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지난 18일 오후 경기도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과천/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정년 퇴임을 두 달 앞둔 지난해 6월, 당시 박상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조현옥 청와대 인사수석비서관의 전화를 받았다. 법무부 장관을 맡아달라는 요청이었다. 인공지능법학회 활동 등을 구상하던 퇴임 후 계획에는 전혀 없던 시나리오였다. 가족 동의를 받은 뒤 갑작스런 장관직 제안을 수락했다. 학계에서 검찰 비판에 날을 세웠던 교수에서 검찰을 지휘·감독하는 법무부 장관으로 옷을 갈아입은 그는 다음달로 취임 1년을 맞는다. 150번 넘게 오른 북한산 등산은 바쁜 시간에 쫓겨 한강 둔치 산책으로, 시험 때 제출받은 학생 답안지는 법무부 직원들이 바쁘게 들고오는 결재 서류로 바뀌었다. 법무부가 주도하는 검찰개혁도 잰걸음을 내고 있다. 지난 18일 <한겨레>와 만난 그는 “정책은 하루 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확실히, 꾸준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수사’ 검찰·권력 유착이 원인
검찰 너무 강한 권한도 남용 불러
공수처는 검찰 불신 제거 장치
하반기에 강력하게 추진할 것
‘문무일 패싱론’ 사실 아냐
검·경 양자간 수사권 조정은
불가능하다 판단해 3자가 논의
‘~통=훌륭한 검사’ 인식 잘못
검사 선발 때 인성 평가할 것
조국 수석과 수사 이야기 안해
‘사법행정권 남용’ 놀라운 일
검찰이 수사해 종결 지을 것
짚고 넘어가야 법원 신뢰 회복
전체 로스쿨 실태조사할 계획
노동자 ‘업무방해죄’ 처벌 개선
갑질 등 ‘생활형 적폐’ 청산 주력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6월18일 교수 출신인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낙마하자 “구조적 개혁을 통해 검찰은 당당하게 국민 앞에 설 수 있다. 그런데 그 역할을 하는 법무부 장관은 참 어렵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9일 뒤 또다시 학자 출신인 박상기(66)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지명했다. 검찰개혁은 외부인이 해야 한다는 의지가 담긴 인사였다. 박 장관은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지난해 7월19일 취임했다. 1950년 언론인 출신 김준연 법무부 장관 이후 60년 만에 사법연수원 출신이 아닌 비법조인이 장관에 오른 것이다. 박 장관은 김대중 정부 대검찰청 검찰제도개혁위원회 위원, 참여정부 대검찰청 검찰개혁자문위원회 위원과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원장 등을 지내며 강도 높은 검찰개혁을 주문한 학계 대표 인사였다. 법조계에선 ‘검찰이 여우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났다’는 말이 나왔다.
다음달 취임 1년을 맞는 박 장관의 검찰개혁은 속도감 있게 진행되고 있다. 법무부 내 검사 수를 대폭 줄여 법무부의 ‘탈검찰화’는 거의 완성 단계에 이르렀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법안은 지난해 10월 국회에 제출됐다. 검·경 수사권 조정은 정부 합의안이 지난 21일 도출돼 발표됐다. 박 장관은 지난 18일 정부과천청사 사무실에서 진행된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검찰개혁 문제부터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행정권 남용 수사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입장을 풀어냈다.
문무일 총장 자주 만나 이야기
정부는 지난 21일 이낙연 국무총리의 대국민담화문을 통해 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공개했다. 이 자리에는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 박 장관,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배석했다. 박 장관은 인터뷰에서 “경찰이 모든 사건에서 직접 수사권을 갖는다. 사건을 검찰에 송치하기 전에는 검찰이 수사를 지휘하지 않는다. 검찰은 보완수사를 요구할 수 있다”라고 정부안을 요약했다. 수사권 조정안 논의 과정에서 이해당사자인 문무일 검찰총장이 배제됐다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검·경 수사권 문제로 지난 15일 청와대에서 문 대통령과 박 장관, 김부겸 장관, 문 검찰총장, 이철성 경찰청장이 만났다.
