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 조사를 보면 19살 이상 인구의 34.6%가 ‘준비능력 없음’(39.1%), ‘앞으로 준비할 계획’(33.3%) 등 사유로 현재 노후 준비를 못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서 출근길에 나선 시민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경기도 용인시에서 살고 있는 김효정(가명·38)씨 부부의 유일한 노후 대비책은 매달 월급통장에서 소득의 4.5%씩 나가는 국민연금입니다. 남편이 직장에서 퇴직할 때 받을 퇴직금(혹은 퇴직연금)이 있지만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지 불확실하니 ‘노후소득’으로 여겨지진 않습니다. 2011년 결혼해 3살, 4살 자녀를 키우는 효정씨네가 최근까지 가장 골머리를 앓은 건 안정된 주거 마련이었습니다. 이 고민은 최근 4억원대 아파트를 분양받은 덕분에 조금 줄었습니다.
네 식구의 한달 소득은 약 350만~400만원입니다. 효정씨는 2013년 출산을 앞두고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채 아이들을 돌보고 있습니다. 회사에 사표를 내면서 9년 가량 내던 국민연금 보험료 납부도 지금은 중단한 상태입니다. 매달 50만~100만원씩 저축을 하지만, 두 아이가 클수록 교육비를 비롯해 돈 들어갈 일이 많아질 테니 ‘마이너스 통장’만 되지 않길 바라는 중입니다.
국민들로부터 많은 불신을 받고 있지만, 국민연금은 주요 노후 대비책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통계청이 발표한 ‘2017년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만 19살 이상 인구 가운데 65.4%가 노후 준비를 하고 있다고 응답했습니다. 노후 준비의 주요 수단으로는 국민연금(53.3%), 예·적금(18.8%), 사적연금(11.4%) 등이 꼽혔지요.
지난해 국회예산정책처가 펴낸 ‘인구구조 변화와 사회안전망 정책 분석’을 보면, 2014년 기준 한국의 공적연금 소득대체율(평균소득 대비 연금 수령액)은 39.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40.9%)에 견줘 1.6%포인트 낮은 수준이었습니다. 탄탄한 사회안전망을 갖춘 핀란드(55.8%)가 가장 높았고요.
국민연금 가입자인 효정씨 부부도 미래에 대한 불안이 큽니다만, 더 큰 문제는 ‘국민연금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입니다. 통계청 조사를 보면 19살 이상 인구의 34.6%가 ‘준비능력 없음’(39.1%), ‘앞으로 준비할 계획’(33.3%) 등 사유로 현재 노후 준비를 못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나 영세자영업자들이 국민연금 혜택을 받지 못할 우려가 큽니다. 2017년 보험연구원 자료를 보면, 종업원 없는 영세자영업자가 전체 자영업자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직장인은 소득의 9%인 보험료를 회사와 절반씩 나눠 내지만, 이들 자영업자는 보험료 전액을 개인이 부담해야 합니다.
이런 현실 탓에 적절한 노후소득 보장을 위해서는 국민연금 사각지대를 줄여가면서, 기초연금과 퇴직연금 등을 포괄하는 다층노후소득 보장체계를 제대로 구축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먼저 기초연금은 ‘만 65살 이상, 소득 하위 70%’ 노인한테 매달 연금의 형태로 지급됩니다. 기초연금의 재원은 조세인데요, 이 점은 가입자가 내는 보험료 등으로 꾸려지는 국민연금과 다른 부분이지요. 기초연금은 오는 9월부터 현행 최대 20만9960원(1인 가구 기준)에서 25만원으로 인상되고, 소득 하위 20%에겐 내년부터 30만원이 지급할 예정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대책만으로는 심각한 노인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더구나, 박근혜 정부는 지난 2014년 기초연금을 도입하면서, 국민연금 가입자의 경우 연금액 수준에 따라 기초연금을 깎도록 제도를 설계했고요.
1988년 국민연금 도입 이전, 노후 생계자금 구실을 했던 건 근로기준법에 따라 1년 이상 일할 경우 회사가 1개월치 월급액을 의무적으로 주도록 한 퇴직금이었습니다. 그러나,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평생직장’이 사라졌고, 그만큼 퇴직금을 목돈으로 가져가기 어렵게 됐습니다. 기업 내부에 퇴직금 지급을 위한 적립금을 쌓도록 했지만, 이를 이행하지 않아 퇴직금조차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요. 이러한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정부는 2005년 퇴직연금 제도를 도입했는데요. 해마다 퇴직금을 사외 금융사에 적립하고, 회사나 노동자가 운용을 맡아 퇴직시 연금 또는 일시금으로 지급하는 겁니다. 주로 300인 이상 대기업이 퇴직연금 제도를 도입했는데요. 은행·보험·증권사 등 ‘퇴직연금사업자’에게 돈을 맡기는 구조라, 이러한 업체들에 높은 운용 관리 수수료를 부담해야 합니다. 가입기간 10년을 넘기고 55살 이상이어야 연금을 받을 수 있는데, 가입자 대부분은 연금이 아닌 일시금을 받아가고 있는 형편입니다. 수급권 보장을 위한 법 규정도 부실한 상황이고요. 그동안 퇴직연금 제도가 금융시장 활성화를 위해 활용됐을 뿐 노후소득 보장제도로는 자리잡지 못했다는 비판이 많은 까닭입니다.
박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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