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커버스토리
‘디지털 블랙홀’ 유튜브
‘디지털 블랙홀’ 유튜브
한 달 이용자 18억명 이상. 동영상 플랫폼 유튜브가 블랙홀처럼 세상의 모든 콘텐츠를 빨아들이고 있다. 작은 사진은 왼쪽부터 유튜브 채널 ‘헤이지니 Hey Jini’(어린이 콘텐츠) ‘쌈바홍’(가수 홍진영의 개인 채널)’ ‘Jella 젤라’(미용법) ‘mugumogu’(반려동물) ‘영어 알려주는 남자’(영어학습) ‘KARD’(4인조 음악그룹 카드의 채널) 화면 갈무리. 글 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그래픽 이정윤 기자 bbool@hani.co.kr
검색도 SNS도 모두 유튜브에서
유튜브는 디지털 그 자체 열풍의 또다른 주역은 시니어
3040보다 유튜브 많이 봐
‘가짜뉴스’ 부작용에도
보수 성향 뉴스채널 성행 2005년 출시한 동영상 플랫폼
2006년 구글이 16.5만달러에 인수
월 이용자 18억명 이상
가치 180조원 기업으로 성장 체류시간과 광고수익 굴레
선정성·유해성 논란에도
‘알고리즘’ 내세우며 방관
“사람이 개입할 때가 왔다” 김아무개(41)씨의 딸 유진(8)은 유튜브 애청자이면서 아마추어 크리에이터이기도 하다. 2010년생 유진이에게 유튜브는 생애 처음으로 만난 미디어였다. 말을 하기 전부터 유튜브에서 나오는 만화를 보고 자랐다. 유튜브엔 모든 것들이 다 있었다. 궁금한 것은 모두 유튜브에 물어봤다. “포켓몬(스터) 캐릭터도 유튜브에 가면 설명이 다 나와요. 인형 잘 뽑는 방법 영상도 있고. 액체괴물(젤리형 장난감) 갖고 노는 영상도 많이 봐요.” 2년 전부터 유진이는 두 살 많은 오빠 원준이와 함께 동영상을 직접 찍어 유튜브에 올리기 시작했다. 채널 이름을 ‘원준유진TV’라 짓고 새로 마련한 장난감을 소개하거나 인형으로 가상의 이야기를 지어보거나 가족과 함께 여행가서 찍은 영상을 올렸다. 다른 어린이 대상 유튜브 채널인 도티TV(구독자 234만명), 잠뜰TV(149만명)의 콘텐츠를 따라하기도 했다. 딱히 ‘커서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되겠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다. (물론 유진은 자신이나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친구들을 ‘크리에이터’라고 부른다.) 다른 사람들이 올린 영상들을 보면서 “나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스마트폰을 빌려주거나 영상을 찍어주는 걸 제외하면 엄마인 김씨가 특별히 도와주는 건 없다. 가끔 ‘악성 댓글’이 달리면 지워주거나, 다니는 학교나 집 주소 등이 노출되지 않게 하라는 주의만 줄 뿐 영상을 만들고 올리는 데 따로 조언을 하지 않는다. 김씨는 “할 능력도 없다”고 했다.
‘Z세대’ 다음은 ‘유튜브 세대’? “포털은 네이버, 에스엔에스(SNS)는 페이스북이라는 말은 아이들에게 통하지 않는 것 같다”고 김씨는 말했다. “아이들에게 에버랜드 간다고 하면 에버랜드에서 어떤 놀이기구를 타야하는지, 어떤 루트로 이동을 해야하는지 등을 유튜브로 검색한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은 잘 알지도 못하고 그냥 어른들이 하는 것 정도로 안다. 유튜브에 올린 영상에 서로 댓글을 달면서 안부를 확인하기도 한다. 따로 알려주지 않았는데 (텔레비전 속) 유튜브 채널을 보거나 스마트폰을 텔레비전과 연결해 동영상을 보는 것도 자연스럽다. 유튜브가 아이들에겐 콘텐츠를 보는 통로이자, 검색하는 도구이자, 서로 연락을 주고받는 공간인 것 같다.” 앱분석 업체 ‘와이즈앱’이 지난 4월 한 달 동안 만 10살 이상 안드로이드폰 이용자 2만3000명을 대상으로 연령대별 모바일앱 사용 시간을 조사한 결과 10대가 가장 오래 쓴 앱이 유튜브(76억분)였는데, 2위인 카카오톡(24억분)의 3배 이상이었다. 2~6위 앱들의 사용 시간을 모두 더해도 유튜브 사용 시간에 못 미쳤다. 10대는 전 세대를 통틀어 유튜브를 가장 오래 사용할 뿐만 아니라 가장 압도적인 비율로 유튜브를 사용했다. 유진이 같은 만 10살 미만 아이들의 사용 시간을 조사한다면 유튜브의 ‘점유율’은 더 높게 나올 가능성이 크다.