“조정안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문 대통령이 수사권 조정안이 이행될 수 있도록 격려하고 독려하는 차원이었다.”
-당일 오찬 전에 문 총장이 따로 문 대통령을 면담한 이유는 뭔가.
“검찰 입장을 이야기한 것 같다.”
-검찰은 어떤 입장인가.
“검찰의 수사 지휘를 폐지하면 안 된다는 태도다. 그리고 경찰 수사 사건은 모두 검찰로 송치해야 한다는 거다.”
-문 총장과는 사전에 의견을 나눴나.
“그렇게 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은 역대 정부에서 계속 추진해왔다. 검·경이 직접 대면해 각자 자기의 주장을 조정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 방식이 꼭 옳은 일로 보이지도 않는다. 국민의 뜻을 기본 바탕에 두고 보면 직접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두 조직간 조정보다는 각각 상급기관인 법무부와 행안부가 논의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판단에 따라 청와대 민정수석이 포함된 3자가 이 문제를 논의했다.”
-‘문무일 패싱론’은 실체가 있는 건가.
“(웃음) 언론에서 이야기하는데 그렇지 않다. 검·경 수사권 논의 과정에서 개별 사안 하나하나를 놓고 검찰 의견을 들어가며 하기는 어렵다. 행안부와 경찰도 마찬가지 관계였을 수 있다. 이때문에 검찰이 소외된 게 아니냐는 지적이 있을 수 있지만 의도적으로 그런 건 전혀 아니다. 이 문제 결론을 내기 위해 문 대통령이 논의 방식을 민정수석실과 법무부, 행안부에서 마련하도록 지시했다.”
-문 총장과는 자주 소통하나.
“며칠 전에도 봤고, 어제도 봤다. 자주 본다. (웃음)”
-어떤 이야기를 했나?
“문 총장은 검찰을 지휘하는 감독자고, 법무부는 검찰청의 상급기관이다. 국정과제에 오른 검·경 수사권 조정에 검찰총장도 잘 협조해 같이 나아가는 방향으로 해달라고 당부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검·경 수사권 조정은 어떻게든 가시적 성과를 내겠다는 의지로 이해하면 되나.
“그렇다. 하반기 국회 원구성이 되면 공수처 설치, 검·경 수사권 조정 관련 법안은 통과되도록 강력하게 추진하려 한다.”
(왼쪽부터)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과 박상기 법무부 장관,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문 담화 및 서명식을 마치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자치경찰제 시간별 플랜 있어
-경찰이 수사권을 갖게 될 경우 정치적 중립성 보장, 인권 보장 등의 전제 조건을 갖춰야 하지 않나.
“전제이면서 동시에 경찰이 그 문제는 지속적으로 보완해야 한다. 행정경찰과 사법경찰이 분리되고, 자치경찰제 시행방안이 구체적으로 마련돼야 한다. 또한 수사하는 경찰의 전문성도 배양돼야 한다. 인권 침해가 없도록 경찰 자체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이번 정부안에는 수사권 조정에 따른 중앙 경찰 조직의 비대화를 견제하는 장치로 자치경찰제 도입 방안이 함께 담겼다. 자치경찰제는 지역 주민이 뽑은 지방자치단체장 아래 자치경찰을 두고, 중앙 정부의 경찰권을 각 지방으로 분산해 주민에 의한 통제를 받도록 하는 것이다.
-경찰 정보업무 중 동향정보 수집 기능을 그대로 둔 채 수사권까지 주는 데 우려가 많다.
“경찰이 지나치게 광범위한 정보를 수집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이는 제한이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경찰 정보담당 부서가 재편돼야 한다. 다만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는 논의 초점이 다르기 때문에 넣을 수가 없었다.”
-전적으로 개선 방안을 경찰 스스로에게 맡겨야 하나.
