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에서 특수활동비를 상납받고 옛 새누리당의 선거 공천 과정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1심 선고가 20일 오후 서울 서초동 법원종합청사 형사대법정 417호에서 열리고 있다. 재판장 성창호 부장판사와 강명중 판사, 이승엽 판사가 재판정에 입장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지난해 10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재판부에 대한 믿음이 더는 의미 없다”며 국정농단 사건 재판 거부를 선언한 직후, 검찰은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뇌물 상납’ 카드를 꺼내 들었다. 검찰은 “국정원을 지휘·감독하는 청와대가 돈을 받았다면 뇌물죄 적용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처음부터 ‘뇌물 사건’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여야 정치권은 ‘국정원 특활비 상납 관행’을 두고 진실공방을 벌였지만, 그사이 검찰은 박 전 대통령과 남재준·이병기·이병호 전 국정원장, 이원종 전 대통령 비서실장, 조윤선·현기환·김재원 전 정무수석, 이재만·안봉근·정호성 전 청와대 비서관, 이헌수 전 국정원 기획조정실장 등 13명을 무더기로 재판에 넘겼다.
20일 “뇌물로 볼 수 없다”는 박 전 대통령 사건 1심 재판부의 유무죄 판단은 일찌감치 윤곽이 나온 상태였다. 박 전 대통령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32부(재판장 성창호)가 지난달 박 전 대통령에게 특별사업비를 상납한 혐의로 기소된 국정원장 3인방 1심 선고에서 ‘국고손실 유죄, 뇌물공여 무죄’라는 판단을 내놓은 바 있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 재임 시절 전달된 특별사업비는 남 전 원장 6억원, 이병기 전 원장 8억원, 이병호 전 원장 22억5천만원이다. 재판부는 이날 “약 1조원 정도인 국정원 연간 예산 전액이 특수활동비로 편성돼 있고, 그중 국정원장 특별사업비는 연간 40억원이다. 이는 국정원의 직무인 대공, 대정부전복, 방첩, 대테러 정보 수집 등에 한정해 써야 한다”고 전제한 뒤 “특별사업비 전달 관련자들 모두 ‘문제되는 행위’라고 인식하고 있었던 점에 비춰 피고인(박 전 대통령) 역시 위법성을 인식했을 것으로 본다”며 국고손실 혐의에 유죄를 선고했다.
반면 국정원장 3인방의 ‘뇌물공여’ 혐의 무죄선고 논리에 따라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의 ‘뇌물수수’ 혐의에도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전에도 청와대에 국정원 자금을 전달하는 관행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국정원 자금을 청와대 특수활동비에 준해 관리하라는 지시가 있었던 점 △은밀함이 요구되는 통상적인 뇌물 지급방식과 비교할 때 매월 5천만~1억원씩 정기적으로 나눠 지급된 점 △국정원장 임명에 대한 보답으로 보기 어렵다는 점을 들어 “뇌물로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특히 재판부는 검찰이 뇌물로 판단한 강력한 근거인 기치료 비용, 의상비, 사저 관리비 등 박 전 대통령의 ‘사적 사용’에 대해서도 “피고인이 처음부터 사적 용도로 사용할 의사로 특별사업비 지급을 요구했다는 점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 사후에 어디에 사용했는지는 뇌물죄 성립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밝혔다.
“최순실이 이 뇌물을 관리한 정황도 있다. 국정원을 사금고로 전락시켰다”며 박 전 대통령에게 징역 12년을 구형했던 검찰은 항소 뜻을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대통령을 단순 보조하는 비서실 직원(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 안봉근 전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이 국정원장으로부터 받은 소액의 돈은 뇌물이라고 하면서, 대통령이 직접 지휘관계에 있는 국정원장으로부터 받은 수십억원은 뇌물이 아니라는 1심 선고를 수긍하기 어렵다”고 했다. 같은 재판부가 지난달 이병기 전 원장이 조 전 수석에게 전달한 특별사업비를 ‘뇌물’이라고 판단한 점을 짚은 것이다.
이날 오후 2시부터 생중계된 선고공판에서 성창호 재판장은 45분 동안 쉬지 않고 판결 이유를 읽어내려갔다. 조용하던 법정은 재판부가 징역 8년과 추징금 33억원을 선고하자 술렁이기 시작했다.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인민재판” “촛불 재판” “이게 법이냐”라고 소리를 질렀다.
한편, 이날 오전 서울고법 형사4부(재판장 김문석) 심리로 열린 박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건 항소심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1심과 마찬가지로 징역 30년 및 벌금 1185억원을 구형했다. 지난 4월 1심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에게 징역 24년, 벌금 180억원을 선고했다.
김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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