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기준으로 국민연금 기금 규모는 약 621조원이며, 이 가운데 국내 주식에 투자한 금액은 약 131조원으로 우리나라 주식 시가총액 7%에 달한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이달 말 국민연금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자 수탁자 책임 원칙)’ 도입을 앞둔 가운데, 애초 논의하던 안보다 후퇴한 지침이 시행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란,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에게 맡겨진 투자금을 운용하는 과정에서 ‘수탁자’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하는 원칙으로, 기관투자자 역할을 주식 보유·의결권 행사에 한정하지 않고, 기업과 적극적인 대화를 통해 기업 가치를 끌어올리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11일 보건복지부 등이 마련한 스튜어드십 코드안에 따르면 금융위원회 해석에 따라 ‘경영참여’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은 주주권 행사는 하지 않기로 가닥을 잡았다. 재계 등에서 경영간섭 우려가 많으므로 경영참여로 볼 수 없는 주주권부터 우선 행사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사외이사·감사 후보 추천 이후 기업에서 이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주주 제안권을 행사한다든가, 의결권 위임장 대결(보유 주식 외 다른 주주로부터 의결권 위임받아 행사) 등은 도입되지 않을 전망이다.
지난 4월 기금운용위원회에 제출된 ‘국민연금 책임투자 스튜어드십 코드 연구용역 보고서’에는 수탁자 책임활동 이행 방안으로 ‘경영참여’ 주주권 행사도 포함돼 있었다. 보고서는 “국민연금이 경영권에 영향을 주기 위한 주주활동을 할 경우 지분 변동신고 등을 해야 한다”며 “평상시 단순 투자목적으로 신고하되, 주요 사안에 관해 영향력을 행사할 필요가 있을 경우 지분 보유목적을 ‘경영참여’로 변경 신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또 정부는 ‘기업 경영간섭, 국민연금의 과도한 영향력 우려 해소’를 이유로 국민연금이 자금을 위탁한 자산운용사에 의결권(주주권) 행사 위임을 추진한다. 올해 1분기 말 기준 국민연금은 약 131조원을 국내 주식에 투자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54%를 직접 운용하고, 나머지는 민간 자산운용사에 위탁 중이다. 국내 주식 투자 가운데 약 절반인 위탁자산에 대한 의결권을 국민연금이 모두 행사하는 대신 위탁운용사에 넘긴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수의 자산운용사가 상장사 주주총회에서 안건에 반대한 비율이 극히 낮은 등 여전히 거수기 구실을 하는 현실에서 이러한 제도 도입은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앞서 연구용역 보고서에서도 “위탁운용사에 대한 의결권 행사 위임은 시장 준비 등을 고려해 국민연금이 직접 의결권 행사하거나 엄격한 선정·관리·감독을 전제로 일부 위탁 유형에 한정해 의결권 행사를 위임하되 중장기적으로 범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돼 있다.
이날 경제개혁연대는 논평을 내어 “정부는 국민연금 국내 주식 투자 가운데 절반인 위탁자산에 대한 의결권을 민간 자산운용사에 넘기는 것을 추진하고 있지만, 각종 이해관계로 재벌 입김에 취약하며 국민연금에 견줘 외부 감시를 덜 받는 민간 위탁운용사는 독립적 의결권 행사가 쉽지 않은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국민연금을 정치·경제 권력으로부터 안전하게 지키고 주주권 행사 강화로 건전한 시장질서를 확립할 것을 약속했다. 재계가 경영간섭을 우려하며 주주권 행사 범위를 제한하려는 것은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형해화시키겠다는 의도”라고 비판했다.
복지부는 오는 17일 공청회를 통해 의견을 수렴한 뒤, 26일이나 27일 열릴 예정인 기금운용위원회에서 스튜어드십 코드안을 심의·의결하고 시행할 예정이다.
박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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