“자치경찰제는 자치분권위원회(대통령 소속)가 만들면 입법 사항으로 된다. 반드시 될 것이다.”
-자치경찰제는 시간이 필요한 시스템이라는 지적이 많다.
“2019년까지 서울·세종·제주에서 시범 실시하고, 문 대통령 임기 중에는 전면 시행한다. 시간별 플랜이 있다. 수사권을 어느 범위까지 자치경찰에 넘길지는 논의가 더 필요하지만 실효적인 자치경찰제 도입을 상정하고 있다.”
-검찰 지휘 없는 경찰의 법리 적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
“법리 적용보다는 수사 자체가 문제다. 정확하게 수사가 이뤄지면 검사가 기소 여부를 판단할 때 법리 적용을 제대로 하면 된다. 경찰이 사실관계에 맞는 수사를 제대로 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최근 드루킹 사건은 권력의 눈치를 본 경찰 부실 수사로 논란을 일으켰다. 제도가 좋더라도 이를 운용하는 사람이 트릭을 쓰면 문제가 생긴다.
“그렇다. 사실 어떤 개별 사건을 놓고 수사권을 검찰에 둘 건지, 경찰에 둘 건지 이야기하면 끝이 없다. 수사를 왜곡시키는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수사력의 문제, 둘째, 의도성 있는 수사다. 대부분 비판 받는 사건은 의도성 있는 수사다. 이런 의도성이 검찰보다 경찰이 덜 하다고 수사권을 경찰에 주는 것은 전혀 아니다. 이 문제는 우리 수사기관의 미래를 향해 어떤 방향이 옳은가의 문제다. 검찰이 직접 수사를 하면 심리적으로 기소하는 방향으로 기울게 돼 있다. 또 기소하면 무조건 유죄를 받아내려고 한다. 여기서 무리한 수사, 과잉수사가 발생한다. 검찰이 경찰 수사를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공익의 대표자’로서 판단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려 한다. 경찰 수사력과 관련해선, ‘수사를 못한다’고만 하면 경찰이 성장하지 않는다. 경찰이 수사력을 배양하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줘야 한다.”
-박 장관은 지난해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왜곡된 수사의 원인이 ‘권력과의 유착’이라고 지적했다. 고리를 어떻게 끊어야 하나.
“능사는 아니지만 공수처가 그래서 필요하다. 최근 박근혜 정부 대법원의 사법행정권 남용 수사도 공수처가 있었으면 거기서 하는 것이 바람직한 사건이다. 그동안 검찰 불신의 원인은 권력과의 유착이었다. 강력한 권력을 가지면 국민이 잘 신뢰하지 않는다. 너무 강한 검찰권을 갖고 있어 남용 문제가 생긴 탓에 국민 불신이 쌓였다. 공수처는 검찰의 불신 원인을 제거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한편으로 권력과의 유착은 검찰 문제이면서 정치권력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게 어떻게 한 쪽만의 문제이겠나.”
-그런데 정치권력은 검찰권력을 놓기 쉽지 않다. 행안부를 통한 정치권력의 경찰 통제가 더 위험하다는 지적도 있다.
“검·경 수사권 조정이 되더라도 경찰 수사 결과가 그대로 검증 없이 기소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검찰이 경찰 수사에 대해 보완수사를 지시하기도 하는 등 여러 장치가 마련돼 있다.”
(왼쪽부터) 문무일 검찰총장과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박상기 법무부 장관, 이철성 경찰청장이 지난해 12월28일 서울 강남의 한 영화관에서 영화 ‘1987’ 포스터를 배경으로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법무부 제공
인사평가 때 출산휴가·육아휴직 감안
박 장관과 인터뷰를 한 날은 검사장급 이상 검찰 고위 간부들의 승진·전보 등 인사안이 논의된 검찰인사위원회가 열렸다. 인터뷰 중에도 박 장관 전화는 바삐 울렸다.
-검사장 자리를 얼마나 줄일 예정인가.
“이제 거의 줄일 만큼 줄였다. 지금 검사장이 42명이다.”
