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5일 최경환 당시 경제부총리(전 지식경제부 장관)이 국회 국정조사에서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저는 제가 모셨던 대통령을 탄핵에 이어 처벌까지 받게 한 정치적 죄인입니다. 제가 정치적으로 져야 할 형벌은 마땅히 짊어지고 가야 할 업보인 만큼 추호도 피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나 비상식적이고 일방적인 주장만 가지고 예산을 봐주고 뇌물을 받은 범죄자로 내몰리는 일만은 없도록 해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검은색 양복에 하얀 셔츠를 받쳐입은 최경환 자유한국당 의원이 서울중앙지법 502호 재판정의 피고인석에 섰다. 머리가 하얗게 센 그는 재판부를 향해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는 양복 안주머니에서 에이포(A4) 용지를 꺼내 최후진술을 읽어 내려갔다. 1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재판장 조의연)의 심리로 열린 결심공판에서 검찰이 국정원의 예산 청탁을 받고 1억원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그에게 징역 8년과 벌금 2억원, 추징금 1억원을 구형한 뒤다.
그는 “1978년 행정고시를 통해 공직에 입문한 이래 한 번도 돈과 관련한 구설에 휘말린 적이 없다. 제게 흠결이 있었다면 어떻게 네 차례나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온갖 신상을 다 터는 국회 인사청문회를 두 번씩이나 통과해 장관직을 수행할 수 있었겠나” 반문하며 “재경부 장관 재직 당시 일 잘하는 장관 1위에 연속으로 선정됐고 기재부 장관 시절에는 다른 곳도 아닌 노동조합이 선정하는 가장 닮고 싶은 상사로 선정됐다”며 항변했다.
이어 최 의원은 “당시 실무자들이 예년의 방식대로 예산을 편성했을 뿐, 예산이 늘어난 것은 총 재정지출 증가와 공무원 인건비 인상에 따른 당연한 결과였다. 당시 세월호 사고와 세계적 경기침체에 따른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대한민국 경제를 어떻게 살릴 수 있을지에만 몰두했고 그때 받은 스트레스로 어금니 6개를 날릴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호소했다. 마지막으로 최 의원은 “40년 가까운 공직 생활을 걸고 국정원으로부터 예산 청탁을 받고 특활비를 뇌물로 받은 사실이 없다. 억울함이 없도록 판단해달라”고 말하며 최후진술을 마쳤다.
이날 검찰은 의견진술을 통해 “피고인에 1억원을 전달한 사실을 이병기 전 국정원장과 이헌수 당시 국정원 기조실장이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고 피고인의 보좌진이 주고받은 메시지를 통해 2014년 10월 20일 이병기 전 원장이 피고인과 통화한 사실, 23일 정부세종청사에 이헌수 전 실장의 차량이 출입했으며 당시 이헌수 실장의 보좌관 업무 수첩 기재 내용에 면담 일정이 잡힌 사실 등도 확인된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어 “범행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전직 대통령과 피고인을 반추하면 국정원 예산을 감시해야 할 이들이 국정원의 예산을 늘려주고 지켜주는 방식으로 불법 거래를 일상화한 것 아닌지 우려된다. 피고인은 당시 대낮에 집무실에서 거액을 수수했고 그 피해는 오롯이 국민이 입었지만 참회하기는커녕 범행을 부인하기 위해 ‘국제회의 참석하고 그 내용을 보고하기 전에 집에 가서 샤워하고 왔다’는 등 합리성 없는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 의원은 2014년 박근혜 정권 당시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재임하면서 이병기 당시 국정원장으로부터 ‘2015년 예산안과 관련해 국정원에서 제출한 안대로 편성될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국정원 예산의 상당액을 증액해준 뒤 그해 10월23일 이헌수 당시 국정원 기조실장으로부터 현금 1억원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다. 최 의원은 재판을 통해 혐의를 적극적으로 부인해왔지만 최 의원에게 1억원의 뇌물을 건넨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는 이병기 전 국정원장은 최 의원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국정원 예산안 처리가 잘 돼가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고마운 마음에서 격려 차원으로 돈을 지원한 것이다. 선의로 한 일이 이렇게 돼 인간적으로 괴롭다”고 증언한 바 있다. 최 의원에 대한 선고공판은 29일 오전에 열린다.
고한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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