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성노예제(위안부) 피해자 증언을 바탕으로 한 소설을 출간하는 김숨 작가(왼쪽부터)와 소설 주인공인 김복동·길원옥 할머니,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대표가 2일 서울 마포구 ‘평화의 우리집’에서 증언소설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려 모여 앉아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겨울, 봄 그리고 여름.
소설가 김숨(44)이 일본군 성노예제(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93)·길원옥(90) 할머니를 찾는 동안 계절은 세번 바뀌었다. 아흔을 넘긴 할머니들은 항암치료와 노화 탓에 조금씩 기억을 잃어갔다. 작가는 그런 할머니들 옆에 조용히 앉아 질문을 던졌다. “할머니, 세상에 착한 사람이 많을까요, 나쁜 사람이 많을까요?” “할머니, 착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할머니, 사랑이 뭘까요?” 과거 자신이 겪었던 피해를 덤덤히 고백한 할머니들의 말은 지난 30여년간 위안부 운동을 이끈 증언이 됐지만, 작가의 질문에 답한 할머니들의 말은 한 인간의 역사를 담은 ‘증언소설’이 됐다.
전작인 <한 명> <흐르는 편지>(현대문학)를 통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뤄온 소설가 김숨이 오는 14일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에 맞춰 김복동 할머니의 증언소설 <숭고함은 나를 들여다보는 거야>(현대문학), 길원옥 할머니의 증언소설 <군인이 천사가 되기를 바란 적 있는가>(현대문학)를 펴낸다.
<한겨레>는 세 계절에 걸쳐 ‘공동 집필 작업’을 함께한 김복동·길원옥 할머니와 김숨 작가,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대표를 지난 2일 오후 서울 마포구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쉼터인 평화의 우리집에서 만났다. 아흔이 넘은 나이에 책 주인공이 된 김복동·길원옥 할머니는 며칠간 이어진 무더위에도 지친 기색 없이 “(책이) 억만권이 팔리갖고는 우리 ‘나비기금’ 회비로 좀 주면 좋겠다”며 활짝 웃었다.
■ 시간이 없다, 기록을 남겼다
내 목숨이 남에게 짐이 될까 봐 걱정이야. 내가 살아 있는 게 남에게 고통을 줄까 봐…. 내가 나를 모를 때까지 살면 안 되는데. 내 얼굴도 까먹고, 내 이름도 까먹고, 내가 부르던 노래들도 까먹고…. 자꾸 잊어버려. 잊어버려야 살 수 있으니까.
-김숨, <군인이 천사가 되기를 바란 적 있는가>
현대문학 제공
소설가 김숨의 이번 소설은 ‘할머니들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절박함에서 시작됐다. 올해 세상을 등진 위안부 피해자는 5명. 정부에 등록된 생존자는 28명으로 줄었다. 맨 앞에서 증언 활동을 해온 김복동 할머니는 지난겨울부터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 길원옥 할머니도 조금씩 과거 기억을 잊어가고 있다. “올해 초에 김동희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관장님이 연락을 해오셨어요. ‘김복동 할머니께서 많이 아프시다고, 할머니께 시간이 아직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때 할머니 이야기를 책으로 펴내고 싶다’며 아이처럼 우시더라고요.”
증언소설 집필을 결심한 김 작가는 지난 6개월간 20여차례 평화의 우리집을 찾아 할머니들을 만났다. 그간 숱한 인터뷰에서 과거 피해 사실을 증언한 할머니들이었지만, 김 작가가 할머니들의 기억을 묻는 일은 쉽지 않았다. 기억을 떠올리는 것 자체가 고통인 탓이다.
김 작가가 말했다. “복동 할머니께서는 처음엔 ‘안 하겠다’고 명확하게 의사 표현을 하셨어요. 준비한 질문 중 단 하나도 건네지 못하고 할머니 방문 앞에서 허망하게 발길을 돌려야 했던 게 여러 번이었어요.” 김복동 할머니도 인터뷰 내내 “작가가 고생을 많이 했다”고 다독였다. “말하기 곤란했지. 처음엔 (얘기를) 안 해줄라고 막 그랬었는데. 과거사를 들먹거리면 뭐하나. 많이 주저했는데 ‘꼭 이걸 해야 되겠다’고 해서 어디까지나 협조를 했지마는, 많은 협조는 해주지 못했어.”