-검사장 자리는 어떤 문제 때문에 줄인 건가.
“그 자체로는 큰 문제가 아니다. 다른 행정부처에 비해 법무부는 차관급이 왜 그렇게 많은가라는 단순한 의문에서 비롯된 문제 의식이 아닌가 싶다. 검사장에게 제공하는 승용차 관련 규정도 없애거나 줄이되 필요한 용도는 놔두는 방향으로 손보고 있다.”
-검사에게 검사장이란 자리는 중요하다. (웃음)
“굉장히 중요하다. (웃음)”
-지난해 문재인 정부 첫 검찰 인사를 통해 고검장, 검사장의 사법연수원 기수가 크게 낮아졌다. 조직 안정성 측면에서 우려 목소리도 있다.
“그런 부분을 감안할 필요도 있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검사가 연수원 기수와 무관하게 근무할 수 있는 문화가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 결국 이는 고검의 업무 활성화와 맞물려 있다. 앞으로 승진에서 제외되더라도 검찰에 남는 검사가 있고 그 분들이 할 일을 마련해줘야 한다. 이 문제는 현재 연구하고 있다.”
-과거 정부에서 정치적 중립성 논란을 빚은 수사에 관여한 검사들이 문재인 정부 들어 여럿 인사 조처돼왔다. 하지만 일부 논란이 된 검사들은 여전히 승진하고 주요 보직에 있다는 지적도 있다.
“그렇다. 그런 점을 인정한다. 그동안 중간중간 원포인트 인사로 과거에 문제된 사건과 관련된 검사들에게 불이익을 줬다. 다만 검사장 이하 인사에서 잘못 된 경우가 한 두 자리 있었다. 수백 명 인사를 움직이다보니 놓치는 경우가 있었다. 한편으로는 위로 올라갈수록 인원이 소수니까 선택지가 협소해지는 측면도 있다.”
검찰청법 제34조 1항은 ‘검사의 임명과 보직은 법무부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한다. 이 경우 법무부 장관은 검찰총장의 의견을 들어 검사의 보직을 제청한다’고 돼 있다. 검사장급 이상 검찰 고위간부 인사뿐만 아니라, 차장검사와 부장검사, 평검사의 승진과 보직 결정까지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에게 권한이 있다보니 구조적으로 검찰 수사의 공정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검찰 내 목소리가 있다. 과거 정부에서 논란이 됐듯이, 여권 인사가 관련된 수사를 정권에 유리하게 도운 검사들이 청와대의 보은인사로 보상 받은 사례가 적지 않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문제는 인사와 관련이 깊다. 인사는 당사자가 합리적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 공정성이 중요하다.
“공감한다. 인사 평가 기준과 관련해 몇가지를 바꿨다. 기존에는 검사들이 자신의 평정 결과를 몰랐지만 임관 6년차 때 본인에게 통보해주도록 지시했다. 다만 너무 세분화해 알려주면 평정이 안 좋은 검사의 경우 자포자기할 수 있어 50%를 기준으로 상위, 하위로만 알려주도록 했다.
여성 관련 기준도 추가했다. 최근 적격심사(모든 검사는 임관 후 7년마다 적격심사를 받으며 문제가 있을 경우 심층적격심사 대상으로 분류됨)에서 집중 검토가 필요한 예비 대상 후보자 중 대부분이 여성 검사였다. 이게 무슨 일인가 봤더니 대부분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귀한 경우였다. 이렇게 되면 여검사들이 당연히 불리하다. 앞으로는 평정 때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감안하도록 지시했다.
