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실이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최고투자책임자(CIO) 후보인 곽태선(60) 전 베어링자산운용 대표의 인사검증을 한 것은 형법상 직권남용에 해당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청와대는 “직권남용 주장은 지나친 형식논리이며, 인사검증은 전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복수의 법조계 인사는 8일 <한겨레>에 “국민연금 시아이오의 인사권자는 대통령이 아니라 보건복지부 장관이므로 대통령을 보좌하는 민정수석실은 곽 전 대표를 검증할 법적 권한이 없다”며 “그런데도 민정수석실이 곽 전 대표 본인과 그 아들의 병역 관련 사항 등을 검증했다면 형법상 직권남용이 된다”고 말했다.
국민연금법에 ‘기금이사’라고 표현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최고투자책임자는 ‘(국민연금) 이사장의 제청으로 보건복지부 장관이 임면한다’(제30조 2항)고 돼 있다. 또 세부 선임절차는 기금이사추천위원회(위원장 국민연금 이사장)가 보건복지부령에 정해진 후보 심사기준에 따라 심사하고, 후보와 계약 조건을 협의한 뒤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임명 제청을 하도록 정해 놓았다.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곽 전 대표는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의 전화와 청와대 인사수석실 관계자의 권유를 받고 국민연금 시아이오에 응모했고, 김성주 국민연금 이사장한테서 후보 내정 통보까지 받았다. 그러나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주도한 사후 인사검증에 걸려 낙마했다.
검찰 관계자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인사검증은 법에 대통령이 임면권을 갖고 있다고 규정된 공직에 한한 것이다. 이를 넘어서면 직권남용으로 위법이 된다”며 “불과 얼마 전 박근혜 전 대통령과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모두 법에 없는 인사권을 행사해 처벌받은 마당에 문재인 정부에서도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은 아이러니”라고 말했다.
곽 전 대표의 검증동의서 제출 여부도 논란이 될 전망이다. 검찰 고위직 출신 변호사는 “청와대가 곽 전 대표에게 (제출 의무가 없는) 검증동의서를 받았다면 변명의 여지가 없는 직권남용이고, 검증동의서도 안 받고 곽 전 대표와 그 아들의 병적 등 개인정보를 확인했다면 그것이 바로 사찰”이라며 “과거 정부의 잘못된 관행을 적폐로 처벌하는 상황에서 청와대가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런 비판이 지나친 형식논리라고 반박하며 “장관이 인사권을 갖더라도 장관은 대통령의 권한을 위임받아 행사하는 것으로 문제 없다. 전에도 재산신고를 하는 고위공직자 인사 검증을 해왔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그런 지적대로라면 모든 부처가 자체 인사검증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면서 “국민재산 600조를 운용하는 후보자에 대한 청와대의 인사검증은 당연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희철 선임기자, 김보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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