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구좌읍 월정리 해변. 길게 이어진 카페촌에 가려 바닷가에서는 월정리의 할망들이 살아가는 돌담집이 아예 보이지 않는다. 박승화 기자
“촌 할망(할머니)들이 밤잠 자야 아침 일 나갈 텐데, 새벽 서너 시까지 술 먹고 떠들어. 사람이 살 수가 없어.”
제주에서 관광개발 열기가 가장 뜨겁다는 구좌읍 월정리. ㅇ할머니는 “나는 외지 사람 보면 인사도 안 한다”고 했다. 할머니와 평생을 함께한 ㄱ할아버지는 “관광객들이 밤늦게 길에 나와 술 취해 떠든다”며 “어떤 때는 트럭 몰고 가서 받아버리고 싶다”고 했다. 이 노부부의 돌담집 너머로 3층 건물 2채가 괴물처럼 솟아 있다. 1층은 술집이고 2층과 3층은 펜션이다. 집 뒤쪽으로도 펜션 신축 공사가 한창이다. 할아버지는 “시끄럽다고 항의하면, 왜 우리 집에 방음시설을 안 하냐고 되레 야단친다”고 억울해했다. “마을 한가운데에 저런 (건축) 허가를 내주면 되나요. 답답해요.”
“트럭 몰고 가서 받아버리고 싶다”
밀려드는 외지인은 하늘 끝까지 땅값을 끌어올렸다. 마을 공동체도 갈라놓았다. ‘카페 천국’이라는 월정리에는 1㎞ 남짓 해안을 끼고 술집·카페, 펜션·게스트하우스가 빽빽이 들어섰다. 해변 바로 안쪽엔, 할망과 하르방(할아버지)들이 농사짓고 물질하면서 살아가는 돌담집들이 옹기종기 붙어 있다. 지난해 월정리 해변 쪽 건물의 공시지가는 1㎡에 90만원을 넘었다. 3년 전 8만원보다 무려 11배 이상 폭등했다. “땅값 오른 것은 좋지 않으냐”는 기자의 말에, 할아버지는 “땅 가진 사람들은 그렇겠지만, 우리 같은 사람은 아무 좋을 것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노부부는 남의 땅 4천 평(1만3223㎡)을 빌려 농사를 짓고 있다. “주말이면 외지인들 차가 좁은 골목길로 몰려와. 농협 앞에 주차할 곳이 없어서 우리 원주민들끼리 싸워. 외지인 때문에 마을에 분란이 일어나는 거야.” 월정1리 돌담집에 사는 다른 할머니는 “우리끼리 조용하게 살 때가 좋았다”고 했다. “관광객들이 음료수병·캔·담배꽁초 아무거나 다 버려. 여기는 외지 사람들이 다 차지했어. 우리는 이제 월정리 사람 취급도 못 받아.”
제주 제2공항 부지 근처인 성산읍 신산리 주민들이 제2공항 건설을 반대하는 내용의 펼침막을 내걸었다. 박승화 기자
월정리와 가까운 세화리 주민 ㄱ씨는 “월정리는 저렇게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우리한테 보여주는, 좋은 반면교사”라고 했다. “월정리 주민들이 불쌍해요. 생활의 불편은 몸으로 다 받고, 굴러다니는 돈은 외지 사람들이 가져가잖아요. 원주민이 농사용 트랙터를 끌고 가려 해도 렌터카가 먼저 길을 점령합니다. 주민들이 환장하지요.” 그는 “월정리에서 가장 잘못된 점은, 마을 주민과 장사하는 사람이 남남이라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카페 주인들이 나빠요. 마을에 불편 끼치며 돈을 벌었으면, 마을 사람에게 되돌려줄 생각을 해야 하잖아요. 언젠가는 월정리 사람들의 분노가 폭발할 겁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건물이 들어섰지만 월정리 인구는 700명으로, 5년 전과 비교해 전혀 늘어나지 않았다. 다른 마을에서 출퇴근하며 월정리에서 장사만 하는 사람이 많은 탓이다. 월정리 근처 하도리와 세화리 인구가 같은 기간 각각 500명, 300명 늘어난 것과도 비교된다. 제주에서 해양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임형묵 ‘깅이와 바당’ 대표는 “월정리와 서울 홍익대 앞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강조했다. “월정리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시골마을이잖아요. 카페촌 막개발로 마을 공동체가 깨지고 있어요.”
김의근 제주국제대 교수(관광경영학)는 “관광지에 수용력을 넘어서는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지역주민이 관광객과 관광에 분노하는 세계적인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과잉관광) 현상이 이제 제주의 일부 관광지에서도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 관광객이 500만 명을 처음 넘어선 2005년엔 제주도민(당시 55만 명)의 일상생활에 끼친 영향이 7%에 불과했으나, 1500만 명이 찾은 2016년에는 그 영향이 30%에 이른 것으로 김 교수는 추정했다. 관광객 수가 많고 체류일이 길수록 관광객이 주민의 일상생활에 끼치는 영향은 커진다.
