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수송동 국세청에서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국세청 국정감사에서 이현동 청장이 의원들의 질문을 들으며 눈을 부비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국가정보원의 대북공작금을 받아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해외 비자금 뒷조사를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현동 전 국세청장에게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검찰은 “수긍하기 어려운 판단”이라며 항소할 뜻을 밝혔다.
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재판장 조의연)는 국고 손실, 뇌물 수수 혐의로 기소된 이현동 전 국세청장에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 전 청장이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 추적을 국정원의 ‘정당한 업무’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무죄 이유로 들었다. 이 전 청장이 원 전 국장의 정치적 의도를 어느 정도 짐작한 것으로 보이지만, 정치적 의도가 의심된다는 이유만으로 정보활동이 국정원의 직무 범위에서 완전히 배제된다고 볼 수 없다는 설명이다. 국가기관에 대한 국정원장의 협조 요청이 국가정보원법에 의해 허용된다는 점도 무죄 이유가 됐다. 재판부는 ‘당시 이 전 청장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정치적 의도를 파악하고 범행 전반에 적극 가담한 자료나 정황을 찾아보기 힘들다’며 원 전 원장과의 공모 관계도 인정하지 않았다.
국정원으로부터 협조 명목으로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도 “당사자 진술의 일관성이 떨어진다”며 무죄 판단을 받았다. 뇌물 공여자 뇌물 혐의를 뒷받침하는 김승연 전 대북공작국장, 박윤준 전 국세청 차장,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의 진술을 그대로 믿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2011년 9월 1억2천만원이 오간 자리에 대해서 김승연 전 국장이나 박윤준 전 차장이 일자나 시각 등을 밝히지 못한 점도 이유가 됐다.
이 전 청장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과 공모해 ‘김대중 전 대통령 비자금을 추적한다’는 명목으로 2010년 5월부터 2012년 3월까지 모두 14차례에 걸쳐 5억3500만원과 5만 달러를 지출한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 관한 법률위반·국고등손실)로 기소됐다. 2011년 9월 국세청장 접견실로 찾아온 김승연 전 국정원 대북공작국장에게 김 전 대통령 비자금 추적 진행 상황을 설명해주고 1억2천만원을 뇌물로 받은 혐의도 적용됐다. 검찰은 이 전 청장에게 징역 8년에 벌금 2억4천만원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한 바 있다.
구속기소됐던 이 전 청장은 재판이 끝난 뒤 석방됐다. 이 전 청장을 대리한 변호사는 “삼인성호(‘세 사람의 거짓말이 없던 호랑이를 만든다’는 의미의 고사성어)로 시작해 사필귀정으로 결론이 났다”며 “검찰에서 증거를 내고 사실을 입증해야 하는데 오히려 변호인쪽에서 국정원 출입기록 등 증거를 조사해 무죄를 밝혀냈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날 입장을 내고 “재판부의 무죄 판단을 도저히 수긍하기 어렵다”며 항소할 뜻을 밝혔다. 재판부의 무죄 판단은 “국정원이 타 국가기관에 불법적인 요구를 하면 그대로 따라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동의할 수 없는 결론”이라는 것이다. 검찰은 또한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 관련자들은 검찰 수사에서 법정에 이르기까지 뇌물 혐의에 부합하는 증언을 일관되게 유지했다. 세 사람의 진술을 배척한 판단에 동의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한편, 1심 재판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는 이 전 청장의 판결문의 공개를 제한했다. 해당 재판부는 ‘국정원 직원 등을 비공개로 심리한 내용이 판결문에 담겨 있다’는 이유로 판결문 공개를 제한한 것으로 알려졌다. 형사소송법(59조의3)에 따르면, ‘심리가 비공개로 진행된 경우’ 판결문의 열람 및 복사를 제한할 수 있게 돼있다.
고한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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