JTBC는 지난 7월부터 유튜브 크리에이터 대도서관, 윰댕, 밴쯔, 씬님을 고정 패널로 출연시켜 그들의 일상을 보여주는 ’랜선라이프’를 편성했다. 유튜브 채널 ‘JTBC Entertainment’ 갈무리
손녀 따라 유튜브 ‘입문’ 서울 서초구에 사는 유아무개(64)씨는 엉겁결에 유튜브 마니아가 된 경우다. 지난해 초였다. 며느리는 3살 손녀를 맡기면서 “밥 안 먹고 떼쓸 때 보여주시라”며 유튜브 채널 ‘콩순이·시크릿 쥬쥬’를 알려줬다. 유씨는 며느리 말을 따라하다 유튜브의 존재를 알게 됐다. 처음엔 음악을 주로 들었다. 지금은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에서 듣기 힘든 1970년대 노래들이 많았다. (인터넷기업협회의 조사 결과, 50대 응답자의 56.7%가, 음악앱이 아닌, 유튜브로 음악을 듣는다고 답했다.) 그러다 추천 동영상들을 클릭해서 보기도 했는데 신부님이나 수녀님들의 강연 영상을 주로 봤다. 유씨의 방엔 텔레비전이 없다. 밤 9시 이후 잠들기 전까지 누워서 1~2시간 동안 스마트폰으로 유튜브 영상을 보다 잠드는 게 유씨의 일상이 됐다. 유씨는 천주교 신자다. 유튜브는 어떻게 알았는지 유씨에게 신부·수녀님들의 강의 영상들을 추천했다. 추천 영상 리스트를 따라 내려가다보면 ‘최신뉴스’ ‘최근 소식’이라는 제목이 달린 영상들도 있었다. 지난 7월 말 유씨가 본 영상은 이런 내용이었다.
2016년 미국 대선을 전후해 힐러리 클린턴의 건강 이상설 등을 제기해 주목받은 미국의 뉴스 채널 ‘The Next Network’. 유튜브 채널 ‘The Next Network’ 갈무리
시니어들의 ‘기울어진’ 사랑방 <미디어오늘>이 지난 7월9일부터 15일 동안 유튜브 모바일과 피시(PC) 화면의 ‘인기영상’ 탭에 노출된 영상 리스트를 분석한 결과 인기영상 450건 중에 뉴스·시사 콘텐츠가 143건으로 가장 많았다. 코미디·오락(71건), 체험·관찰(42건), 음악(29건), 영화(24건) 등이 뒤를 이었다. 뉴스·시사 콘텐츠 중에서 가장 많이 인기영상에 오른 채널은 ‘황장수의 뉴스브리핑’(13건)이었고, 다음이 ‘펀앤드마이크 정규재TV’(9건)였다. 미디어오늘은 “유튜브의 ‘인기영상’은 개인 맞춤형 콘텐츠가 제공되는 메인 화면과 달리 모든 이용자에게 같은 콘텐츠를 배열한다”며 “극우보수 성향 인터넷 방송 콘텐츠(55건)가 가장 주목 받으면서 진보 성향의 인터넷 방송 콘텐츠(4건)를 압도했다”고 분석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건강 이상설을 제기한 보수 성향 뉴스 채널 ‘신의 한수’. 유튜브 채널 ‘신의 한수’ 갈무리
동영상 플랫폼 그 이상 개인이 동영상을 촬영해 이를 인터넷에 올리고 다른 사람과 공유한다는 건, 불과 10여년 전인 2000년대 초반까지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테이프에 담긴 영상을 디지털 파일로 변환하기도 번거로웠고, 디지털로 촬영했더라도 대용량 영상을 인터넷에 업로드하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무엇보다 동영상을 올릴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 개인 서버를 보유한 이는 드물었고, 만족할 만한 공간과 속도를 제공하는 사이트도 없었다. 영상을 올리는 과정은 시작에 불과했다. 이 영상을 웹에서 보려면 시간과 비용 뿐만 아니라 인내심까지 요구됐다. 인터넷 익스플로러 등 브라우저에 삽입된 미디어 플레이어를 모니터에 띄우는 데만 한참이 걸렸다. 컴퓨터는 버벅댔다. 동영상은 ‘민폐’였다.
