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 치앙라이 탐루앙 동굴에서 무사 귀환한 유소년 축구팀 ‘무빠’(멧돼지)의 소년들이 18일(현지시각) 주 정부가 마련한 처음이자 마지막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채널 뉴스아시아 화면 갈무리.
“영국에서 온 사람이 우리를 구하러 왔다니 믿을 수가 없었고 놀랐어요. 그날 저녁 우리는 동굴 안의 바위를 긁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어요.”
“모두에게 (이 상황에) 맞서 싸우자고, 절망하지 말자고 했습니다.”
타이 치앙라이 탐루앙 동굴에 최장 17일 동안 갇혔다가 기적적으로 생환한 13명의 유소년 축구팀 선수와 코치가 지난 18일(이하 현지시각) 치앙라이 주 정부가 마련한 기자회견장에서 한 이야기입니다.
이 자리에서 안전하게 구조된 소년들의 건강 상태만큼이나 눈길을 끈 게 있었습니다. 바로 이 자리를 마련한 타이 정부의 대응입니다. 타이 정부는 소년들의 안정과 회복을 위해 이들이 전원 구조된 지 8일 만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소년들이 계속해서 언론의 관심 속에 부담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기 때문에 한 차례 회견으로 상황을 정리해준 겁니다. 타이 정부는 기자회견 방법에서도 세심한 배려를 보였는데요. 인터뷰 전에 사전 질문을 받고, 트라우마를 불러올 수 있는 질문은 걸러냈으며, 질문의 기회도 전문가를 거쳐서 간접적으로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화제를 모았습니다.
태국 유소년축구팀 선수와 코치 13명이 기적처럼 생환하자 현지 예술가들과 네티즌이 만화와 그림으로 환희와 감격의 구조 드라마를 표현하고 있다. 사진은 태국 동굴실종 전과정을 묘사한 만화. 페이스북 갈무리
이번 과정에서 13명 전원 구조의 가능성을 예상한 이들은 많지 않았을 겁니다. 다양한 구조 경험과 체계적 재난 매뉴얼, 세계 최신의 구조 장비를 갖춘 선진국이 아니어서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타이 정부가 보여준 침착한 대응은 전 세계에 커다란 교훈을 주었습니다. 특히 세월호 참사라는 아픔을 겪은 한국 사회가 배울 점은 더 많았습니다. 타이 정부가 이번 구조에서 보여준 대응 과정에서 배울 점을 정리해봤습니다.
타이 동굴 소년 사건일지 (현지 시간 기준 )
6월 23일 유소년 축구팀 13명 , 타이 북부 치앙라이 미차이 지구 탐루앙 동굴에 갇힘 . 수색 시작
7월 2일 13명 생존 확인
7월 3일 타이 정부 , 배수펌프로 물을 빼내고 아이들에게 잠수 훈련을 시킨 뒤 구조한다는 계획 발표 .
7월 6일 구조 작업 참여한 전직 해군 네이비실 대원 사망
7월 8일 구조 시작
7월 10일 13명 전원 구조 후 병원 이송
7월 18일 소년들 , 처음이자 마지막 공식 언론 인터뷰
우리가 아프게 기억하다시피, 세월호 참사 당시 한국 정부의 대응은 한마디로 우왕좌왕이었습니다. 침몰 당일 대통령은 7시간 동안 무엇을 했는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뒤늦게 나타나 엉뚱한 질문을 했습니다. 구조 과정에서 민간 구난업체 언딘 외에 다른 구조 전문가들의 역할은 배제되고 있다는 목소리도 터져 나왔지요. 정작 언딘의 김윤상 대표는 2016년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3차 청문회에서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민간을 동원하되 컨트롤타워가 있어야 한다. 정부가 책임지고 해야 한다
”고 지적했습니다. 정부가 구조 과정의 중심이 되어 지휘하지 않았다는 비판이었습니다.
타이 정부는 달랐습니다. 외국인 전문가들의 참여를 적극 환영하는 한편, 다양한 인력들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습니다. 이번 구조를 지휘한 나롱삭 오소타나꼰 전 치앙라이 지사는 약 1만 명이 구조에 참여했다고 밝혔습니다. 1만명을 지휘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텐데 치앙라이 지사는 현장을 지키며 상황을 조율합니다.
