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철호(57)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과 최수규(59) 중소벤처기업부 차관 등 퇴직 후 승인 없이 재취업한 고위공직자들이 줄줄이 검찰 조사를 받게 됐다. 2015년 9월 공정위 상임위원으로 퇴직한 지 부위원장은 지난해 1월부터 올 1월까지 중소기업중앙회(중기중앙회) 상임감사로 근무했다. 최 차관은 중소기업청 차장으로 퇴직한 직후인 지난해 2∼7월 같은 기관에서 상근부회장으로 일했다.
두 사람은 공통으로 “중기중앙회가 취업제한기관이 아닌 줄 알았다”고 말했다. 지 부위원장의 경우엔, 지난 1일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그 근거를 밝히기도 했다. 공정위와 중기중앙회에 문의했지만 “문제없다”는 답변을 들었다는 것이다. 나아가 기획재정부 국장 출신 박아무개씨나 중소기업청 출신 최 차관도 중기중앙회에 승인 없이 취업해 자신은 괜찮은 줄 알았다고도 했다. 그는 “업무 연관성으로 말하자면 중소기업과 밀접한 국가계약 사무나 정부조달 업무와 관련이 있는 기획재정부는 물론, 중소기업청으로부터 많은 정부보조금을 직접 받고 있는 중소기업청 출신이 중기중앙회에 취업하는 경우 심사를 받는 것이 합당하다고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정작 공식 승인기관인 인사혁신처 공직자윤리위원회(공윤위)의 취업 심사는 받지 않았다.
최근 인사혁신처는 “중기중앙회는 취업제한기관이 맞다”고 밝혔다. 그러자 공정위와 중기부 쪽은 “취업제한기관인지 인지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중소기업을 제재 대상으로 삼는 공정위나 이름마저도 비슷한 중기청이 중기중앙회와 업무 연관성이 있는지 애매하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공정위가 보도자료까지 내면서 강조하듯 공윤위는 지 부위원장에게 과태료를 부과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승인 없이 취업제한기관에 취업했다’는 팩트가 달라지는 건 아니다.
취재 과정에서 공정위와 중기부 관계자는 기자에게 “저희 차관(부위원장)님께서 중기중앙회는 ‘협회들의 연합회’라서 취업제한기관이 아니라고 하시는데 잘못 알고 있는 거 아니냐”고 물었다. ‘외형 거래액 100억원 이상 사기업의 협회’를 취업제한기관으로 정한 규정(공직자윤리법 시행령 33조)을 두고 하는 말이다. 중기중앙회는 ‘사기업을 직접 회원으로 둔 협회’가 아니라, ‘여러 협회들의 연합회’이기 때문에 괜찮은 거 아니냐는 취지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기자가 “혹시 신한은행 국민은행 등 시중 은행들도 중기중앙회 특별회원이라는 사실을 아느냐”거 되물으니, 두 곳 모두 “몰랐다”고 답했다.
공직자윤리법은 공직자의 직무를 통한 개인적 이익추구를 막는 법이다. 퇴직공직자 취업제한을 규정한 이 법 17조는 4급 이상 공무원은 퇴직 후 3년간 자신이 5년간 다뤘던 업무와 관련 있는 기관에 승인 없이 취업하지 말라는 조항이다. 애매했다고 생각했다면 심사를 받아야 했다. 법 조문을 놓고 입씨름하는 일은 재취업 전에 해야 했다.
중기중앙회 상임감사나 상근부회장은 억대 연봉에 다달이 수백만원짜리 법인카드도 지급되는 자리라고 한다. 이들이 법을 위반했는지는 향후 재판으로 판가름날 것이다. 혹 그 전에라도 본인들의 양심이 하는 말에 귀 기울여보기 바란다.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김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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