KBS 공채 출신 개그맨 김준호는 지난해 6월 유튜브에 채널을 개설하고 1주일에 1~2회 영상을 올리고 있다. 유튜브 채널 ‘얼간김준호’ 갈무리
‘시장’의 확대, 유통의 혁명 유튜브 이용자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인기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은 수백만 구독자를 거느리는 유명인사가 됐다. 이들의 말이 순식간에 유행어가 되고,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뉴스에 등장하는 일도 많아졌다. 기존 매체들이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을 필요로 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 후반부터 인터넷 1인 방송을 시작한 게임 크리에이터 대도서관(나동현)은 한국 유튜브 시장을 개척한 ‘1인 미디어계 선구자’로 불린다. 그는 2013년부터 종편 등에 패널로 등장했고, 2016년 <교육방송>(EBS) 교양 프로그램 ‘대도서관 잡쇼’의 진행을 맡기도 했다. 그는 지난 15일부터 여름휴가를 떠난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를 대신해 <시비에스>(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의 진행을 맡고 있다.
15일부터 여름 휴가를 떠난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를 대신해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의 진행을 맡은 유튜브 크리에이터 대도서관. 유튜브 채널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갈무리
최고의 가치는 ‘체류시간’
로버트 캔슬 유튜브 최고비즈니스책임자(CBO)가 2015년 10월 유튜브의 프리미엄 서비스인 유튜브 레드를 발표하고 있다. 월정액을 내고 유튜브 레드를 이용하면 영상 직전 광고를 보지 않거나 화면이 꺼진 상태에서도 동영상 재생이 가능하다. AP 연합뉴스
알고리즘이 모든 걸 해결할까? 유튜브는 이런 사건이 터질 때마다 ‘영상을 추천하거나 문제 영상을 선별하는 것 모두 알고리즘에 의해 이뤄진다’는 점을 강조하며 “머신러닝(컴퓨터 스스로 데이터를 분석해 학습하는 기술)과 알고리즘 시스템을 강화하겠다”는 답변만 반복했다. 자극적인 영상이 널리 퍼지고 이용자들이 늘어났는데, 유튜브가 전혀 ‘의도’하지 않은 결과일까. 유튜브에서 3년 동안 추천 시스템 분야에서 일한 엔지니어 기욤 샤스로는 지난 2월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유튜브의 알고리즘이 특정 의도를 지닌 채 작동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샤스로는 “유튜브의 추천 알고리즘은 진실에 가깝거나 균형 잡혀 있거나 민주주의에 도움이 되는 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오로지 이용자들의 체류시간을 늘리는 게 최우선”이라고 말했다. 체류시간을 늘리기 위해 자극적이거나 선정적인 영상을 적극적으로 추천한다는 말이다. 샤스로는 이어 “가짜뉴스를 가려내고 콘텐츠의 질과 다양성을 개선시킬 방법이 많이 있지만, 유튜브는 하나도 시행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헨리 파렐 교수는 지난달 13일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에 기고한 ‘새로운 경제의 오래된 비즈니스 모델은 죽었다’는 제목의 글에서 “페이스북이나 유튜브 등 온라인 서비스 회사들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알고리즘을 바로잡을 인간의 판단이 더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파렐 교수는 “지난 미국 대선 과정에서 유튜브는 음모론을 제기한 동영상들이 유통되는 데 기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유튜브가 (그런 결과를) 의도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진정한 문제”라며 “알고리즘은 반유대주의자에게 유대인 혐오 영상을 추천하는 것과 원예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 영상을 추천하는 것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를 식별하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견제 움직임도 이미 나타나고 있다. 지난 7월18일 유럽연합(EU)은 구글이 안드로이드 운영체계(OS)로 시장 지배력을 남용해 관련 법규를 위반했다며 구글에 43억4000만유로(약 5조700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스마트폰 제조사에 유튜브, 구글 검색앱, 구글맵 등을 선탑재하도록 강요했다는 이유였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12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여성가족부, 구글코리아와 네이버 등 정부와 학계, 기업이 참여한 ‘클린인터넷방송협의회’가 출범했다. 인터넷 방송 자율규제 가이드라인 등을 협의하기 위한 기구다. 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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