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 9년 김주중씨 30번째 비극
복직 꿈 뒤로하고 지난달 27일 사망
경찰은 손배소송 아직도 진행 중
금속노조 지부 “회사가 죽음 몰았다”
보수단체, 분향소 설치 방해하기도
3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 설치된 쌍용차 해고노동자 김주중씨의 분향소에서 시민들이 김씨를 추모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해고 기간 55개월. 국가가 제기한 손해배상액 14억7000만원. 퇴직금 가압류. 부동산 가압류.”
시민단체 ‘손잡고’의 윤지선 활동가는 울음을 겨우 참으며 4년 전 쌍용차 해고노동자 김주중(48)씨가 보내온 메시지를 읽었다. 사번 19936173. 스물세 살에 쌍용차에 입사해 자동차를 만드는데 젊은날을 바친 그는 2009년 쌍용차 정리해고 사태 때 회사를 떠나야 했다. 그리고 9년여 기다림에 지쳐 지난달 27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서른 번째 죽음이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차지부는 3일 오전 11시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 김씨의 분향소를 차렸다. 섭씨 31도까지 달군 뙤약볕도 눈물까지 말리지는 못했다. 분향소를 차리며 기자회견에 나선 김정욱 쌍용차지부 사무국장은 “밤새 무슨 이야기를 할지 고민했는데 이곳에 오니 머릿속이 다 지워졌다. 영정으로 남은 김주중 동지만 눈에 들어온다”며 눈물을 훔쳤다. “살려내라”는 구호는 절규에 가까웠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장면이 있다. 정리해고 반대를 위해 ‘옥쇄 파업’을 벌였던 2009년 8월5일 쌍용차 평택공장의 옥상. 경찰 특공대의 강제 진압이 있던 그 날, 그 자리에 김주중씨가 있었다. 김득중 지부장은 “경찰 특공대의 살인 진압으로 쫓겨난 해고노동자들이 생계를 위해 전국으로 흩어진 지 십년이 돼 간다”며 “이명박 정부의 살인 진압과 정부의 손해배상 가압류가, 그리고 노동자들과의 복직 합의를 지키지 않은 회사 쪽이 김주중 동지를 죽음으로 몰았다”고 말했다.
복직에 대한 ‘희망 고문’과 더불어 국가의 손배소송은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에게 끔찍한 악몽이었다. 경찰은 장비 손상과 경찰관 부상 등을 이유로 쌍용차지부 등에 14억70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서울고법은 2016년 5월 쌍용차지부가 국가에 11억3000여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자가 붙은 배상액은 눈덩이처럼 불어 이제 17억원이 넘었다. 경찰은 손해배상소송을 취하하지 않고 있다.
기자회견을 마친 오전 11시57분께 쌍용차지부가 분향소로 활용할 천막을 설치하려 하자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대한문 앞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석방을 요구하며 농성을 하는 ‘태극기혁명국민운동본부’ 회원 수십명이 몰려들었다. 이들은 “빨갱이들 물러가라”, “이곳은 보수의 성지다”라고 소리 지르며 천막 설치를 막고 플라스틱 의자를 집어 던졌다. 이 단체 회원 김아무개(67)씨는 “우리가 먼저 이곳에서 농성과 집회를 해왔다. 나라를 망쳐온 민주노총과 같은 공간에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보수단체 회원들이 3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서 쌍용차 해고노동자 김주중씨의 분향소 설치를 막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분향소는 설치됐지만 불편한 동거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보수단체 회원들은 방송차를 분향소 가까이 끌고 와 군가를 크게 틀었다. 군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쌍용차 해고노동자들과 시민들은 환하게 웃고 있는 김주중씨의 영정에 절을 하고 하얀 국화를 놓았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