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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20대 여성들, 선배 여성들 사는 것 보면 아이 낳고 싶을까요?”

등록 2018-07-09 18:55수정 2018-10-24 15:13

‘정치하는엄마들’ 속 빈 강정에 뿔났다
“저출산 대책, 패러다임 전환은 말 뿐”
부처별 정책 조각조각 짜깁기에만 그쳐
경력 단절·승진 누락 등 노동대책 뒷전

지난 6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 소속 회원들이 긴급 모임을 열어 정부의 저출산 정책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있다.
지난 6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 소속 회원들이 긴급 모임을 열어 정부의 저출산 정책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있다.

“기존 저출산 대책이 출산율 제고와 보육 정책에 맞췄다면, 이번 정책은 워라밸과 삶의 질 향상에 신경 썼다고요? 말장난이죠. 출산하면 여성들은 일을 계속하기 힘든 경우가 많은데, 유행 따라 워라밸 같은 말 쓴다고 패러다임 전환이 되나요? 일을 못하는데 무슨 일과 삶의 균형이요? 패러다임 전환 필요하지만, 이렇게 부처별 정책을 조각조각 모아 발표하면서 패러다임 전환을 언급하니 어이가 없었어요.”

4살 아이의 양육자 오승희씨가 정부 보도자료를 가리키며 말을 꺼냈다. 6일 낮 12시 서울시 종로구에 있는 한 카페에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소속 회원 6명이 긴급 모임을 열었다. 지난 5일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첫 저출산 대책에 대해 아이를 키우는 당사자로서 의견을 나누고 평가를 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정부 보도 자료를 프린트해와서 꼼꼼하게 검토하는가 하면, 최근 나온 기사들을 모니터링하고 각자 자신이 가져온 자료를 토대로 정부 정책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일반 회사 둘 중 하나는 ‘퇴출’

“노동 관련 대책 안 나오면 출산율 제고 절대 안된다고 봐요. 20대 여성들이 선배 여성들 사는 것 보면 아이 낳고 싶을까요? 아이 낳는 순간 유능한 선배들이 경력 단절될 위험에 처하고, 설사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승진 누락되거나 아이 키우느라 아득바득 사는 걸 지켜보면서 절대 아이 낳고 싶지 않죠. 정부가 진짜 출산율에 관심이 있다면, 음주 단속하고 과속 운전 단속하듯이 출산 휴가와 육아 휴직 안주는 회사, 육아 휴직 뒤 복귀 안 시키는 회사를 적극적으로 단속해야죠. 정부가 저출산 문제에 관심 있다면, 노동 관련 정책도 건드려야죠.”

장하나 공동대표는 열띤 어조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장 공동대표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6년 낸 ‘취업 여성의 일·가정 양립 실태와 정책적 함의’라는 보고서에 나온 수치를 회원들과 공유하며 임신·출산·양육 과정에서 여성의 노동권이 보장되지 않는 현실을 지적했다. 보고서를 보면, 첫째아 출산 전·후 6개월간 취업중이던 기혼 여성(15~49살)들 가운데 둘 중 한 명은 여전히 일을 그만뒀다. 그런데 경력 단절 여부는 직종별 격차가 크다. 공무원이나 국공립 교사를 하는 여성이 일을 그만두는 비율은 전체의 11.2%에 불과한데, 일반회사는 49.8%에 이른다. 임시 일용 근로자들의 경우엔 무려 전체의 71%가 일을 그만둔다. 비정규직 여성은 거의 출산과 동시에 일을 그만둔다고 봐야 한다.

조성실 공동대표는 규모가 작은 회사에서 일하다 출산과 동시에 퇴사할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경험을 나눴다.

“대체 인력이 없는 상태에서는 출산 휴가와 육아 휴직을 쓴다해도 ‘민폐 인력’이 될 수 밖에 없어요. 중소 기업의 경우 육아 휴직 중인 직원이 재택으로 틈틈이 일을 지시 받게 되는 경우도 잦고요. 일은 일대로 하면서 육아 휴직 뒤에 복귀하면 ‘이렇게 어려운 조건에서도 너에게 육아 휴직 줬으니 적어도 3~5년은 일해야지’라는 압력이 오기도 하더라고요. 회사에 미취학 아동을 키우는 여직원이 두 명이었는데, 둘 다 친정 엄마와 같이 살았어요. 친정 엄마와 같이 살지 않는 한 그마저도 경력을 이어가지 못했거든요. 선배들 사는 모습을 지켜본 저는 육아휴직을 쓴다한들 일·가정 양립이 불가능할 걸 알았죠. 유산 위험이 높은 편이기도 했기에 출산 전에 퇴사한거죠.”

