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저녁 서울 종로구 체부동 ‘궁중족발’ 앞에서 옥바라지 선교센터 주최로 열린 ‘궁중족발을 되찾기 위한 현장기도회’ 모습. 선담은 기자 sun@hani.co.kr
“새장에 새를 가득히 채우듯이 남을 속여 약탈해 온 재산을 제 집에 채워 벼락부자가 되고 세력을 휘두른다. 피둥피둥 개기름이 도는 것들, 못하는 짓이 없구나. 남의 권리 같은 것은 아랑곳없다는 듯 고아의 인권을 짓밟고 빈민들의 송사를 공정하게 재판해 주지도 않는다.” <예레미야 5:27-28>
12일 저녁 서울 종로구 체부동 212번지. 일명 ‘서촌 먹자골목’에 난데없는 성경 구절이 들려왔습니다. 6·13 지방선거일을 하루 앞두고 동료,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러 온 행인들은 술집이 즐비한 먹자골목의 뜬금없는 상황에 한 번씩 발길을 멈추고 30여명의 기도하는 사람들을 쳐다봤습니다.
이들은 옥바라지 선교센터가 주최한 ‘궁중족발을 되찾기 위한 현장기도회’의 참가자들이었습니다. ‘궁중족발’은 지난 7일 오전 가게 건물주를 찾아가 망치를 휘둘러 다치게 한 혐의(살인미수 및 특수상해 혐의)로 구속된 김아무개(55)씨가 운영하던 가게였습니다.
김씨 부부는 2009년 봄 서촌에 ‘궁중족발’을 열었습니다. 족발집을 열기 전 부부는 서촌 일대에서 분식집 2년, 실내포장마차 7년을 운영하며 어렵게 돈을 모았습니다. ‘궁중족발’은 그렇게 모은 돈에 은행 대출까지 받아 차린 가게였습니다. 당시 권리금과 보증금, 시설 투자비가 각각 3000만원씩 모두 9000만원 들었고, 임대료는 월 263만원을 내기로 했습니다.
2018년의 서촌은 <수요미식회> 등 TV 프로그램과 각종 블로그에서 소개하는 맛집들로 ‘핫플레이스’가 된 동네이지만, 김씨 부부가 ‘궁중족발’을 열 당시만 해도 이 지역은 서울 도심에 있는 ‘옛날 동네’에 불과했습니다. 부부는 하루하루 열심히 살며 조금씩 빚을 갚아 나가다 보면 오늘보다 좋은 날이 올 거라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러던 2014년께 서촌은 이른바 ‘뜨는 동네’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합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궁중족발’ 주변에 새로 생기는 가게들은 세련된 인테리어에 깔끔한 분위기로 손님들을 유혹했습니다. 문을 연 지 이미 5년이 된 부부의 가게는 서촌 맛집 경쟁에서 한참 밀려나는 듯 보였습니다.
김씨 부부가 가게 리모델링을 결정한 건 그 무렵이었습니다. 예쁜 가게들로 떠나는 손님을 조금이나마 붙잡고 싶었습니다. 5년 동안 아이들을 키우느라 모은 돈은 얼마 없었지만, 적금을 깨고, 다시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3500만원을 가게 리모델링에 투자합니다. 김씨의 부인 윤아무개(50)씨는 가게 리모델링 때를 떠올리며 “건물 기둥만 빼고 집기부터 주방 배치까지 모든 걸 바꿨다”고 말했습니다.
리모델링을 마친 뒤 2년 동안 장사를 하고 있던 2016년 1월, 이번 사건의 피해자인 이아무개(61)씨가 ‘궁중족발’ 건물의 새 건물주가 됐습니다. 윤씨는 당시 건물주 이씨가 보증금 3000만원에 월 297만원이었던 ‘궁중족발’의 임대료를 보증금 1억원, 월세 1200만원으로 보증금은 3배, 임대료는 무려 4배가량 올려달라고 요구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만큼의 돈을 마련할 수 없었던 김씨 부부에겐 사실상 “나가달라”는 통보였습니다.
건물주 이씨는 김씨의 주장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이씨는 14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김씨 부부에게 계약기간이 끝나면 (건물에서) 나가줄 것을 요구했을 뿐, 보증금이나 월세 인상을 이야기한 적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일단 분명한 것은 건물주 이씨가 ‘궁중족발’ 사장 김씨를 상대로 명도소송을 냈고, 법원은 이씨의 손을 들어줬다는 겁니다. 이후 2017년 10월10일부터 2018년 6월4일까지 모두 12차례의 강제집행이 이뤄졌습니다.
