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간첩 조작에 ‘미완 인생’…죽을 때까지 ‘완성’ 희망으로 살아”

등록 2018-06-28 18:58수정 2018-06-28 23:45

【짬】 독한문화원 김성수 원장

김성수 독한문화원장은 독일에서 민주화 운동을 한 교포 가운데 한 차례도 고국 방문을 하지 못한 인사가 10여 명 정도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운동을 하다 보니 돈도 없고 몸도 쇠약해지고 국내와 인연도 끊어진 분들입니다. 한국 정부가 공개적으로 ‘들어와도 된다’고 밝히지 않고 있는 것도 이분들을 주저하게 하는 요인이죠.”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김성수 독한문화원장은 독일에서 민주화 운동을 한 교포 가운데 한 차례도 고국 방문을 하지 못한 인사가 10여 명 정도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운동을 하다 보니 돈도 없고 몸도 쇠약해지고 국내와 인연도 끊어진 분들입니다. 한국 정부가 공개적으로 ‘들어와도 된다’고 밝히지 않고 있는 것도 이분들을 주저하게 하는 요인이죠.”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예전엔 영구귀국 희망이 있었지만 나이가 이렇게 되니, 이젠 인생마감을 어떻게 하나 그런 생각입니다. 학문 활동도 미완이고 사회 활동도 미완입니다. 미완의 토르소는 예술적입니다만, 제 인생은 구멍이 났어요. 그래도 죽기 전에 완성될 수 있다는 희망으로 살고 있어요.”

지난 26일 인터뷰를 위해 한겨레신문사를 찾은 김성수(82) 독한문화원 원장 얘기다. 그는 1973년 중앙정보부가 발표한 ‘유럽 거점 간첩단 사건’에서 간첩으로 등장한다. 동베를린을 경유해 평양을 다녀온 뒤 국내로 잠입해 북 지령을 전파했다는 혐의다. 프랑크푸르트대 유학생 김성수가 꼼짝없이 ‘조국의 배신자’가 되는 순간이다. 당시 프랑크푸르트대 교수 셋은 기자회견을 열어 한국 기관원들이 김 원장을 납치하려 했다면서 이들의 독일 추방을 요구하기도 했다. 김 원장은 1974년 독일에 정치 망명을 신청해 6년 뒤 독일 국적을 취득했다.

그의 삶을 ‘미완의 운명’과 연결한 간첩단 사건은 29년 뒤 조작으로 결론이 났다. 대통령 직속 의문사진상규명위는 2002년 5월 이 사건을 두고 “당시 중앙정보부도 간첩 혐의자를 찾지 못했던 조작 사건”이었다고 규정했다.

그가 지난 2일 고국을 찾았다. 2003년 9월 민주인사 귀국추진위 초청으로 37년 만에 고국 땅을 밟은 뒤 2014년까지 매해 고국을 찾았지만 이번에는 쉽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10월 인천공항에서 입국 불허 통보를 받은 것이다. 도착 당일 바로 독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탔다. “지난해 7월 청와대와 국가정보원에 한국을 자유롭게 오가게 해달라는 청원서를 보냈죠. 지금껏 답이 없어요.” 공식 답변이 없자 비공식 통로로 고국 방문 가능 여부를 확인했단다. “지난해 7월 입국 불허 대상에서 풀렸다고 들었어요. 문재인 대통령이 작년 7월 초 독일을 찾았을 때 이종현 유럽 한민족연대 상임고문이 이 문제를 대통령께 건의했다고 해요.” 이번엔 아내를 동반하지 않았다. 3년 전 불상사가 재연되지 않으리란 확신이 없어서다.

방문 목적을 묻자 뜻밖의 대답이 나왔다. “독일 사회학자 헬무트 셸스키(1912~1984)가 쓴 <고독과 자유> 번역 출판을 위해서죠. 연세대 철학과에서 석사를 한 김영명 선생과 함께 번역했어요. 대학 행정과 개혁 이론을 체계적으로 다룬 중요한 책입니다.” 한국에 머무르는 내달 12일까지 철학자들도 두루 만날 계획이다. 번역서와 별도로 지난 10년 동안 준비한 자신의 첫 책 내용을 보여주고 의견을 듣기 위해서다. 책 가제는 ‘유럽철학의 근본 한계-역설(paradox) 현상과 극복시도’이다. “유럽철학은 근본적으로 이분법적 사유에 기반을 둡니다. 이 때문에 필연적으로 역설 현상을 일으켜요. 지금 유럽 학문이 전반적으로 정체 상태입니다. 이 근거를 철학적으로 이야기하려고 해요. 유럽철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연말까지 보완해 책을 낼 생각입니다.”