제주도민 67만 명, 관광객 연간 1500만 명
제주시 봉개동 소각장에서 태우지 못해 쌓아둔 5만t 규모의 압축쓰레기가 거대한 ‘쓰레기산성’을 이루고 있다.
6월19일 <한겨레21> 취재진이 찾은 제주시 봉개동의 쓰레기 소각장. 하얀 비닐로 포장된 1t 무게의 압축쓰레기 뭉치 5만여 개가 거대한 ‘눈산’을 이루고 있었다. 문상빈 제주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은 이를 ‘쓰레기산성’이라 표현했다. 봉개동 소각장의 하루 처리량이 180t에 불과한데,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많은 쓰레기가 날마다 쏟아져 들어오기 때문이다. 봉개동 매립장 관계자는 “소각장에 넣을 수 없어 매일 80t의 압축쓰레기를 추가로 쌓는다”고 했다. 이영웅 제주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봉개동 소각장은 이미 2016년 5월 사용 종료됐는데, 올해 5월까지 억지로 2년 연장해 가동하고 있다”면서 “관광객과 주민은 급증하는데 행정이 미리 대비하지 못해 쓰레기 대란을 일으킨 것”이라고 비판했다. 2015년부터 쌓기 시작한 쓰레기산성은 지난해 3만t을 넘어섰고, 최근 1년 사이 2만t이 더 불어났다.
제주시는 압축쓰레기를 t당 12만원씩 예산을 들여, 충북 제천 주변 시멘트공장에 연료용으로 내보낸다. 최근 1년 동안 육지로 내보내지 못하면서 쓰레기산성이 더 넓어지고 높아졌다. 예산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제주시는 이미 쌓인 쓰레기산성을 없애는 데만도 60억원을 들여야 한다. 소각장 사정만 이런 게 아니다. 올해 말이면 매립용 쓰레기를 묻을 공간도 동난다. 제주도 쪽은 “내년 10월 구좌읍 동복리에 500t 규모 소각장이 들어서면 당분간 쓰레기 문제는 해결될 것”이라고 설명한다. 새 매립장은 내년 2월부터 먼저 가동할 예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제주환경운동연합의 이 사무국장은 “관광객과 주민이 급증하는 것인데, 소각장 증설만으론 장기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면서 “쓰레기 배출량을 줄이고, 일회용 제품 환경세를 도입하고, 관광객 유입을 조절하는 등 근본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수 처리도 골치를 썩인다. 임형묵 대표는 “지금도 비 온 다음날 도두동 바닷가를 나가보면, 덜 처리된 똥물이 멀리 검은 띠를 이루며 쏟아져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아쉽게도 <한겨레21>이 취재한 6월18~20일 사흘 사이에 ‘검은 띠’를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다.
환경수용력 경시한 관광정책
제주시 앞바다로 ‘똥물’을 쏟아낸다는 사실이 처음 알려진 것은 2016년이었다. 어부들이 냄새 지독한 배출 현장을 처음 목격했고, <시사매거진 2580>(MBC)에서 그 사실을 보도해 큰 파장을 일으켰다. 바닷속을 촬영한 결과, 제주공항 북쪽 도두동 바닷가의 제주하수처리장에서 3~4㎞ 길이의 관로로 오염물질을 뿜어내고 있었다.
홍영철 제주참여환경연대 대표는 “도두동 하수처리장의 하루 처리용량이 13만t에 불과해, 빗물이 섞여 하수량이 불어나는 장마철이면 처리용량을 초과하는 날이 적잖다”고 했다. 실제로, 2017년 6월의 경우 하루 하수유입량이 13만t을 넘은 날이 나흘이나 됐으며, 연중 가장 많게는 16만t 이상 쏟아져 들어온 날도 있었다. 그런 날이면 하수를 덜 처리한 채 바다로 배출하지 않을 방도가 없는 것이다. 제주도는 2020년까지 도두동 하수처리장 용량을 하루 16만t까지 늘리고 2035년까지 22만t으로 추가 확충한다는 계획을 6월 초에 발표했다. 관광객이 늘수록 처리해야 할 하수 또한 늘어난다. 홍 대표는 “하수처리장 용량 증설도 때늦었지만, 이제는 제주라는 섬이 감당할 수 있는 환경수용력을 초과했는지 엄정하게 돌아보는 정책의 대전환을 이뤄야 한다”고 지적했다.
