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월31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교육부에서 역사교과서 최종본이 공개되고 있다. 세종/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새 역사교과서에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 대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민주주의’라는 표현이 함께 쓰일 것으로 보인다. 이는 교육부가 ‘민주주의’ 서술 방식을 집필기준 최종 결정 단계에서 뒤집은 것이어서, 핵심 쟁점을 일방 처리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22일 국회 교육위원회와 교육계 안팎의 말을 종합하면, 교육부는 지난 20일 교육과정평가심의회 운영위원회에서 새 역사교과서의 ‘민주주의’ 관련 서술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민주주의’로 두루 표현하도록 집필기준 최종 심의안을 수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지난 5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자유민주주의’를 ‘민주주의’로 대체하는 역사교과서 집필기준 시안을 냈는데, 교육부가 최종안에서 이를 일부 손본 것이다. 기존 집필기준에서 논란이 컸던 ‘자유민주주의’라는 표현을, 헌법 전문에 나오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정치적 편향성을 최소화한 ‘민주주의’라는 용어로 대체해 섞어 쓸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와 관련한 헌법적 가치를 교과서에 포함하는 한편 ‘자유민주주의’라는 표현에 대한 찬반 의견도 널리 반영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편향된 ‘한가지 시각’을 가르치려 했던 국정 역사교과서의 잘못을 개선하겠다는 취지도 반영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교육과정평가원이 지난해 8월부터 7개월여에 걸쳐 공청회와 역사학계 자문 등을 통해 마련한 집필기준 시안의 핵심을 교육부가 일방적으로 손본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심의안이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결재로 확정되면 26일 관보 게재를 거쳐 이달 말 확정·고시된다. 교육부는 심의안 변경 내용을 오는 25일 언론을 통해 공개한다는 방침이다. 정부가 막판에 뒤집은 ‘절충안’을 학계가 재평가할 겨를도 없이 최종 확정되는 셈이다.
심의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외부 입김’이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도 나온다. 지난 5월 교육과정평가원은 시안을 공개하면서 “대다수 역대 역사교과서와 현행 다른 과목 교과서들이 ‘민주주의’를 써왔고, 학계와 교육계에서도 ‘자유민주주의’라는 표현을 수정해야 한다는 요구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보수단체를 중심으로 “헌법에 명시된 ‘자유’라는 표현을 교과서에 싣는 게 당연하다”는 반발이 강했고, 지난 2월엔 이낙연 총리가 대정부질문 답변에서 ‘자유민주주의’를 ‘민주주의’로 대체하는 문제를 두고 “연구진 개인 의견”이라거나 “동의하지 않는다. 총리가 동의하지 않으면 정부 입장이 아닌 것”이라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하기도 했다. 한 역사학과 교수는 “교육부가 학계와 교육 현장의 목소리를 도외시한 채, 새 교과서 집필기준의 핵심 내용을 바꾸는 게 이전 정부가 국정 역사교과서를 추진하던 태도와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홍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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