그는 연세대 철학과 56학번이다. 연세대 대학원에선 동양철학을 했다. “노장 철학의 시각에서 본 서양 사상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어요. 66년 독일로 간 것도 비교철학을 하기 위해서죠. 그 열매를 이제야 봅니다.”

73년 유럽거점 간첩단 사건 연루
29년 뒤 의문사위 조작사건 결론
박근혜 정부때 입국거부 당하기도

동학농민운동 연구로 박사 학위
유럽철학 한계 다룬 저서 연말에
“남북 지혜 모아 세계적 모델 창출을”

이번에 천도교 최고지도자인 이정희 교령도 두 차례 만났단다. 김 원장은 90년대 말 동학 경전인 <동경대전>을 독일어로 옮겼다. “동경대전의 첫 외국어 번역본이죠.” 1980년 프랑크푸르트대 박사 논문 주제도 동학농민운동이다. “천도교 쪽에서 인내천 사상을 해외보급하려는데 독일에서 제가 중추적 역할을 해주길 부탁하더군요. 독일 지부도 만들고요. (제안을 받고) 저보다 더 좋고 젊은 사람에게 맡기면 좋겠다고 했죠.” 천도교 대학원에서 비교종교를 주제로 강의도 했단다.

그는 1966년 튀빙겐대로 유학을 간 뒤 3년 만에 프랑크푸르트대로 옮겼다. 올해로 49년째 프랑크푸르트에서 대학 병원 간호사로 정년 퇴임한 아내 정방지씨와 살고 있다. “유학 전에 박현채, 김장현씨 등과 만나 나라 걱정을 많이 했어요. 쿠데타, 한일협정 반대로 나라가 시끄러운 시절이었어요.” 독일행에는 진보사상을 공부할 수 있겠다는 기대도 적잖이 작용했단다. “(교육부 장관을 지낸) 이규호씨와 연줄이 닿아 튀빙겐대로 갔는데 학풍이 보수적이더군요. 결혼을 한 1969년에 학생운동 중심지이며 진보 교수도 많았던 프랑크푸르트대로 갔죠.”

김성수 독한문화원장은 두 딸을 두고 있다. “큰딸은 시장조사회사에 다니고 있고 둘째는 의사입니다. 사위는 모두 독일인이고 손주가 다섯이죠.”
김성수 독한문화원장은 두 딸을 두고 있다. “큰딸은 시장조사회사에 다니고 있고 둘째는 의사입니다. 사위는 모두 독일인이고 손주가 다섯이죠.”

71년엔 프랑크푸르트 한인회장도 지냈다. “독일 정부가 한국인 광부와 간호사를 부려먹고 쫓아내려던 때였어요. 동포들의 어려움을 지나칠 수가 없었죠. 유학생들은 독일말도 조금 알고 지역 사정을 아니까 의지가 되었어요. 한국인 광부들이 많이 사는 중부 도시 뒤스부르크 등을 찾아 독일인 인권 변호사에게 도움을 호소했죠. 그러다 73년 간첩 사건이 터지면서 인생이 뒤죽박죽되었어요.”

그 뒤 생계는 아내가 꾸렸다. 그는 유학생과 동포들이 꾸린 민주화 운동 단체나 연구소에서 활동했다. 민주화 운동 중에도 이름을 내세워야 할 때는 ‘간첩 낙인’이 부담이 될까 봐 뒷전으로 물러섰단다. 왜 동학으로 박사를? “엥겔스가 쓴 ‘독일농민전쟁’ 논문을 보면서 나도 우리 농민전쟁을 멋있게 정리하고 싶었어요. 한국 변혁운동을 독일에 알리고 싶기도 했고요. 동학운동이 발생한 사회 경제적 배경을 파고 들었죠. 농민운동이 지역을 넘어 확산되기 위해선 사상이 필요한 데, 이는 고정된 게 아니라 운동 과정을 통해 무르익는다는 걸 알게 되었죠.”

현재 한반도 화해 분위기에 위로를 느낀다면서 이런 말도 했다.

“통일 전 서독과 동독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체제 모범 국가였어요. 동독은 러시아보다 사는 것도 나았고, 집권당인 통일사회당도 당 조직이 잘 돌아갔어요. 둘이 잘 합쳐지면 새로운 사회 모델이 나올 것으로 기대했어요. 하지만 독일은 통일 과정에서 업그레이드되지 못했어요. 사회주의 진영이 경제적으로 망한 덕만 봤죠. 옛 사회주의 지역은 경제 식민지로 전락했어요. 남북은 새 사회를 건설할 인재가 정말 충분합니다. 함께 협력해 지혜를 짜내면 세계적 모델을 만들 수 있어요. 가장 앞서가는 상품도요.”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