또 검사 선발 때 인성을 평가 항목에 넣도록 했다. 검사는 위로 올라갈수록 정확하게 수사하고 과잉수사를 하지 않도록 후배들을 잘 지도하는 품성이 중요하다. 특수수사를 예로 들면, 결과물을 얻으려고 곁가지로 친척에 친구까지 다 뒤지는 수사는 잘못 된 거다. 그렇게 뒤지면 우리 사회에는 온전할 사람이 아무도 없고, 그것이 정의를 실현하는 길도 아니다. 그래서 무슨무슨 ‘통’이니 하는 수식어가 붙은 검사들이 무조건 훌륭한 검사인 것처럼 인식되는 왜곡된 검찰 문화를 없애려는 것이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왼쪽)과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지난해 11월2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공수처설치법 제정 관련 당정청회의’에서 동시에 머리를 쓸어넘기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민정수석실, 전화 전혀 안해
-공수처가 왜 필요한가.
“기본적으로 우리 검찰권이 너무 강하다. 그 권한을 분산시키는 거다. 또 하나는 정치권력과의 유착을 끊어놓는 효과도 있다. 공수처가 독립된 기관이 되면 검찰 수사보다는 여러 외부 영향 요소를 줄일 수 있다. 검찰이 고위공직자 수사를 하다보면 현직 검사들은 여러 인간관계는 물론 인사상 불이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소신껏 수사하기 어렵다. 정치인 수사는 검사들이 신경을 안 쓸 수가 없다. 그 연결 고리를 아예 끊어버리는 거다. 검찰의 부담을 덜어주는 기능도 있고, 국민 신뢰를 쌓는 데도 도움이 된다. 국민 입장에서도 수사 대상 사건을 보다 공정하게 바라볼 수 있다.”
-공수처장도 결국 대통령이 임명하지 않나.
“임명은 대통령이 하지만 추천(국회가 2명 추천)은 국회가 한다. 공수처장도 임기가 보장돼 있다. 정치적 중립성을 담보하는 장치가 법안에 여러 가지로 마련돼 있다.”
-법무부 탈검찰화는 거의 완성단계에 온 것 같다.
“법무부 탈검찰화 제1호가 법무부 장관이다. (웃음) 이는 법무검찰의 문화를 바꾸는 토대다. 법무부 실·국·본부 7곳 검사장 자리 중 검찰국장과 기획조정실장 두 자리만 현직 검사장이다. 나머지는 다 바뀌었다. 과거에는 법무부 검사장 자리가 1년마다 바뀌었다. 그렇게 되면 검사들이 다음 자기 인사 생각하느라 국민생활과 밀접한 법무행정을 구상할 시간이 없다. 예컨데, 우리 기업 제도를 바꾸는 상법 업무는 법무실(상사법무과) 주관이다. 1년 있다가 가는 검사장이 전문성을 갖고 장기적인 정책 구상을 하기 어렵다.”
-검찰국은 검사가 하는 게 합리적이지 않나.
“그건 맞다. 검찰국은 검찰 인사와 예산을 담당하고 검찰 내부 사정을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현재 검찰 구성원들도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과거 정부에선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직접 일선 검찰청에 전화해 수사 관련 논의를 해 문제가 됐다. 지금은 정말 없어졌나.
“지금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일절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 부분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법무부 장관과도 수사와 관련한 얘기를 나누지 않는다. (웃음)”
-조 수석과는 업무상 자주 통화할 수밖에 없는 자리에 있는데.
“조 수석과는 같은 형법 전공 교수로 알고 지낸지 오래돼 소통하는 데에 장애요인이 없다.”
-주요 사건은 정무적으로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알아야 하지 않나.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정부조직법상 법무부에 대한 지휘감독권이 있고, 이에 근거해 대통령에게 필요한 사항은 보고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 수사의 공정성을 훼손하거나 수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보고는 하지 않는다.”
부장검사 인사에 형사부 배려할 것
-검찰이 박근혜 정부 대법원의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을 수사 중이다.
“굉장히 중요한 사건이다. 이 사건이 범죄 행위냐 아니냐는 결국 법원이 판단하게 된다. 현재 그런 논리적 딜레마에 빠져 있다. 법원이 고발은 하지 않고 수사에는 협조하겠다고 밝힌 건, 법원 고민의 일단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검찰이 수사를 시작했으니 있는 그대로 사실관계를 파악해 판단하지 않을까 싶다. 민감한 사건이기 때문에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수사할 것으로 생각한다.”