아흔 할머니들 항암치료·기억력 잃어 남은 시간이 없단 절박감에 기록두 할머니 옛 이야기 들려주듯 시 형식 행간에 슬픔과 한숨 스며김 할머니 “책이 많이 팔리면은 돈 없어서 공부 못하는 아들 장학금….”길 할머니 “우리 한 백성이라면 (책을 보고) 다 알았으면 좋겠어요”
본격적으로 인터뷰가 시작된 뒤에는 김동희 관장, 윤미향 대표, 손영미 평화의 우리집 소장 등 정의기억연대 활동가들이 할머니와 작가 사이에서 ‘통역사’의 구실을 도맡았다. 낯선 사람 앞에서 절제된 표현으로 말하던 김복동 할머니도 오래 봐온 활동가들에게는 쉽게 옛이야기를 풀어냈다. “처음에는 할머니 얘기를 들으려고 일부러 제가 함께 누워서 얘기하고, 그럼 김 작가님이 저 멀리 구석에서 그림자처럼 듣고 계셨고요.”(윤미향) 시간이 지나면서 할머니들도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김복동 할머니는 인터뷰를 시작할 때마다 쟁여뒀던 간식을 꺼냈다. 작가를 ‘선생님’으로 부르는 길원옥 할머니도 살뜰히 김 작가를 챙겼다. “원옥 할머니의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이 있었어요. 인터뷰를 마치고 집에 가려고 했는데, 할머니께서 ‘가지 마, 그냥 내 등에 붙어서 자’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 모습을 소설에도 썼는데, 쓰면서 울컥울컥했어요.”(김 작가)
소설 제목도 할머니들과의 인터뷰를 토대로 떠올렸다. “김복동 할머니는 눈이 잘 안 보이세요. 집필하는 내내 눈이 먼 할머니 손을 붙들고 거울을 찾아가는 심정이었어요. 거울 앞에 다 이르렀다 싶은 순간 ‘숭고함’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제목이 떠올랐고요. 길원옥 할머니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천사로 만드는 선한 영혼을 가지신 분이라는 생각을 인터뷰 내내 했어요. 할머니의 선하고 특별한 영혼이라면 군인도 천사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만들어진 제목이 <숭고함은 나를 들여다보는 거야> <군인이 천사가 되기를 바란 적 있는가>이다.
현대문학 제공
■ 기억을 짚고 피해자와 연대하는 ‘말’들
소설에 등장하는 할머니들의 증언은 과거와 현재를 가로지른다. 어렸을 적, 만주로 향하는 기차를 타기 전 남동생이 “누나, 빨리 갔다 와!”라고 외쳤던 기억. 타지에서 ‘차마 죽지 못해’ 한국으로 돌아왔고, 누군가에게 과거의 일을 ‘말하지 못해’ 외롭게 살았던 시간들. 위안부 시절, 내가 어디에 있는지 잊지 않기 위해 군인에게 줄곧 물어봐서 외운 ‘수마트라’라는 지명. 여전히 잊지 못하는 집 주소 ‘평양시 서성리 76번지 26호’….
시의 형식을 빌려 나열되는 증언의 행간엔 할머니들의 한숨과 슬픔이 스몄다. 마치 두 할머니가 바로 옆에 앉아 조곤조곤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느낌이 드는 이유다. “원옥 할머니는 노래하시는 분이에요. 그래서 그런지 문장 구사력이 굉장히 뛰어나세요. 원옥 할머니와 첫 인터뷰를 진행하고 집에 돌아가자마자 소설을 썼는데 저절로 그런 형식이 만들어지더라고요. 쓰는 내내 제 마음에 들었어요.”(김 작가)
내가 여자에게 물었어. “너는 이름이 뭐야?” “응우옌티탄.” “너는?” “응우옌티탄.” “너희 둘은 이름이 같네. 내 이름은 길원옥이야.” … 내가 여자들에게 말했어. “너희는 낮아질 대로 낮아졌으니 높아질 일밖에 없겠구나.”
