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이태원 살인사건’ 피해자 조중필씨의 어머니 이복수씨가 서울 서초구 법원종합청사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범인들 미국으로 가고 어떻게든 법정에 세우려고 21년을 쫓아다녔어요. ‘중필이 한을 풀어야겠다, 중필이 죽인 놈을 법정에 세워서 처벌받게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집도 팔고 퇴직금이고 뭐고 다 썼어요. 검사가 범인을 제때 잡았어도 그럴 일이 없었을 텐데….”
‘이태원 살인사건’ 피해자 조중필씨의 어머니 이복수씨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26일 이태원 살인사건’ 피해자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법원이 국가 배상책임을 일부 인정한 뒤다. 이날 서울중앙지법 민사48부(재판장 오상용)는 “피고 대한민국의 원고들에 대한 국가 배상 책임을 인정한다. 국가는 유족에게 모두 3억 6천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사건 발생 당시 최초 수사를 담당한 검사의 부실 수사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최초 수사를 맡은 담당 검사의 판단은 당시 상황과 수집된 자료들에 비춰볼 때 현저하게 불합리하거나 경험칙·논리칙상 도저히 합리성을 긍정할 수 없는 정도”라며 “수사기관의 행위는 유족의 인격적 법익을 침해했다”고 밝혔다. 다만, 재판부는 ‘검찰이 적절한 시기에 패터슨에 대한 범죄인 인도청구를 하지 않았다’는 유족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태원 살인사건’은 지난 1997년 4월 3일 밤 10시께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햄버거 가게 화장실에서 대학생 조중필(당시 22살)씨가 흉기에 찔려 숨진 사건이다. 당시 미국인 아더 존 패터슨(38)과 에드워드 건 리(38) 등 두 명이 혐의자로 지목됐다. 검찰은 리의 단독 범행으로 판단해 살인 혐의로 기소했다. 서로를 범인으로 지목하는 둘의 진술 중 한 명의 진술은 사실일 것으로 속단해 ‘둘 중 한 명이 조씨를 살해하고 나머지 사람은 목격한 것’이라 규정한 것이다. 리는 증거불충분으로 최종 무죄를 선고받았다. 패터슨은 증거인멸 등의 혐의로 기소돼 장기 1년 6개월·단기 1년형을 선고받고 8·15특별사면으로 석방된 뒤 1999년 검찰이 출국정지 기간을 연장하지 않은 틈을 타 미국으로 출국했다. 2011년 검찰은 재수사 끝에 패터슨을 살인 혐의로 기소했다. 2015년 1심 재판부는 “생면부지의 피해자를 별다른 이유 없이 살해해 죄질이 나쁘다”며 징역 20년을 선고해 지난해 1월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됐다. 당시 재판부는 리도 공범으로 판단했지만 일사부재리의 원칙(같은 범죄에 대해 두 번 처벌할 수 없다는 원칙)에 따라 처벌하지 못 했다.
유족은 2006년 국가를 상대로 한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끝에 3천만원을 배상받았다. 지난해 유족은 “해당 재판은 출국정지 기간을 연장하지 않은 검찰의 과실만을 판단한 것”이라며 “수사기관의 위법한 직무집행으로 인한 유족의 정신적 손해를 배상하라”고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유족과 유족의 소송대리를 맡은 변호인측은 국가의 배상책임이 일부 인정됐음에 환영의 뜻을 밝히면서도 손해배상 금액이 적게 산정된 점을 지적했다. 이씨와 이씨의 남편은 각 5억, 조씨의 누나 세 명은 각 3천만원씩 모두 10억 9천만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지만 재판부는 피해자의 부모 각 1억5천만원, 조씨의 누나 각 2천만원씩만을 손해배상금으로 산정했다.
이씨는 법원종합청사를 떠나며 말했다. “검사든 판사든 법으로 범인을 똑바로 가려내서 우리 같은 국민이 어려운 일 힘든 일 당하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다녀보니까 너무 엉터리 같아. 우리같이 힘없는 사람들은 진짜로 힘들어요. 바윗돌에 계란 던지면 깨지는 것처럼요.” 글·사진 고한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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