건물주 이씨의 말이 사실이라면, 김씨 부부는 왜 ‘궁중족발’ 건물에서 나올 수 없다고 버텼던 것일까요? 김씨의 부인 윤씨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같은 건물에 있어도 1층 점포 권리금이 제일 비싸요. 그런데 (건물주가) 우리한테 보증금 3000만원 갖고 나가서 열심히 장사하라는데 얼마나 황당해요. 그 분(건물주)이 우리가 권리금을 회수할 수 있도록 차라리 ‘다른 사람한테 (권리금 포함해) 팔고 나가라’는 조건으로 적정 수준의 월세를 제시했다면 (가게를) 팔고 나갔겠는데, 우리한테 ‘보증금 1억원, 월세 1200만원 낼 사람을 데려오라’고 하잖아요. 현 시세에 맞지 않는 가격인데 그런 사람을 어디서 데려와요? 법원 감정평가에서도 ‘궁중족발’의 적정 임대료가 월 304만3000원이라고 나왔어요. 내가 여기(가게)에 쏟아부은 돈이 그동안 번 거 다 투자해서 1억이 넘게 들었는데 순순히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렇게 할 수는 없었던 거죠.”
이에 대해 이씨는 “(명도소송) 1심이 끝나고 타협을 위해 (가게) 권리금 6000만원을 주겠다고 했지만, 김씨가 거부했다”고 반박했습니다.
2017년 11월9일 영업을 중단한 서울 종로구 체부동 ‘궁중족발’. 건물주 이아무개(61)씨는 지난 4일 새벽 중장비를 이용해 12번째 강제집행을 시도했다. 선담은 기자 sun@hani.co.kr
부동산 시세나 임대료가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된다는 사실에 이견을 말할 사람은 없습니다. 건물주도 세입자에게 임대료 인상을 요구할 권리는 있습니다. 그러나 부동산 임대료에도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라는 게 있지 않을까요?
김씨 부부가 2016년 당시 건물주 이씨로부터 요구받았다고 주장하는 임대료 인상 폭(보증금 1억, 월세 1200만원)이 과연 적정 수준이었는지 따져보자는 얘깁니다. 법원은 이씨의 요청에 따라 2016년 9월 ‘궁중족발’ 점포 108.07㎡(약 32.8평)에 대한 감정을 명령합니다. 법원이 선정한 감정평가인이 산출한 적정 임대료는 당시 월 304만3000원(2016년 9월 기준)이었습니다. 물론 2년이란 시간이 지난 2018년 6월 현재 ‘궁중족발’ 건물의 임대료는 더 올랐을 가능성이 큽니다. 현재 서촌 ‘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 일대 1층 점포의 부동산 시세는 어느 정도인지 인근 부동산 사장님에게 물어봤습니다.
“같은 골목이라고 해도 (임대료가) 다 달라서… (평균적으로) 답변하기 어려워요. 같은 도로변에 있어도 (골목) 위쪽과 아래쪽 차이가 크고… 싼 집도 있고, 비싼 집도 있고. (약 165㎡·50평 기준) 싸면 월 400만∼500만원? ‘ㅎ’(서촌 먹자골목 인기 맛집)은 싸요. 거긴 (건물) 주인이 워낙 좋은 분이라서… ‘ㄱ’(같은 골목 또 다른 인기 맛집)은 더 세죠. 평당가로 따지면 20만원 정도?”
그렇다면 건물주 이씨가 김씨 부부에게 요구한 것으로 알려진 보증금 1억원, 월 임대료 1200만원은 2016년 당시는 물론이고 현재 시점에서 보더라도 적정 수준을 넘어선 금액으로 보입니다. 이렇듯 건물주의 권리만 무한정으로 보장한다면 ‘궁중족발’ 김씨 부부 같은 영세 상인들은 열심히 일을 해서 돈을 벌어도 모든 노력의 대가를 임대료에 써야 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한국의 법과 제도도 이 사실을 모르지 않습니다. 상가임대차보호법은 건물주의 권리를 인정하되, 세입자의 생존권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입니다. 현행 상가임대차보호법은 올해 1월 개정된 시행령에 따라 임대료 인상률 상한을 기존 9%에서 5%로 낮췄습니다. 그러나 이는 계약기간 5년까지만 해당할 뿐입니다. 다시 말해 5년이 지나면 건물주가 임대료를 그 전보다 몇 배씩 올려도, 재계약을 거부해도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궁중족발’의 임대료를 둘러싼 건물주와 김씨 부부의 갈등도 이 ‘5년’이라는 보호기간 제한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2일 저녁 서울 종로구 체부동 ‘궁중족발’ 앞 서촌거리. 선담은 기자 sun@hani.co.kr
그런데 일각에선 이런 물음이 나옵니다. “임대차보호법이 보장하는 보호기간 5년이면, 세입자 상인들도 권리금을 비롯한 투자금을 충분히 회수할 수 있지 않으냐”는 문제제기입니다. 계약할 때부터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 임대료 인상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미리 다른 곳으로 떠날 계획을 세우는 게 맞는 것 아니냐는 뜻이겠지요. 김씨 부부는 왜 5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가게에 투자한 돈을 회수하지 못했을까요? 김씨의 부인 윤씨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시죠.