탐루앙 동굴 안에서 구조대가 이동하고 있다. 일론 머스크 트위터 갈무리
이에 국외 전문가들도 속속 합류했습니다. 미군 인도 태평양 사령부 소속 구조대원 30여명, 영국의 동굴 전문 잠수사도 수색작전 지휘부에 동참합니다. 특히 영국 잠수사 스탠턴과 볼란선은 유럽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동굴 잠수사입니다. 이들은 프랑스 동굴에서 물속 70m 아래까지 들어가 10㎞를 헤엄치고 무려 36시간 동안 물속에서 지냈고, 잠수병에 걸리지 않기 위한 감압을 20시간 동안 하는 등의 전설적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데요. 실제 이들이 지난 2일 최초로 동굴 내에서 가장 큰 공간인 파타야 비치 근처에서 소년들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타이 정부가 통상 외교 관리에게 주는 면책특권까지 약속하며 발 빠르게 국외 전문가를 데려온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돈 쁘라맛위나이 타이 외교부 장관은 호주 의사 리처드 해리스와 2명의 보조 인력을 초청하면서
“그들에게 외교관 면책특권을 줬다
”고 밝혔습니다. 잠수하는 의사로 알려진 해리스 박사가 임무에 최선을 다하더라도 일이 잘못됐을 경우 보호가 필요하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외교관 면책특권은 외교 관계에 관한 빈 협약에 따라 자국에 파견된 외교 관리의 신분 안정을 목적으로 민사 및 형사 관할권을 행사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조대원들이 지난 4일 동굴 안의 물을 빼낼 호스를 나르고 있다. 치앙라이/ AP 연합뉴스
어려운 과정이었지만 과정은 신속하면서도 침착했습니다. 2일 소년들의 생존을 확인한 카니 정부는 다음날 구조 계획을 발표합니다. 다시 큰비가 내려 동굴 안의 수위가 높아지기 전에 입구를 통해 구조를 시도하되 배수펌프로 최대한 동굴 안의 물을 빼낸다는 것이었습니다. 불가피하게 잠수를 해야 할 상황에 대비해 생존자들에게 간단한 잠수 훈련을 시키는 준비도 빼놓지 않았죠. 타이 정부는 영국인 잠수사 등을 통해 소년들에게 음식을 제공했습니다. 구조 전 육체적, 정신적으로 회복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구조 순위도 이들의 건강을 고려해 정해졌습니다. 소년들이 발견된 2일부터 전원 구조될 때까지 8일간 건강을 돌본 호주인 의사 리처드 해리스가 구조 순위를 정했습니다. 구조 당국은 해리스의 판단에 따라 구조 첫날인 8일과 9일에 각각 4명씩 구조했고, 10일에는 나머지 5명을 한꺼번에 동굴 밖으로 데리고 나왔습니다.
동굴 내 수로의 수위와 날씨를 고려해 지난 8일 구조가 시작됐는데요. 소년들이 고립된 파타야 비치는 총연장 10㎞에 달하는 동굴의 가장 안쪽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이곳까지 가려면 동굴 입구에서 직선으로 3㎞를 이동한 뒤,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2.5㎞가량을 더 들어가야 하지요. 계속된 비로 동굴 내부가 물로 가득 차 있는 상태여서 걸어서 이동은 불가능했습니다. 소년 1인당 2명의 다이버와 함께 차례로 구조하기로 계획을 세웁니다. 내·외국인 최정예 다이버 18명이 참가했습니다.
정부는 또 보도 경쟁에 내몰린 취재진에게 양해를 구합니다. 구조 공간 확보를 위해 관련 없는 사람들은 즉시 동굴 주변에서 떠나 달라는 소개령을 내린 것이죠. 아마, 심신이 약해진 소년들이 동굴 밖으로 나왔을 때 갑작스러운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고서 충격받을 것을 염려했을 겁니다. 동굴 밖으로는 긴급 구호차 13대, 입구에서 5㎞ 떨어진 곳에는 4대의 응급환자 이송용 헬기도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병원에도 별도의 의료진이 대기했고요.
구조 이후의 과정도 아름다웠습니다. 타이 정부가 ‘동굴의 기적’을 만드는 데 헌신한 국외 자원봉사자들을 극진히 예우한 것이죠. 최장 17일 동안 구조에 헌신한 국외 자원봉사자는 100여명이었습니다. 타이 왕실과 외무부, 체육관광부는 구조 작업 뒤 타이에 더 머물고 싶은 이들을 위해 치앙라이와 수도 방콕을 무료로 여행할 수 있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지난 18일 기적의 주인공 13명이 드디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기자회견장에 나타납니다. 가족과 구조 작업에 참여한 네이비실 대원, 이들을 치료한 의사와 심리치료사 등이 동참했습니다. 쁘라쫀 쁘랏사꾼 타이 치앙라이 지사는
“전 세계에서 (동굴구조 취재를 위해) 온 기자들에게 13명의 생존자를 인터뷰할 기회를 주기 위해 기자회견을 마련했다
”고 말합니다. 그러나 소년들이 겪을 수 있는 트라우마를 고려해 사전 질문을 받고 기자가 아닌 진행자만이 질문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생존자들은 이날 공식 인터뷰 후 다시는 언론 접촉을 하지 않기로 합의해 놓은 상황이었습니다. 치앙라이 지사는 이런 합의를 깨고 생존자들과 가족의 생활을 방해하는 경우 아동보호법에 따라 기소될 수 있다고 강력히 경고했습니다.
이제 전 세계에 기적과 감동의 순간을 전한 타이 동굴 소년들은 각자의 집으로, 어머니와 아버지의 품으로, 친구들에게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돌아봅니다. 아름다운 생환의 순간을 만들어 낸 구조 참가자 1만여명의 헌신과 이들의 수고를 조율한 타이 정부의 침착한 대응을요. 그러면서 동시에 한국 사회가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할 점이 많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박유리 기자
nopimul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