-경찰, 검찰에 이어 법원까지 신뢰가 무너졌다. 신뢰 회복의 출발점은 무엇인가.
“문제가 있을 경우 그 문제를 그대로 놔둔 상태에서는 신뢰 회복의 출발이 되지 않는다. 그 부분은 검찰이 수사해 종결을 지을 거라고 본다. 나도 대법원 관련 문건을 보긴 했지만 ‘이런 일이 있었구나’라며 사실 많이 놀랐다. 이번 기회에 어떤 형태로든 짚고 넘어가면 법원도 다시 신뢰를 회복할 것으로 본다.”
춘천지검에서 강원랜드 채용 비리를 수사했던 안미현 검사가 지난 2월 검찰 지휘부의 수사 외압 의혹을 제기하자, 문무일 검찰총장의 지시로 양부남 광주지검장을 단장으로 한 독립된 수사단이 구성돼 다시 수사가 진행됐다. 하지만 권성동 의원 구속영장 청구 문제 등과 관련해 안 검사와 수사단이 공개적으로 ‘문 총장이 외압을 행사했다’고 주장해 파문이 일었다.
-강원랜드 채용 비리 수사단 문제로 검찰총장의 지휘권 문제가 논란이 됐다.
“검찰 감독권자이자 수장인 검찰총장 입장에서, 수사단이 그런 방식으로 언론에 발표하고 안미현 검사가 기자회견한 것은 많이 당황스러웠을 거다. 특별수사단도 무엇인가 구체적 결과를 내야 하는 임무를 부여받은 상황이다보니 그런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이 문제와는 별도로, 검찰청법에 이의제기권이 있지만 현재 유명무실하다. 중요한 것은 수사와 관련한 논의는 수평적 관계에서 자유롭게 논의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덧붙이면, 간부들이 평검사들과 갖는 회식도 사무실을 떠난 소통의 한 형태다. 소통의 기회로 활용하는 자리가 아니라 말 잘 듣는 검사 길러내는 모임으로 변질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라인’을 만드는 문화 말씀인가.
“그렇다. 검찰 내 라인을 형성하고, 서로 ‘무슨 통이다’ 이렇게 한다. 검찰국에도 계속 지시하는 부분이 이런 거다. 간부 승진 대상자보면 전부 ‘전공’(검사들은 흔히 특수통, 공안통, 기획통, 강력통으로 분류)이 있는데, 다 특수통과 기획통이다. 경찰도 마찬가지다. 경비와 정보 업무를 많이 한 사람들이 승진한다. 정말 잘못된 거다. 검찰은 형사부, 경찰은 수사과가 가장 고생하면서도 조직 안에서는 홀대 받는다. 이를 고치려고 한다. 부장검사와 차장검사 인사 때에는 형사부 검사들을 많이 배려해 끌어올리려 한다.”
문재인 대통령(오른쪽)이 지난해 7월21일 청와대에서 박상기 법무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제공
낙태죄 의견서 표현은 대단히 잘못
최근 낙태죄 위헌 소송과 관련해 법무부 소송을 대리하는 정부법무공단이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낙태를 원하는 여성을 ‘성교는 하되 그 결과인 임신과 출산은 원치 않는다’고 표현해 논란이 일었다. 박 장관은 지난달 29일 이 의견서를 철회하도록 지시했다.
-최근 헌법재판소 낙태 문제 관련한 법무부 입장이 논란이 됐다.
“해당 표현이 대단히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그로 인해 낙태죄 논의의 쟁점이 흐려져 안타깝다. 형법의 낙태죄 처벌 규정 말고 모자보건법의 낙태죄 허용 기준이 있다. 그것을 확대하느냐 마느냐가 더 중요한 쟁점이었다.”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이 2004년 이후 14년 만에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됐다. 헌법재판소도 현재 사건을 심리 중이다.