“여기 상권이 딱 2015년부터 형성됐어요. 이 동네 오래 산 사람들은 다 알지만, 그 전에는 저희 가게 기점으로 이쪽(사직공원 방향)으로는 다 분식점, 간혹 조그만 슈퍼마켓·정육점·철물점이 있었고, 반대 방향은 재래시장이 있었어요. 그게 3~4년 사이에 요즘 같은 모습으로 바뀐 거예요. 그땐 뜨내기손님도 없었어요. 이쪽(경복궁역 주변)은 큰 회사도 없어서 기껏해야 정부종합청사, 서울지방경찰청 공무원들만 오고 외부손님 유입은 없는 거죠. 족발을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안 먹거든요. 그러니까 매출에 한계가 있는 거예요. 장사 시작하고 처음에 되게 힘들었어요. 가게 문을 열어도 손님이 없어서…. 장사 시작하고 5년쯤 되니까 이제 단골이 생기기 시작하는 거예요. ‘오늘 손님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그 걱정은 없어지더라고요. 장사가 아주 많이 잘 되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제 먹고 사는 것 정도는 걱정 안 하겠다 싶어서 과감하게 3500만원 들여 리모델링도 했던 거였고요. 그런데 건물주가 바뀌면서 하루아침에 모든 게 무너지기 시작한 거죠.”
상가임대차보호법의 한계 때문에 속을 끓이는 건 비단 ‘궁중족발’ 김씨 부부만의 일은 아니었습니다. 1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자신을 서촌 봉평막국수 사장이라고 소개한 글쓴이가 ‘서촌 궁중족발의 비극 뒤에는 미비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이 있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게시했습니다. 이 글에서 청원자는 “(가게를 시작한 지) 5년이 된 시점에 (건물주가) 퇴거 통지를 보내왔고, 저희 가게를 운영할 분이 있어서 권리금 계약서까지 썼음에도 불구하고 임대인이 이것을 인정해주지 않아 현재 3년째 재판중”이라며 “현재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에 따르면 저희 가게는 계약 기간이 5년을 초과했기 때문에 어떤 재판을 해도 아무런 권리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처음 가게를 열며 건물 수리한 비용과 권리금은 완전히 공중에 떠버리는 격이 되고, 장사하면서 오히려 돈을 까먹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고 하소연했습니다.
다시 ‘궁중족발’ 얘기로 돌아가면, 명도소송이 시작된 뒤 시간이 지날수록 김씨와 건물주 이씨는 감정의 골이 깊어졌습니다. 4일 새벽에는 중장비까지 동원한 강제집행으로 사람이 다치고, 가게가 철거돼 김씨의 분노는 극에 달한 상태였습니다. 물론 그렇더라도 김씨가 망치까지 든 이유를 정당화할 수는 없을 겁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법의 미비점을 이용해 터무니 없는 임대료를 요구한 건물주 이씨를 무작정 ‘악마화’하는 것도 생산적인 논의를 위해선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보다는 현행 제도로는 무한대로 뻗어갈 수 있는 건물주 개인의 ‘욕망’을 적절하게 통제해야 하는 법과 제도의 역할에 대해 짚고 넘어가는 게 필요하다는 얘기입니다.
현재 국회에는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모두 22개 계류중입니다. 임차인의 계약갱신 청구 기간을 5년에서 10년으로 연장하는 내용이 핵심이고, △권리금 보호대상에 전통시장 포함 △자치단체에 상가임대차 분쟁조정위원회 설치 △재건축·철거시 임차인 퇴거보상제 및 우선임차권 도입 등의 내용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법안들은 지난달 국회의 드루킹 특검 공방 속에 처리가 무산됐습니다.
골목 상권을 지키는 상가 세입자들을 위한 보호 대책은 경제민주화의 핵심 가운데 하나입니다. 최저임금이 오르면서 따라 오를 수밖에 없는 소상공인들의 임금 부담을 상쇄해줄 수 있는 상가 임대료 제한 정책이 시행되지 않으면, 이른바 ‘먹이사슬의 차상위 계층’으로 최저임금 대상 노동자를 고용하는 김밥집, 편의점, 막국수집, 족발집 등이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자신의 가게 건물주를 찾아가 폭력을 행사한 궁중족발 김씨는 단순히 한 명의 상가 임차인이 아니라 2018년 한국 사회의 ‘을’들을 상징하는 인물일 수도 있습니다. 영세상인의 생존권을 보장하는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되지 않는다면 ‘제2의 궁중족발 사건’은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고, 최저임금 노동자와 차상위 상가 임차인들 사이에서 발생할 ‘을들의 증오’는 더 커질 겁니다. 우리가 궁중족발 폭력 사태 밖의 구조를 살펴봐야 하는 까닭입니다. (
▶참고 글 : [정동칼럼] ‘최저임금’ 보완책은 경제민주화)
선담은 기자
s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