그는 여성의 비자발적 퇴사가 많은 상황을 개선하지 않는 한 출산율 하락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간호사이며 현재 90일 된 아이를 키우며 육아휴직 중인 진유경씨도 교대 근무를 하는 업무 특성상 상당수 간호사가 아이와 떨어져 살거나 친정 엄마와 같이 살아야만 겨우 일·가정 양립이 가능한 현실이라고 전했다.

‘스마트 근로 감독’ 강화해 적극 조처해야

장 공동대표는 모성보호 취약 사업장에 대한 ‘스마트 근로 감독’을 강화해서 정부가 여성의 노동권을 침해하는 회사에 대한 적극적인 행정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장 대표는 “고운맘 카드와 국민행복 카드를 발급받은 사람들의 데이터와 육아휴직 급여를 받은 사람의 데이터 양쪽을 대조해서 어느 회사가 육아 휴직을 덜 주고, 다시 복직이 되지 않는지 고용노동부가 쉽게 알 수 있다”면서 “19대 국회 때 법까지 고쳐 스마트 근로 감독이 가능하게 됐는데, 아직도 근로 감독 실적이 안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예전에는 고용노동부가 인력이 없다는 게 변명이 됐지만 이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며 “여성의 노동권, 엄마의 노동권을 침해한 기업에 대해 국가가 무관용의 원칙으로 대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조 공동대표 역시 “영국은 지난 2010년 제정된 평등법에 임신과 육아(maternity)에 따른 차별금지법이 포함되어서, 임신과 출산 등을 이유로 여성을 해고할 경우 그 기업은 엄청난 경제적 부담을 떠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외국 사례도 참고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집담회 참가자들은 또 이번에 나온 정책들이 정책 대상자들에게 ‘아이 키우기 행복한 나라’라고 체감하기에는 ‘속 빈 강정’과 같은 정책이라고 진단했다.

진씨는 “국민행복카드 금액 50만 원에서 10만 원 증액했는데, 각종 검사도 많아서 임신 6~7개월 안에 다 쓸 수밖에 없다”며 “그 돈으로 출산에 드는 비용도 감당하지 못할뿐더러 사용 기간을 1년 연장한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8살 미만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게 하루 1시간 노동 시간 단축할 경우 인사 보복 또는 고과 보복으로 돌아올 것이 뻔하다”며 “그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부모 가족의 양육비를 13만 원에서 17만 원으로 올려 양육비 지원을 강화했다고 한 부분에 대해서도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왔다. 장 공동대표는 “한부모가족의 경우 양육비 지원을 받으려면 중위 소득 60% 이하여야 겨우 지원을 받을 수 있다”며 “월급이 170만원 이상인 한부모 가족에게는 아무런 대책이 없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그는 “돈 얼마를 주는 문제가 아니라 한부모 가족 관련 대책은 별도로 종합적인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동과 양육자 생애 주기 맞춤정책 내놔야

아빠 육아휴직 활성화 대책과 관련해서도 급여 지원 확대책 외에도 육아 휴직을 일정 기간 강제화하는 방안 등을 적극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오씨는 “배우자 출산 휴가 기간을 3일에서 10일로 늘렸는데, 이 기간은 어떤 기준으로 나왔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오씨는 “산모가 혼자 자기 몸과 아기 둘을 돌볼 수 있는 기간으로는 3일이든 10일이든 다 부족하기는 마찬가지다. 배우자의 역할을 산후조리원이나 친정엄마 등 제3자의 도움으로 대신하는 것을 너무 당연시하는 사회 시스템이 불공평하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영유아 보육·교육 정책 개선 방향이 보이지 않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현재 남양주에서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는 윤일순씨는 “아동 대 교사 비율이나 보육 교사의 근무 여건 등을 살펴보면 영유아 보육·교육 환경은 너무나 열악한 상황”이라며 “부모들이 안심하고 아이를 맡길 수 있는 보육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외에도 정부나 언론이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10년 동안 130조 원 이상을 쏟아부었는데도 저출산 문제가 해결되고 있지 않다고 지적하는 것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도 나왔다. 김정덕씨는 “사회구성원으로서 한 사람이 태어났을 때 사회적으로 마땅히 지출해야 하는 복지비용마저도 저출산 관련 예산으로 분류된다”며 “여성을 결혼 여부와 자녀 유무로 구분 지으며 저출산의 수혜자로서 막대한 돈을 정부에서 지불했음에도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식으로 여성 혐오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아이는 여성 혼자 낳는 것이 아니다. 정부가 저출산이 아니라 저출생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여성에게만 책임을 지우는 프레임을 벗어나야 한다. 아이가 왜 태어나기 힘든 사회인지 모든 구조적인 문제들을 재고하고 성평등 의식을 개선하기 위해 적극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참가자들은 정부가 아동과 양육자 중심의 생애 주기에 적합한 정책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가 정책을 기획하고 집행하는 과정과 정책에 대한 피드백을 받는 과정 전체에 계층별로 정책 수요자를 참여시켜 실질적인 대책이 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글·사진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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