제주의 자연을 더럽히는 것은 사람 똥만이 아니다. 1500만 관광객이 먹는 돼지가 쏟아내는 똥도 한몫한다. 제주도가 지난해 10월 296곳의 양돈 농가를 전수조사했더니 도내에서 사육하는 전체 돼지가 하루에 배출하는 똥의 총량이 2846t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됐다. 이는 양돈농가와 자원화시설 등에서 처리할 수 있는 하루 총량 2591만t보다 255t이나 많은 양이다. 그만큼의 막대한 돼지 똥이 제주 청정 자연 어딘가로 날마다 버려졌을 가능성이 크다.
취재기자는 월요일인 6월18일 오후 4시40분 제주대학 캠퍼스에서 삼도1동 아스타호텔까지 렌터카로 달렸다. 교통 혼잡을 피한 평일 시간이었다. 내비게이션의 예측 도착 시간은 4시50분이었다. 하지만 정확히 5시30분에 도착했다. 불과 9.4㎞를 달리는데 50분이나 걸렸다. 한 택시 운전사는 “최근 3~4년 사이 신제주 쪽 사정이 많이 나빠져 만성적 혼잡으로 ‘교통지옥’이 됐다”고 했다. 신제주의 교통 사정은 이미 서울 강남의 교통 혼잡과 비슷했다.
이서현 미국 플로리다주립대 객원연구원은 지난해 12월 제주언론학회에서 발표한 ‘제주관광의 질적 성장을 위한 언론보도 방향 연구’에서 “제주 곳곳에서 오버투어리즘의 전조 현상이 보인다”면서 “제주의 관광산업이 진정 제주 지역 주민들의 삶에 기여하고 있는지, 더 본질적인 관점에서 제주 관광을 들여다볼 때가 됐다”고 제안했다.
제주관광공사에서 지난해 말 발표한 ‘제주관광 수용력 연구’ 보고서도 주목받는다. 제주가 물리적·심리적·경제적으로 관광객을 얼마나 수용할 수 있는지 처음 조사한 연구 결과다. 보수적으로 판단할 때 관광객이 1990만 명 이상이면 경제적 비효율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면 관광객이 많아질수록 오히려 경제적 손실이 커진다는 뜻이다. 가장 긍정적으로 잡을 때도 2270만 명 이상이면 경제적 비효율이 나타나는 것으로 분석됐다. 도로 혼잡과 쓰레기·하수 증가로 제주도민이 불편을 겪는 심리적 비용도 연 45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싸구려 관광지가 될 것인가
이지훈 전 제주시장은 “투어리스티피케이션이 독일 베를린이나 스페인 마요르카 같은 먼 나라 사례가 아니라 제주에서, 월정리에서 벌어지고 있다”며 기존 정책을 일단 멈추고, 지속가능성을 기준으로 새로운 제주의 미래 대안을 돌아보고, 공직사회와 전문가뿐 아니라 주민들이 참여하는 해법 모색에 나서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몇천만 명의 관광객이 오면 제주가 잘살게 된다’는 식의 우상을 깨뜨리는 것부터 시작하자”고 말했다. 강영철 제주오션 대표는 “제주 바다는 한대·온대·난대가 만나는 보물단지”라며 “싸구려 관광지가 아니라 전세계 해양학자들이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하는 국제 해양과학도시로 제주를 키운다는 원대한 미래 비전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제주=글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관광객이 많아지고 땅값이 치솟았지만, 제주 청년들의 고용 사정은 ‘D학점’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관광산업의 급성장이 청년에게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이다.
지난 5월 한국은행 제주본부 지역경제세미나에서 고영우 한구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제주 청년층(20~34살)의 임금수준이 16개 시도 중 가장 낮고 저임금 일자리가 상대적으로 많다고 분석했다. 통계청의 2015년 지역별 고용조사 자료로 분석한 2015년 청년층 평균임금에서 제주는 월 175만5천원으로 전국 평균(202만7천원)보다 많이 낮았다. 반면 저임금 노동자 비중은 24.4%로 전국 평균(20.5%)보다 훨씬 높았다. 청년들의 상용노동자 비중도 62.1%로 전국 평균(67.6%)보다 눈에 띄게 낮았다. 임금수준이 낮은 서비스업 편중이 심하다는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됐다.
또, 제주의 대졸자들이 첫 직장을 육지에서 구할 경우 제주에 남을 때보다 월 31만5천원 더 받을 수 있는 것으로 기대됐다. 조장희 제주대 교수(경제학)는 “저임금 현상이 지속될 경우 제주 청년인구의 외부 유출이 본격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강은정 박사의 제주시 구좌읍 서비스산업 현황 조사에서는 최근 월정리 등지의 관광객이 급증하는 동안 양질의 일자리가 오히려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임금수준이 낮은 음식·숙박 종사자가 2012년 553명에서 1454명으로 900명 이상 크게 늘어난 반면, 나머지 출판·교육·보건·예술스포츠 서비스 분야 종사자는 감소세를 나타냈다.
제주 지역 총 관광수입은 2015년 4조7천억원으로 도내 총산출액의 17%를 차지한다.
▷ 한겨레21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