학 평가 역시 ‘수도권 대학 중심의 줄세우기’ 비판에서 자유롭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 ‘2기 살생부’ 누가 살아남나 실제 <한겨레>가 확보한 대학교육연구소의 ‘대학기본역량진단 모의평가 분석결과’를 보면, 전체 일반대(4년제) 163곳 가운데 ㄱ·ㅅ·ㅎ대 등 서울 주요 대학 4곳을 포함한 65곳이 ‘역량강화 대학’이나 ‘재정지원제한 대학’으로 분류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량강화 대학 등으로 꼽힌 일반대는 1만3천여명의 입학 정원을 줄여야 한다. 정부 장학금도 (일부) 제한된다. 반면, 입학 정원을 유지하면서 정부 재정지원까지 받는 ‘자율개선 대학’은 98곳(전체 163개 대학의 60%)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기본역량진단 평가에 관한 교육부의 공식 통보는 이르면 이달 중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모의평가 결과는 대학교육연구소가 전국 대학의 전임교원 수·장학금·시간강사 보수 등 자료를 5개월에 걸쳐 분석한 내용이다. 교육부가 기본역량진단에 활용하는 11개(국공립대는 10개) 정량지표(39~40점)를 그대로 참고했기에, 이를 바탕으로 실제 역량진단 결과를 가늠해볼 수 있다. 다만 평가 기관의 주관적 판단이 개입될 수 있는 정성평가 요소와 일부 자료 등의 누락으로 일정한 한계도 지닌다.
정원 감축 비중을 지역별로 살피면, 수도권과 비수도권 대학이 각각 45.2%, 54.8%로 비슷할 것으로 분석됐다. 1주기 평가 당시 비수도권 지역의 감축 비중이 61.6%로 훨씬 높아 ‘불공정 경쟁’이란 지적이 나왔다.
규모별로는 입학정원 2천명 이상(6672명·50.3%)과 2천명 미만(6595명·49.7%) 대학의 정원 감축 부담이 거의 같았다. 반면 국·공립대 감축 인원은 1103명(8.3%)으로 사립대(1만2164명)와 차이가 났다. 임은희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2015년 구조개혁평가 당시 정원 감축 비중이 국공립·지방·소규모 대학에 쏠렸던 문제는 일부 완화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세부 지역별로는 강원 지역 감축률이 6.6%로 가장 높았고, 경기(6.3%), 경북·전남(각 5.8%), 충북(4.9%) 등이 뒤를 이었다. 부산(1.2%), 대전(2.6%) 등은 낮았다.
■ 서울 공룡 사립대 ‘위기는 없다’ 서울 대규모 대학들은 여전히 높은 ‘생존율’을 보였다. 특히 입학 정원 2천명 이상 서울 대규모 사립대 17곳 가운데 13곳(76.5%)이 자율개선 대학에 포함됐다. 반면 ㄱ·ㅅ·ㅎ대학 등 4곳은 법정부담금 등 특정 평가지표에서 낙제 수준 점수를 받아 자율개선대학에서 제외됐다. ㅎ대는 교육비 환원율이 전국 최하위권인 131%이고, 전임교원 확보율마저 낮아 재정지원제한 대학에 분류될 것으로 예상됐다. 교육비 환원율이 131%이면, 학생들이 등록금 100만원을 내면 정부와 학교 지원금 등을 포함해 131만원 수준의 교육을 받는다는 뜻이다. 2016년 사립대 평균 교육비 환원율은 189%였다. 다른 3개 대학은 학교법인이 대학에 충분한 기여를 하지 못한 게 걸림돌이 됐다.
애초 교육부는 2주기 역량진단을 앞두고 “대학 정원 감축에만 초점을 맞췄던 1주기 평가의 문제점과 교육여건 개선에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학 서열화와 지역 불균형을 바로잡기에는 역부족이란 평가다. 영남지역 한 일반대 교수는 “서울 주요대가 수십년간 ‘기울어진 운동장’의 유리한 자리를 차지한 상황에서 ‘성적순 구조조정’은 지방·소규모 대학에 절대적으로 불리하다”며 “정원 감축 과정에서 대학의 지역·규모별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에 여러 교육 분야 전문가는 정부가 역량진단 평가를 통해 대학의 질적 발전을 꾀하려면, ‘공영형 사립대’나 ‘정부책임형 사립대’ 등을 도입해 지금의 사립대 체제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한 공영형 사립대는 정부가 사립대에 재정지원을 하는 대신 사학의 설립자나 대학법인이 운영권의 일부를 내려놓는 내용이다. 공영형 사립대는 ‘강한 통제’라는 장점과, 모든 사립대에 적용할 수 없다는 한계를 동시에 지닌다. 이와 달리 정부책임형 사립대는 정부가 모든 사립대에 운영비의 50% 이상을 지원하는 모델이다. 임희성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사학의 반발이 큰 이사회 개편 대신 정부의 관리·감독 강화를 통해 모든 사립대의 공익성을 높여 선순환 고리를 만들자는 게 정부책임형 사립대의 취지”라고 설명했다. 현재 정부는 이미 사립대 운영비의 22.6%를 지원하고 있다.
한편 2기 역량진단은 일반대와 전문대를 따로 평가했다. 전국 135개 전문대 모의평가 결과, 정원 감축 비중은 국립대(3.3%)보다 사립대(96.7%)에, 수도권(33.2%)보다 지방(66.8%)에 집중되는 경향을 보였다. 2천명 이상 대규모 대학(69.3%)의 정원 감축 비중도 일반대(50.3%)와 견줘 20%포인트 가까이 높았다.
홍석재 황춘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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