“만약 대법원 무죄 판결이나 헌재 위헌 결정이 나면, 법률을 개정하는 등 그에 따를 수밖에 없다. 물론 국방부와도 논의가 필요한 사항이다.”
-로스쿨 도입 10년째다. 서울과 지방 로스쿨 격차, 현대판 음서제 등 여러 지적이 제기된다.
“최근 서울 로스쿨 3곳을, 지방 로스쿨 한 곳을 방문해 교수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로스쿨 10년째를 맞아 제도를 한번 되돌아보고 미래를 새로 구상하기 위해 법무실에 로스쿨개선위원회를 구성했다. 문제를 개선하려면 실태조사가 우선이다. 재학생 가정환경과 출신대학 다양성, 장학금 혜택 등 전체 현황을 조사 중이며 조만간 국민들께 알려드릴 것이다. 제도 개선점도 함께 논의 중이다.”
-과거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 사건 중 과거에 선고된 유죄 판결이 잘못됐다고 증명된 재심사건에서 법무부가 무조건적인 항소, 상고를 하는 관행이 있다.
“재심사건은 법무부가 불필요한 항소(2심), 상고(3심)를 하지 못하도록 했다. 유서 대필 사건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강기훈씨 손해배상 사건에서 1심 6억여원, 2심 9억여원 배상 선고가 났는데, 대법원 상고를 포기하라고 했다. 이 사건으로 강기훈씨는 인생이 망가졌다. 사실 손해배상 9억원도 강씨가 받은 고통에 비하면 터무니 없는 액수다.”
과거사와 관련된 재심사건의 공소 유지도 검찰이 맡는다. 검찰은 과거 법원 판결의 잘못됐음이 명백해도 법정에서 피고인에게 무죄를 구형해달라고 하는 대신 재판부에 “법과 원칙에 따라 판결해주시기 바란다”며 이른바 ‘백지구형’을 해왔다. 이는 피고인의 무죄가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법원의 판단에 맡기는 소극적 구형이다.
-재심절차에서 지금도 검찰이 법정에서 백지구형을 하고 있나.
“그동안 검사의 백지구형은 대검의 ‘재심 대응 매뉴얼’에 따른 것이다. 무죄를 무죄라고 말하지 못한 것이다.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다. 피고인, 피의자에게 불리한 증거만이 아니라 유리한 증거가 있다면 그걸 반영해줘야 한다. 지난해 9월부터 대검을 통해 유·무죄 실질구형을 하도록 지휘해 현재 그렇게 하고 있다.”
-노동사건의 경우 검찰이 전가의 보도처럼 노동자들을 업무방해죄로 처벌한다.
“노사 분규 때 노동 관계법이 아닌 업무방해죄로 처벌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교수 시절 학계 처음으로 논문을 썼다. 노동3권은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기본권이다. 이 부분은 검찰이 기존 사건 처리 관행을 다른 방향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집회시위 관련 문재인 정부의 대응 기조는 무엇인가.
“집회시위도 헌법상 기본권이다. 흔히 그것도 검찰이 교통방해죄로 많이 처벌한다. 하지만 집회시위 보장은 원활한 교통 소통보다 더 중요한 법익이다. 다만 집회시위가 불법적으로 변질되면 안 된다.”
-민간 참여형 범죄예방 정책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와 관련해 우선 보호관찰 청소년 상담·지도에 전문 역량을 갖춘 민간인을 ‘명예 보호관찰관’으로 위촉해 상담?지도를 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또한 소년원생의 사회 적응력을 높이기 위한 ‘민영소년원 설립’도 추진 중이다. 2022년 운영 개시가 목표다.“
-앞으로 중점적으로 추진할 과제는 뭔가
“권력형 적폐 청산이 지난 1년간 진행됐고, 이제는 생활형 적폐 청산을 하려고 한다. 채용비리와 대기업 갑질 행위 등 국민 생활에 직접 영향을 미치고 우리사회 공정성을 해치는 적폐에 대응해야 한다.”
김정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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