-김숨, <군인이 천사가 되기를 바란 적 있는가>
소설에 등장하는 할머니들의 증언은 세계 곳곳의 전시 성폭력 피해자들에게도 가닿았다. 소설 속에서 길원옥 할머니는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에게 가족을 잃고 부상을 당한 응우옌티탄, 이슬람국가(IS) 성폭력 생존자인 야지디족 여성 마르바 알-알리코에게 말을 건넨다. 실제로 2015년 응우옌티탄을, 2017년 마르바 알-알리코를 만났던 길원옥 할머니의 기억을 토대로 집필한 내용이다. “할머니들은 스스로 훼손된 존엄성을 회복하고, 그 존엄성을 지키며 지금껏 살아오셨어요. 이들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또 다른 전시 성폭력 피해자들이 위안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김 작가) 옆에서 길원옥 할머니가 말을 보탰다. “누구든지 이 일을 안 바라고 싶지, 바라고 싶은 사람 하나도 없어요. 당한 사람이나 안 당한 사람이나 똑같아요. 안 당한 사람이라고 ‘나 편안해요’ 할 수가 없어요.”
■ 사과, 배상, 장학금…할머니들의 소원
2016년 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을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무력화하려 했다는 의혹이 최근 드러났다. 김복동·길원옥 할머니도 당시 소송의 원고로 참여했다. “할머니들이 수요시위에서 항상 ‘일본 정부가 우리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쉽게 죽을 수 없다’는 말씀을 하시거든요. 그 보도를 보고 나서는 ‘이제는 사법부마저도 할머니들이 죽기만을 기다린 게 아닐까, 이건 너무 큰 범죄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윤 대표가 한숨을 내쉬었다.
“정부가 그냥 가만히 있으면 안 되지. 우리가 나가서 열마디 하는 것보다 정부 한마디가 효력이 있으니까.” 날이 더운데 ‘우리만 나이 많다고 수요시위에 못 나가서’ 미안하다는 김복동 할머니는 인터뷰 내내 ‘장학금’ 얘기를 꺼냈다. ‘어려운 아(애)들 공부시키는 것’은 할머니들의 소원이다. “내가 우리 나이로 15살에 (위안소에) 끌려갔거든. 한창 공부할 나이인데 공부를 못 했지. 내가 못 한 공부를 돈 없어서 공부 못 하는 아(애)들, 어떻게 하든지 공부를 시켜보겠다는 마음을 먹고 일본에서 배상이 나오도록 기다렸거든? 그런데 93살 먹도록 기다려도 아무 소식이 없어…. 그래서 ‘한 아이라도 해보도 몬하고 (내가) 죽어삐면 어짜겠나’ 싶어서 남은 재산 닥닥 긁어갖고는, 밑천 삼아갖고 재단을 만들었지.”
2016년 6월, 김 할머니는 분쟁지역 피해 아동을 돕기 위해 장학금 5천만원을 기부해 ‘김복동 장학기금’을 만들었다. 2016년부터는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하는 재일조선학교 학생 6명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다. 최근 ‘기금 밑천이 닳아 도움을 주지 못할까 봐’ 걱정스럽다는 김복동 할머니가 김숨 작가를 향해 말했다. “밑천이 풍부하면 서울에도 딱한 애들이 있을 거라…. 책이 많이 팔리면은 기부를 많이 해. 더구나 학교엔 장학금으로 좀 힘써주면 좋겠어.” 할머니의 인터뷰를 지켜보던 정의기억연대 활동가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졌다. “할머니들이 그냥 위안부 피해자가 아니고 여성 인권운동가예요. 본인이 장학금으로 기부하신 게 바닥날까 봐 내내 걱정이 드는 거죠.” 윤미향 대표가 말했다.
내가 여덟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어. 소학교 입학원서 받고 사흘 동안 학교를 못 갔어. 아버지 장례 치르느라고.
아버지가 돌아가시며 엄마에게 말했어.
“우리 복동이는 어떻게든 공부시켜 사람을 만들게. 우리 복동이가 보통 애가 아니다.”
엄마가 약속을 못 지켰어.
-김숨, <숭고함은 나를 들여다보는 거야>
“할머니, 사람들이 할머니들이 주인공인 책을 많이 보면 좋을까요?” 윤미향 대표의 질문에 할머니들이 말했다. “여러 사람이 (책을) 봤으면 좋겠어. 아직 (위안부 역사를) 모르는 사람이 많거든. 책을 많이 읽어서 과거사를 뉘우쳐주고 같이 협조해주면 좋겠어.”(김복동) “알면 약이고 모르면 병이라고 그랬어요. 그러니까 우리 한 백성이라면 (책을 보고) 다 알았으면 좋겠어요. 알아서 숭될 거 하나도 없잖아요.”(길원옥)
황금비 기자 withb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