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저녁 청와대 인근에서 아시아나와 대한항공 직원들이 총수 및 경영진 규탄 문화제를 열고 촛불을 들어보이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양대 항공사의 직원들이 모여 ‘갑질근절’과 ‘경영진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갑질 논란’, ‘기내식 논란’ 등에 휩싸인 두 항공사의 직원들이 공동으로 집회를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한항공직원연대와 아시아나항공직원연대는 14일 저녁 7시부터 서울 종로구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갑질격파 문화제’를 열었다. 직원연대 쪽은 공동으로 집회를 열게 된 취지에 대해 “항공재벌의 갑질과 범죄행위의 가장 큰 피해자는 항공노동자들이었고, 부당한 지시를 거부하지 못하는 조직문화가 승객들의 안전도 위협할 수 있다”면서 “오늘 양대항공사의 노동자들은 서로의 고통이 다르지 않음을 확인해 함께 ‘우리의 문제’ 해결을 위한 첫걸음을 내딛는다”고 밝혔다.
이날 집회의 참가자 300여명(주최쪽 추산)은 가면과 선글라스, 마스크 등으로 얼굴을 가린 채 ‘침묵하지 말자, 우리가 바꾸자 아시아나’, ‘조씨 일가 물러나라’ 등의 내용이 적힌 손팻말을 들었다. 승무복을 입고 집회에 참석한 대한항공 소속의 한 직원은 “직원들을 인간으로 대하지 않는 기업총수가 제대로 된 경영을 하지 않아 항공사의 이미지를 깎아먹는 것을 참지 못해 이 자리에 왔다”면서 “총수 일가의 그릇된 행동으로 직원들이 피해를 보는 것을 이젠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
‘갑질 어디까지 당해봤니?’,‘너는 나다’ 등의 제목으로 진행된 이날 집회에서는 두 항공사의 직원들이 얼굴을 가리고 무대에 올라 자신의 경험담을 나눴다. 발언에 나선 심규덕 아시아나항공 노조위원장은 “경영진이 기내식 대란을 정상화했다고 주장했지만 회사는 어제야 기내식 태스크포스를 구성했다”고 꼬집으며 “대한항공 직원연대는 조 회장의 구속을, 아시아나항공 연대는 박 회장의 퇴진을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항공 소속의 한 정비사는 다른 직원의 대독을 통해 “직원연대 활동에 참여하다 신상이 드러나 지방으로 인사발령 받았다”고 주장했다.
아시아나 항공의 지상여객서비스를 담당하는 자회사의 직원도 연대발언에 나섰다. 문혜진 아시아나 지상여객서비스 노조지부장은 “아시아나 직원들을 부서 별, 업무 별로 조각낸 것이 우리가 단합하는 걸 두려워 낸 꼼수가 아닐까 생각한다”며 “왜 진작 나서지 않았을까, 일이 터지기 전에는 침묵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발언한 뒤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14일 저녁 청와대 인근에서 아시아나와 대한항공 직원들이 총수 및 경영진 규탄 문화제를 열고 종이비행기를 날리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집회가 끝날 무렵에는 참가자들이 총수 일가 퇴진 등을 요구하는 내용의 편지로 종이 비행기를 접어 청와대 방향으로 날리는 퍼포먼스도 있었다. 무대에 오른 대한항공 박창진 사무장은 “사람이 먼저라고 말한 문재인 대통령이 우리 두 항공사 직원들의 고충과 안타까운 사연을 듣고 나라의 제일 큰 어른으로서 한마디 해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글 임재우·사진 박종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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