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계 지원 배제 명단’(블랙리스트) 작성과 실행을 지시한 혐의로 기소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지난해 7월2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 참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실형이 선고된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 관련자들이 속속 풀려나고 있다. 법정 구속기간이 끝날 때까지 대법원 재판이 마무리되지 않자 재판부가 석방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와 양승태 대법원의 ‘재판 거래’ 의혹이 커지는 상황이어서 ‘국정농단 사범’ 석방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박근혜 청와대’의 2인자로 군림했던 김기춘(79)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6일 새벽 0시 서울 동부구치소에서 풀려났다. 지난해 1월21일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과 실행을 지시한 혐의로 구속된 지 562일 만이다. 김 전 실장은 구치소 문을 나서자마자 자신의 석방을 반대하는 시민과 사회단체 회원 200여명을 맞닥뜨렸다. 구호와 욕설, 몸싸움 속에 김 전 실장을 태운 승용차는 앞 유리가 깨진 채 40여분 만에 구치소 앞을 벗어났다. 김 전 실장은 입을 다물었다.
앞서 지난 1월23일 서울고법은 김 전 실장에게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상고심 재판부인 대법원 2부(주심 조재연 대법관)는 지난 달 27일 김 전 비서실장의 구속취소를 결정했다. 대법원이 이날 블랙리스트 사건을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에 회부했는데, 통상적인 전원합의체 심리 기간을 고려하면 형사소송법이 정한 ‘구속재판 기간 6개월’을 넘어갈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서다. 형소법은 구속재판 기간을 1·2·3심 합쳐 최대 1년6개월까지 허용한다. 김 전 실장은 지난해 2월7일 1심 재판에 넘겨졌는데, 6일로 1년6개월을 꽉 채운 것이다. 훗날 대법원이 징역 4년의 원심을 확정하면, 김 전 실장은 다시 나머지 2년6개월의 수감생활을 해야 한다.
김 전 비서실장과 함께 재판을 받았던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과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구속기간이 끝나 지난달 28일과 29일 각각 대법원 결정으로 석방됐다. 지난 5월과 6월에는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이 각각 풀려났다. 같은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도 다음 달 22일이 구속 만기여서 풀려날 가능성이 있다. 조 전 장관은 지난해 1월 김 전 비서실장과 함께 구속됐으나 1심에서 집행유예로 석방된 뒤, 2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앞서 헌법재판소는 2001년 구속기간을 정해둔 형소법 조항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결정한 바 있다. “유죄가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부당한 구금 장기화로 인한 신체의 자유 등 인권침해를 막는 입법 목적이 인정된다”는 것이다.
김 전 실장 등을 기소했던 박영수 특검팀은 지난달 30일 “재판 장기화로 다수의 주요 구속 피고인이 재판이 종료되기도 전에 석방되고 있다. 이로 인한 다수 국민들의 심적 고통을 다시한번 생각할 때”라며 법원의 조속한 심리를 촉구했다.
한편,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해 국정농단 1심 재판에서 추가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오는 24일 항소심 선고를 앞둔 박 전 대통령은 검찰이 상고하면 대법원에서 2019년 4월16일까지 구속 재판이 가능하다. 김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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