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기준으로 국민연금 기금 규모는 약 621조원이며, 이 가운데 국내 주식에 투자한 금액은 약 131조원으로 우리나라 주식 시가총액 7%에 달한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30일 오전 서울 중구 더플라자 호텔에서 회의를 열어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최종 확정했다. 최대 쟁점의 하나인 ‘경영참여 주주권’은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 등 여건이 마련된 뒤 시행하되, 기금운용위 의결을 거치면 그 이전에라도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기금운용위원장)은 이날 회의에 앞서 “심각한 기업가치 훼손으로 국민의 소중한 자산에 피해를 주는 기업에 대해서는 국민연금이 주주가치 제고와 국민 이익을 위해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민연금이 5% 이상의 지분을 갖고 있는 국내 상장기업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276곳에 이른다. 이날 결정과 관련해 회의에 참석한 한 기금운용위원은 “경영참여 주주권에 대해 위원들 간 의견이 엇갈렸지만, 표결을 하기보다는 합의를 전제로 절충에 절충을 거듭해 정부안을 수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스튜어드십 코드란, 주인의 재산을 관리하는 집사(스튜어드)처럼 기관투자자로서 국민연금이 가입자 재산을 제대로 관리하기 위해 투자기업 의사 결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라는 국제적 지침이다.
이번 결정으로 국내 주요 기업의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범위는 과거에 견줘 넓어질 전망이다. 지금까지 국민연금은 경영진 전횡 등으로 기업가치가 훼손돼 손실이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주주권 행사에 소극적이었다. 주주총회 안건에 대한 찬반 의결권 행사, 배당성향(당기순이익 가운데 배당이 차지하는 비율)이 낮은 기업에 대한 비공개 대화, 명단 공개 정도만 해왔다.
일부 부도덕한 경영진을 겨냥한 주주권 행사의 구체적 이행방안도 나왔다. 먼저 내년부터는 경영진의 사익편취나 횡령·배임, 계열사 부당지원 등을 ‘중점관리 사안’으로 정하고 이사진 및 경영진 면담, 비공개 서한 발송 등을 통해 개선을 촉구한다는 방침이다. 내후년엔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 기업의 명단을 공개하고 공개서한을 발송할 수 있다. 그 가운데 특히 사안이 심각하다고 판단되면, 기금운용위 의결을 거쳐 해임 안건을 직접 제안하는 등 좀더 강한 주주권을 행사하는 것도 가능하다.
또한 국민연금은 올해 하반기부터 그동안 시민단체나 다른 주주들의 참여 요청에도 응하지 않았던 주주대표소송을 시행한다. 주주대표소송이란, 경영진의 불법 행위로 회사가 손해를 입었을 경우 주주가 해당 경영진을 상대로 회사에 배상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아울러 국민연금이 자금을 자산운용사에 위탁할 경우엔,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업체에 가점을 주기로 했다. 이러한 위탁 자산에 대한 의결권(주주권) 행사를 해당 운용사에 위임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다만, 다수의 자산운용사가 상장사 주총 안건에 반대한 비율이 극히 낮은 등 거수기에 머물고 있는 현실을 고려해 ‘의결권행사 위임 가이드라인’을 수립해 시행하고, 수익 제고 등에 반할 경우 위임한 의결권을 회수하도록 했다.
국민연금은 기금운용위 산하에 설치된 의결권전문위원회를 확대·개편한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를 신설할 예정이다. 가입자 대표가 추천한 전문가 14명으로 구성되는 수탁자책임전문위는 의결권과 주주권 행사, 책임투자 관련 주요 사항을 검토하고 결정하게 된다.
국민연금의 주주권이 강화된 만큼, 독립성·전문성·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한 기금운용체계 개편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최고의결기구인 기금운용위가 비상설·분기별 회의 체계로 운영되고 있어, 정부 입김에 취약한 구조라는 비판이 계속돼 왔다. 복지부는 현재 기금운용체계 개편안을 준비 중이다.
박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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