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30일 민주노총 주최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6·30 전국노동자대회에 참가한 ‘전국무민노동조합총연맹’ 대표 문준혁군. 선담은 기자 sun@hani.co.kr
두 달 전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한 문준혁(18)군은 ‘전국무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무노총)의 대표다. 민무노총의 깃발에는 핀란드의 만화 캐릭터 ‘무민’이 그려져 있다. “덕질하며 먹고 살만큼의 시간과 돈을 바라는 무민 덕후들의 삶의 질 개선을 위한 노동조합”을 표방하는 민무노총을 만든 문군은 지난 27일부터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민무노총에 가입하고 6·30 전국노동자대회에 함께 참석하자고 제안했다. 물론 ‘무민 덕후’를 위한 민무노총은 실제 존재하는 노조가 아니다.
30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한겨레>와 만난 문군은 “최저임금 산입범위가 확대돼 실질적인 임금이 줄어들면, 덕후들의 굿즈통장도 가벼워질 것 아니냐”며 “최저임금삭감법은 폐기돼야 한다”고 장난기 어린 얼굴로 말했다. 문군이 에스엔에스에 민주노총을 패러디한 ‘민무노총 창립선언서’와 ‘민무노총가’를 올린 것 역시 “장난삼아” 벌인 일이었다. 그러나 29일 구글폼을 활용해 에스엔에스에 올린 민무노총 가입서에는 하루만에 35명이 신청을 했고, 전체 조합원의 20%인 7명이 이날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전국노동자대회에 ‘민무노총’ 소속으로 참석했다. 최저임금은 ‘딱 먹고 살만큼만’ 받는 돈이 아니라, 인간적인 삶을 위한 소소한 ‘덕질의 즐거움’도 보장해야 한다는 선언이 누리꾼들의 공감을 이끌어낸 결과다.
“보통 사람들한테 ‘노동조합’은 어렵고 낯설잖아요. 그래서 귀엽고 친근한 ‘무민’ 캐릭터를 내세워 노조와 노동자대회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싶었어요.” 10대 소년의 ‘가벼운 장난’에 담긴 뜻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권수정 정의당 서울시의원이 6월30일 민주노총 주최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6·30 전국노동자대회에서 ‘전국무민노동조합총연맹’ 깃발을 들어보이고 있다. 민무노총 트위터 갈무리
문군은 경남 사천에 산다. 무민을 좋아하는 소년은 왜 이날 상경해 민주노총과 연대를 했을까. 문군은 지난해 3월 다니던 학교를 자퇴하기 전까지 청소년인권단체 ‘중고생연대’의 대표로 활동했다. “인권 문제를 공부하다 보니 청소년, 여성, 비정규직 등이 노동현장에서 겪는 차별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인권과 노동문제가 다 연결돼 있더라고요.”
문재인 대통령을 싫어하지만 “네 인생은 알아서 하라”는 보수성향 아버지와 “경상도 사람치곤 진보적”인 어머니 밑에서 자란 문군이 청소년 인권에 눈을 뜨게 된 건 중학생 때였다. “초등학교 때까진 ‘공부하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중학교에 들어가 학업에 대한 압박을 받기 시작하다 보니 사람이 옆으로 새더라고요. 마침 그 무렵(2014년) 경남에서 진보성향인 박종훈 교육감이 처음으로 당선됐고, 학생인권조례 제정이 이슈가 됐어요. ‘학생도 인간인데, 입시 때문에 누릴 수 있는 인권이 제한되선 안 된다’는 말에 마음이 훅 끌려 청소년 운동을 시작했죠.”
민주노총의 창립선언을 패러디한 ‘민무노총 창립선언문’. 민무노총 트위터 갈무리
고등학교에 입학한 뒤 교내에 ‘학생 인권 동아리’를 만드는 등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문군은 2016년 촛불정국 당시 사천에서 ‘청소년 촛불집회’를 주최하기도 했다. “학교에 촛불집회 참여를 독려하는 포스터도 뿌리고, 다른 학교 학생들의 도움을 받아 각 학교 페이스북 대나무 숲에 촛불집회 홍보 게시물도 올렸어요.”
그러나 “우리 동네에서 촛불집회를 열고 싶다”는 열일곱 소년의 ‘단순함’은 그가 학교를 그만두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경찰 정보과에서 학교에 연락을 해 ‘얘가 청소년단체 대표라는데, 뭐하는 애냐?’라고 물었던 거죠. 그 이후 학교에서 제게 압박을 준 건 아니었지만, 경찰이 제 뒤를 캔다는 사실과 한 번도 말썽 피운 적 없는 제가 교무실에 불려다니는 상황 자체가 큰 스트레스였어요. 교내 방송에서 제 이름이 나오는 것도 싫었고요.”
문군은 “나는 하고 싶은 활동을 제약 받으며 학교를 다니고 싶진 않다”는 말과 함께 자퇴를 선언했다. 처음엔 당황했던 그의 부모는 곧 늦둥이 아들의 선택을 존중해줬다. 학교를 그만둔 뒤 지난 1년 동안 그는 “폐인이 될 때까지” 읽고 싶은 책을 읽으며 검정고시를 준비했다. 틈틈이 어머니가 운영하는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
문군은 ‘최저임금이 오르면 어머니 편의점이 타격을 받지 않겠냐’는 질문에 “본사가 매달 점주로부터 가져가는 30~40%의 수수료를 절반으로만 줄여도 최저임금 1만원 인상은 가능하다”며 “대신 대기업 프랜차이즈에 대한 규제 강화와 불공정 관행 등이 해결되지 않으면 점주들만 피해를 볼 것”이라고 명료하게 대답했다.
그런데 왜 하필 ‘덕후노조’의 캐릭터로 무민을 선택했을까? “무민은 너무 즐겁게 살지 않나요? 무민 만화에서 ‘열심히 한다는 게 뭐야?’라는 질문에 무민이 ‘내가 가장 싫어하는 걸 하는 거야’라고 말하는 대사를 가장 좋아해요. 저도 느긋하고 낙천적인 무민처럼 살고 싶거든요.”
선담은 기자
s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