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령 및 배임, 사기, 약사법 위반 등 혐의를 받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5일 서울 양천구 남부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조 회장은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 없이 법정으로 들어갔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한진그룹 일가를 상대로 한 검찰과 경찰의 구속영장이 잇따라 기각되고 있다. 다만 검찰이 구속영장 재청구를 검토하고 있고, 추가 수사도 남아있어 아직 한진 일가를 둘러싼 불씨가 모두 꺼진 것은 아니다.
김병철 서울남부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6일 새벽 3시20분께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피의 사실들에 관해 다툼의 여지가 있고 이와 관련된 피의자의 방어권을 보장할 필요가 있어 현 단계에서 구속해야 할 사유와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라고 밝혔다. 조 회장은 약국을 차명으로 운영해 1000억원이 훌쩍 넘는 건강보험료를 부당하게 청구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의 사기, 약사법 위반)와 한진그룹 계열사에게 삼 남매가 가진 자사 주식을 높은 가격에 사들이도록 해 40억여원의 피해를 준 것을 포함해 회사에 총 200억원 가량의 손해를 입힌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의 배임) 등을 받아왔다. 하지만 법원이 구속의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앞서 조 회장의 딸과 부인의 구속영장 역시 거듭 기각된 바 있다. 서울 강서경찰서는 5월4일 광고대행사와 회의 중에 물컵을 집어 던져 논란이 된 조 회장의 딸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에게 폭행과 업무방해 혐의 등을 적용해 검찰에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하지만 검찰은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조 전 전무가 피해자와 합의를 했기 때문에 폭행 혐의를 적용할 수 없고 업무방해 혐의 적용에는 다툼이 있으며 증거가 확보된 상태라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는 등의 이유 때문이었다. 결국 경찰은 조 전 전무에게 업무방해 혐의만 적용해 불구속으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조 회장의 부인인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은 두 차례나 구속을 피했다. 지난달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이 이사장에게 특수상해, 상해, 모욕 등 무려 7개의 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번엔 검찰도 구속의 필요성을 인정해 5월31일 법원에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하지만 박범석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범죄혐의 일부의 사실관계 및 법리에 관해 다툼의 여지가 있고 피해자들과 합의한 시점 및 경위, 내용 등에 비추어 피의자가 합의를 통해 범죄사실에 관한 증거인멸을 시도했다고 볼 수 없다”며 영장 기각 사유를 밝혔다. 다음엔 법무부 산하 서울출입국외국인청 이민특수조사대가 나섰다. 이민특수조사대는 지난달 18일 필리핀인 10여명을 대한항공 연수생으로 입국시킨 뒤 가사도우미로 고용한 혐의(출입국관리법 위반)로 이 전 이사장의 구속영장을 검찰에 신청했다. 검찰은 이 신청을 받아들여 법원에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허경호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범죄혐의의 내용과 현재까지의 수사 진행 경과에 비추어 구속수사할 사유나 필요성,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이어 6일에는 조 회장의 구속영장도 기각됐다.
다만 한진 일가의 ‘불패 기록’이 계속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검찰이 상속세 탈루와 관련한 수사를 추가로 진행한 뒤 구속영장을 재청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기 때문이다. 검찰 관계자는 “영장 기각 사유를 분석하고 추가 수사사항을 검토해 구속영장 재청구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여전히 남은 수사도 많다. 대표적인 것이 ‘일감 몰아주기’ 혐의다. 검찰은 조 회장을 수사하면서 이명희 이사장과 처남 등의 회사에 대한항공의 일감을 몰아준 정황을 잡았다. 하지만 ‘일감 몰아주기’는 공정거래법 위반 사건으로 전속고발권을 가진 공정거래위원회의 고발이 있어야 수사를 시작할 수 있다. 현재 공정위는 이 사건을 검찰에 고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밖에도 한진 일가가 외국에서 검역을 받지 않은 농산물이나 명품 등을 들여온 것과 관련해 관세청 등이 조사를 진행 중이다.
정환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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