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서울 마포구 문화비축기지에서 열린 베트남전쟁 당시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평화법정’에 원고 응우옌티탄(앞줄 왼쪽과 오른쪽·동명이인)이 참석해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베트남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에 가담한 한국군을 조사한 신문조서가 50년 가까이 국가정보원에 보관된 정황이 재판을 통해 처음으로 확인됐다. 법원은 국정원에 관련 문건 목록을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재판장 김용철)는 27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이 국정원을 상대로 낸 정보공개 소송에서 “중앙정보부는 1972년 8월14일 ‘퐁니 사건’ 관련자들을 조사한 문서들을 마이크로필름 형태로 보관하기 위해 촬영했다. 그 문건 목록이 존재하는 사실이 인정된다”며 이같이 밝혔다.
‘퐁니·퐁넛 민간인학살 사건’은 1968년 2월 12일 베트남전쟁에 투입된 한국군 청룡부대(해병제2여단)가 베트남 중부 꽝남성의 퐁니·퐁넛마을 주민 74명을 살해한 사건이다. 당시 참전군인인 최영언 중위(당시 해병 포항상륙전기지사령부 훈련 교장관리대 사격장 보좌관), 이상우 중위(경남 진해 해병학교 구대장), 김기동 중위(포항 파월특수교육대 근무) 등 3명은 2000년 5월 <한겨레21>을 통해 ‘1969년 중앙정보부에서 민간인학살 사건 조사를 받았다’고 최초 증언했다. 하지만 관련 증언에 정보당국은 침묵한 바 있다.
지난해 8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의 임재성 변호사는 국정원을 상대로 “최아무개 중위 등 3명을 조사한 뒤 작성한 중앙정보부의 문건 목록을 공개하라”는 정보공개 청구를 냈다. 하지만 국정원은 “해당 정보가 공개되면 국익을 해칠 우려가 있다”며 비공개 처분을 내렸다. 민변은 그해 11월 정보공개를 거부한 처분을 취소하라며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국정원에서 제출한 자료를 비공개 열람한 뒤, 학살 조사 문건 목록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18년 만에 확인했다.
재판부는 “해당 자료는 50년이 지난 사실에 대한 사료로서 의미를 가지고 있다”며 “역사적 사실 규명과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공식적인 사과와 책임 이행을 촉구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고 목록 공개 결정 이유를 설명했다. “외교 관계 등에 관한 사항으로 공개되면 국가의 이익을 해할 우려가 있다”는 국정원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이번 판결로 한국군을 조사한 ‘문건 목록’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확인된 만큼, 관련자들의 ‘신문조서 자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소송을 낸 임재성 변호사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이번 판결은 한국 정부가 가지고 있는 민간인학살 관련 자료를 공개하라는 최초의 법원 판단”이라며 “신문조서 자체도 남아있을 가능성이 큰 만큼, 마이크로필름 형태로 보관된 문건에 대해 추가로 정보공개를 청구하겠다”고 밝혔다.
임재성 변호사를 비롯한 민변의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태스크포스’(TF) 소속 변호사들은 베트남 피해자들과 함께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학살의 책임을 묻는 국가배상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4월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평화 법정’도 개최됐다. 1968년 퐁니·퐁넛 학살 사건의 생존자 등이 원고가 돼 대한민국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일종의 모의법정이다. 퐁니 마을의 주민이자 학살 생존자인 응우옌티탄(58)씨 등이 모의법정에 직접 참석해 “한국 참전군인들은 마을 주민들을 학살했다. 저와 같은 생존자들은 힘든 삶을 살아왔다”고 증언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월 베트남을 국빈방문해 “우리 마음에 남아있는 양국 간의 불행한 역사에 대해 유감의 뜻을 표한다”고 밝혔지만 한국 정부가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학살 사실을 인정하고 이에 대해 공식 사과한 적은 없다. 한국군은 1964년 9월부터 1972년까지 31만2천여명을 베트남에 파병했는데 이 기간 동안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학살은 80여건, 피해자 수는 9천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고한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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