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첫 공판에 나온 이명박 전 대통령. 사진공동취재단
이명박 전 대통령이 최측근인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에 한국거래소 이사장, 우리금융 회장 등 금융기관장 자리를 주기 위해 청와대 관계자들에 지시한 정황이 이 전 대통령의 재판에서 공개됐다.
1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재판장 정계선) 심리로 열린 이 전 대통령의 재판에서 검찰은 임승태 당시 금융위원회 사무처장의 진술조서를 공개했다. 조서에 따르면 임 전 사무처장은 “청와대 행정관을 통해 이 전 회장을 한국거래소(KRX)이사장으로 선임하라는 오더가 내려왔다”고 진술했다. 임 전 사무처장은 당시 진술에서 “청와대에서 구체적인 방법까지 시시콜콜 지시하지는 않았다”면서도 “청와대가 금융기관장으로 누구를 하라고 직접 지시했고, 이창용 당시 부위원장이 청와대로 들어가 오더를 받았다”고 밝혔다.
임 전 사무처장은 이 전 회장을 두고 “대표적인 엠비(MB·이명박 전 대통령) 측근 인사로, 소위 4대 천왕으로 유명한 인물”이라고 평하며 “이 전 회장이 해결돼야 다른 금융계 인사가 가능하다는 인식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역량이 부족해 청와대에서 적극적으로 미는 사람이 아니라면 업계에 불가능한 인물”이라고 평했다.
당시 이 전 회장은 KRX(한국거래소) 이사장으로 선임되지 않았다. 임 전 사무처장은 청와대의 지시가 좌절되자 금융위 내부 분위기가 악화했다고 당시 상황을 진술했다. 임 전 사무처장은 “이 전 회장이 낙마하고 다른 사람이 이사장으로 선임되자 청와대에서 난리가 났다”며 “이후 청와대 인사수석실에서는 ‘우리가 정권 잡은 것 맞느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분위기가 안 좋았다”고 말했다. 해당 사태를 책임지는 의미에서 금융위 김영모 전 총무과장이 책임지고 사퇴해야 했다고 덧붙였다.
비슷한 취지의 김명식 전 인사비서관 진술조서도 법정에서 공개됐다. 김 전 비서관은 “2008년 3월 당시 이팔성 전 회장이 KRX이사장이 돼야 한다는 게 이명박 당시 대통령 뜻이라는 건 저나 인사비서관실 행정관들 모두 알고 있었다”며 “인사실패에 대한 대통령 반응을 묻자, ‘그런 것 하나 제대로 못 하나’라는 느낌이었다”고 진술했다.
김 전 비서관은 이팔성 전 회장의 우리금융 지주 회장 선임 과정에 청와대가 개입해야 할지를 묻자 “이 전 대통령이 보고하는 동안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이면서 ‘응’이라고 했다”고 밝혔다. ’KRX 이사장 선임은 실패했으니 이번에는 잘 해보라는 취지로 받아들였다’는 설명이다.
고한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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